일본 아베총리는 전후 70년 담화에서 우리나라는 지난 전쟁에서의 행동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해 왔다라는 교묘한 사죄를 했다.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역사는 어떻게 처벌해야 할 것인가. 잊어져 가고 있는 것 같아 애처로운 생각이 든다.일제강점기 친일 반민족 행위 등을 거론하면 으레 공출시대가 떠오른다. 태평양전쟁이 막다른 1943년부터
◆일제 총독부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끼가 떠나면서 남긴 말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조선사람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사람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나는 다시 돌아온다는
■ 우에다(植田) 병원솔동산 아래 천제연으로 가는 길목에 서귀포에 단 하나밖에 없는 우에다 병원이 있었다. 병원하면 오늘 우리들이 드나드는 동네병원을 연상하겠지만 당시 의료시설은 워낙 영세해 집 한 채에 살림방과 작은 칸은 진찰실이다. 입원실과 응급환자실도 없었다. 의료장비는 고사하고 구급차도 없었다. 진찰실에는 청진기, 소독기구함, 핀셋, 주사기 등이 놓
■ 재향군인 죽창(竹槍)검술 연마서귀포에 거주하고 있는 재향군인이라야 겨우 10여명. 모두가 지나(支那)사변에 참전했던 역전의 노병이었다. 미군이 상륙하면 최후의 일인까지 죽창으로 찔러 죽이겠다며 백병(白兵)전 준비에 돌입했다. 이때가 1944년 봄 무렵이다.미군이 파죽지세로 침공해 오면서 전세는 긴박하게 돌아갔다. 제주 섬에 상륙할 것이라는 풍문이 나돌면
■ 교장 관사 봉사당번하루 일과를 마치고 교문을 빠져나가는 나를 보고 사와무라 교장선생님은 부엌 칸 청소 좀 도와달라는 것이다. 명령은 아니지만 선생님 말씀이라 하이(일본어. 우리말로 예)라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당시 봄, 가을 두 번 일본 관리가 우리 농촌을 순회하며 집안청결을 장려해 왔다.어렸을 적에 검사필증을 대문 기둥에 부착시켜두고 자랑하던 때가
■사라호 태풍 때 한 몫 본 고래공장 목조건물고래공장 목조건물은 임자 없는 건물인지 오랫동안 방치돼 풍파에 지붕이 날리고 한편으로 기울려져 멀리서 보기에도 흉물이라 자연경관이 훼손되고 있었다. 휴지조각도 때로는 요긴하게 쓰이듯 1959년 초강력 태풍 사라호(sarah)피해는 막심했다. 관내 학교건물 피해상황을 문교부 재해공제회에 보고하는데 건물 피해 입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