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명/동화작가

 

‘하느님, 제발 도와주세요!’

지아는 너무 급해서 미처 농문을 제대로 닫지도 않고, 서랍도 제대로 닫지 않고 나와 버렸다. 쿵쿵 뛰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아버지에게 인사를 한다.

“아, 아버지, 다녀오셨어요.”

엉거주춤 얼른 인사를 하고 지아는 부리나케 언니들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아버지도 얼떨결에 지아에게 고개를 끄떡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 간 아버지가 고함을 지른다.

“아니, 이게 뭐야? 이지아, 빨리 이리와!” 고함소리는 지아네 담장을 넘어 온 동네에 쩌렁쩌렁 울린다. 아버지 서슬에 오금이 저린, 지아는 숨이 턱턱 막힌다. 가슴은 이제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이지아!” “아버지, 한 번만 봐주세요.”

“뭘, 뭘 봐줘!”

아버지는 후다닥 마당으로 달려 나가 한 귀퉁이에 세워진 몽둥이를 찾아 든다.

“말해봐, 너 뭐하려고 내 방에 들어왔어?”

아버지는 지아의 대답 따윈 애초에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인정사정없이 지아에게 몽둥이를 휘둘러댔다.

“어서 말해, 어서!”

아버지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 같다. 마치 지아를 그 자리에서 패 죽이려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 왜 이러세요?”

지민언니가 아버지의 팔을 다잡으며 달려들었지만 소용이 없다.

“놔, 너희들 비켜!”

아버진 지민언니를 밀쳐버렸다. 뒤로 나가떨어져 폭 꼬꾸라진 지민언니. 하지만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지른다.

“재수 없는 계집애, 이 계집애가 우리집안을 다 망쳐 놓았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년, 이제는 도둑질까지 하려고 내 방에 들어와.”

가만두지 않겠다며 소리를 질렀다.

“빠… 빨간 원피스…… 찾으려고…….”

“뭐, 뭐라고 이년…….”

“빠, 빨간 원피스…….”

빨간 원피스라는 말에 아버지가 잠시 머뭇거렸다.

“빨간 원피스?”

되묻던 아버지는 그 옷은 찾아서 뭐 할 거냐며, 네가 왜 찾느냐고 또다시 소리를 지르며 지아의 작은 몸으로 몽둥이를 날린다.

“그, 그냥…….”

지아는 그 원피스를 다시 찾고 싶었다. 그럼 아버지가 다시 자기를 예전처럼 좋아 할 것 만 같았다. 미처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지아에게 아버지는 다시 화를 내며 억센 손으로 지아의 뺨을 후려쳤다. 나쁜 계집애, 재수 없는 년, 지아에게 어떻게 하면 더 나쁘게 말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 사람처럼 마구 퍼부어댔다.

“아파요 아버지, 잘못했어요. 제발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지아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고 있었다.

“지아야, 그만 해!” 큰언니, 지민이가 소리를 질렀다. 언니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지아를 일으켜 세우고 아버지를 향해서 이번엔 지민언니가 소리를 지른다.

“지아 잘 못이 아니잖아요, 지아는 이제 겨우 9살 밖에 안 된 아이라고요.”

아버지는 지민의 행동에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서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뭐, 뭐라고…….” 아버지는 지아를 본다. 지민이 몸에 가린 작고 마른 겁에 질려있는 9살 작은 여자아이. 지민이 말이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 콕 박힌다.

 

3. 건강검진 기록표

 

지민이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집을 나가셨던 일. 돌아온 아버지가 지아를 몹시 미워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집을 나가셨을 때 지민이는 두렵고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집에서 제일 큰 언니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었다. 오로지 아버지가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지민이는 아버지가 말할 수 없이 미웠다. 지민이는 아버지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자신들을 버리고 나가버렸는지 그 이유를 어디서든 찾아야만 했다.

‘아버지, 돌아오세요. 제발, 아버지!’

한 참 동안 아버지 방 구석구석을 뒤지던 지민이 눈에 구깃구깃 구겨지고 얼룩진 종이 한 장이 장롱 바닥에서 보였다. 종이는 눈물 자국처럼 누런 얼룩이 군데군데 찍혀있었다.

건강검진 기록표.

‘일학년 일반 17번 이지아. 혈액형:(ABO식) A형 , (RH식) +형 / 요당: 정상…….’

지민이는 손끝이 떨렸다.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지아의 혈액형이 A형이다.

‘아버지B형 엄마O형.’

지민이는 잠시 동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째서 아버지와 돌아가신 엄마 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혈액형을 지아가 가지고 있는지…….

‘배신!’

지민이는 이제 알 것 같다. 갑자기 아버지가 집을 나가버린 이유를.

아버지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던 건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거야.’

엄마가 있었다면 물어보기라도 하고, 따져 보기라도 했겠지만, 지아만 남겨 놓고, 엄마는 가버렸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영원히 떠나 버렸다. 지민인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이 무서운 사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야만 했다.

‘엄가가 배신, 배신을 했어.’

지민인 엄마에 대한 배신감으로 견딜 수 없었다.

‘불쌍한 아버지.’

지아를 보는 게 너무 괴로운 지민이다. 그렇다고 아버지도 없는 집에서 대놓고 표시를 낼 수도 없는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은……, 모르게 해야 한다. 9년을 함께 살아 온 동생인데. 지은이와 지인이를 위해서도 아무도 모르게 해야 돼. 지아조차도…….’

 

아버지가 집을 나간지 거의 3개월이 넘은 어느 날 새벽이었다. 술에 잔뜩 취한 아버지가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 온 아버지는 변해있었다. 이전의 따뜻함은 사라진 아버지. 마치 네 자매에게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만들려고 온 사람 같았다.

지민이가 지아를 미워할 여운을 아버지는 남기지 않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굵은 몽둥이로 얻어맞는 지아. 그런 지아를 보면서 아버지를 말리지 않고, 묵묵히 바라보기만 한 지민이. 동생들은 아버지가 두려워서 도망치듯, 제방에 들어가서 숨었다. 지민인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지아가 당연한 댓가를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아가 점점 정말 너무나 미웠다. 그래서 아버지를 말리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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