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명/동화작가

 “아~”
 지민인 자기도 모르게 얕은 비명이 새어 나오며 눈물이 쏟아졌다. 지아의 몸에 조심스럽게 손을 갖다 대본다. 너무나 뜨거웠다. 지아의 몸은 펄펄 끓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제 혼자 앓고 있는 아홉 살 작은 아이 지아. 지민이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미안하다, 지아야. 언니가 정말 미안해. 네 잘못이 아닌데……. 어쩌면 엄마에게 말 못      할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지민이 기억 속에 엄마는 정숙했다. 늘 아버지만 바라보고 사는 여자였다. 엄마가 있을 땐 웃음이 끊이지 않는 행복한 집이었다.
 ‘아마, 무슨 이유가 있었을 거야.’
 그날 밤, 지민이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끙끙 앓는 지아를 밤새 간호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엄마, 이제부터는 지아를 잘 돌볼게요.’

 멍하게 서 있는 아버지. 집안은 아수라장이다. 여기저기 세간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지민이는 천천히 지아를 일으켜 세운다.
 “지아야, 일어나.”
 지민인 지아를 꼭 안아 주었다. 지아는 너무 작았다.
 “지아야, 미안해! 이제 널 잘 보살펴줄게.”
 네 자매는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다. 밤이 깊어지자,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직 안 들어오신다. 지민이는 마음 조리며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온 신경을 모으고 이제나 저제나 아버지가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리며 밤을 하얗게 새웠다. 작년처럼 아버지가 또 안 들어오실 것만 같아서 겁이 났다. 아버지 안 계신 집, 정말 힘들고 엉망이었다.
 창문에 포르스름한 새벽빛이 들어온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침까지도 돌아오시지 않았다. 지민이는 동생들을 깨운다. 집안 구석구석 대청소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개운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다. 지인, 지은, 지아가 청소를 할 동안 지민이는 부엌으로 가서 아버지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였다.
 “언니, 내, 내가 나가서 아버지 찾아볼까?”
 지아는 공연히 자기 때문에 아버지도 안 들어오시고, 지민이 언니는 한 숨도 자지 않은 것 같아서 몹시 미안했다.
 “아니야.”
 큰언니 지민이는 고개를 흔든다. 그냥 아버지를 기다리자고 한다. 그리고 지민이 언니는 대문을 흘끔흘끔 건네다 보면서 부엌일을 한다.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올라 뜨거운 여름열기를 온 집안으로 훅훅 불어 넣고 있을 즈음이었다.
 “삐꺼덕.”
 아버지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순간 지아는 반가움 보다가는 두려운 공포가 갑자기 몰려들었다. 엉거주춤하게 멈칫거리던 지아는 아버지와 눈이 딱 마주쳤다. 표정 없는 얼굴.
 “아, 아버지 안녕히 다녀오셨습니까?”
 아버지는 지아를 외면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지민이 언니는 한소끔 끓여 놓은 된장찌개에 다시 불을 올린다.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는 소리가 조용히 새어 나왔다.
 아침상이 차려졌다. 아버지는 별로 술을 많이 하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밤새 한 숨도 못 주무셨는지 얼굴은 새까맣게 탔다. 밥상위에서 보글거리는 뚝배기된장찌개를 아버지가 한 수저 드신다.
 “맛있게 잘 끓였네.”
 그제야, 네 자매는 숨이 트인다. 지민이 언니 얼굴에서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어서, 먹어.” 아버지의 목소리가 보드랍다. 하지만 지아의 가슴은 두려움에 마구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콩닥대는 심장소리를 혹시라도 아버지가 들을까봐 지아는 가슴을 제 작은 손으로 눌러보지만 콩콩 뛰는 심장은 지아의 손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지아도 어서 먹어라.”
 너무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아버지의 따뜻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숙이고 밥을 한 숟갈 입에 넣은 지아는 목이 메서 제대로 밥을 먹을 수가 없다.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어라.”
 아버지는 지아 옆에 물 컵을 올려놓는다.
 “밥 먹고, 지민이 아버지 좀 보자.”
 “네.”
 “자, 상 물리자.”
 아버지의 말에 언니들과 지아는 상을 치운다.
 “아버지 커피 한 잔 탈까요?”
 “그래.”
 큰언니는 작은 주전자에 물을 받아서 가스렌지 위에 올린다. 그리고 커피를 꺼내고, 예쁜 잔을 준비했다. 주전자는 실타래 같은 하얀 김을 훅훅 뱉어내고 있었다.
 “…지민아, 너 혹시…….”
 아버지는 지민이에게 어렵게 말을 꺼내고 있었다. 지민이는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안다. 아버지가 묻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버지, 저 알고 있어요.”
 “언제부터……, 그랬구나. 어제야……, 그럴 거라고 예상했다.”
 아버지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길게 한 숨을 뱉으며 지민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른 아이들은……?” “아무도 몰라요.”
 지민이 목소리는 작았다. 그렇지만 또랑또랑하고 맑았다.
 “넌, 어떻게 안 거니?”
 아버진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한 숨을 낮게 뱉어내며, 몹시 괴로운 표정을 지으셨다. 엄마에 대한 배신감을 다시금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서랍 속에 있던……, 건강검진 기록표…….”
 “그걸 봤구나. 그걸……, 그건 어떻게 했니?”
 “태워버렸어요.”
 지민이의 대답을 들은 아버지는 여러 차례 고개를 끄떡이며, 지민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아버진, 지민이가 대견하구나. 그런 엄청난 사실을 알고도 내색도 하지 않고…….”
 “……동생들이 마음 다칠까봐서요.”
 아버지는 지민이의 어른스러움과 태연함에 다시 한 번 놀라는 눈치였다. 측은한 눈으로 지민이를 건네다 본다.
 “지민이 생각보다도 아버지 생각이 짧았구나.”
 아버지는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헛기침을 한 번 하시더니 다시 말했다.
 “지민아, 아버지가 얼마동안 서울 올라가서 일자리 좀 알아보고 싶다.”
 올 것이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민이는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하며 떨린다. 고개를 들고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 아버지…….”
 “그래. 지민이가 힘들겠지. 그런데 아버지가 시간을 좀 갖고 싶어서.” “……언제 오실 건데요?”
 지민이 목소리엔 걱정이 배어 있다.
 “지민아, 미안하다. 아직은 너도 어린데”
 “아버지, 겨울이 되기 전엔 오실 거죠?”
 아버지는 고개를 두어 번 끄떡인다.
 “지민아, 지아 좀 들여 보내줄래.”
 아버지의 낮은 목소리가 무거웠다. 뭔가 커다란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아버지, 지아에게 더는 상처를 만들지는 마세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떡였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