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를 기른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사오 학년쯤, 우리 동네 두서너 다섯 살 선배들 집에는 대부분 토끼가 있었습니다.

토끼 기르는 것이 부러워 누군가를 졸랐겠지요. 면 부드러운 동네 선배가 토끼장 만들어 준 것은 기억납니다. 토끼가 어느 정도 자라자 선배는 "도르륵 띡" 해야 새끼를 낳는다며 데려오라 하데요. 짐승은 암놈이 수놈 집에 가야는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선배들은 토끼 짝짓기를 도르륵 띡이라고 불렀습니다. 도르륵 띡이 무슨 말인 줄도 모르면서 도르륵 띡, 도르륵 띡 말 참석하며 놀았습니다.

내 토끼를 ♂라고 표시된 토끼장에 넣었습니다. 저는 ♂를 '송'이라고 읽었습니다. ♀라고 쓰인 토끼장도 있었는데 저는 당연히 '우'인 줄 알았습니다. 선배가 그렇지 않다며 웃었습니다. 글자 같은데 읽을 수 없었던 ♀과 ♂, 씨 값으로 새끼 토끼 한 마리를 줬던 것 같습니다.
 
한 마리만 키울 때는 우영에 자라는 풀로 충분했지만, 새끼가 커서 새끼를 낳고 또 그 새끼가 새끼를 낳아 여러 마리가 되자 먹이 해오는 것이 일이 되었습니다. 토끼 기르는 집마다 사정이 비슷해 먹이를 구하려 멀리 나가는 일이 잦았습니다.
 
마대를 멘 아이들이 떼를 지어 골목골목 이 밭 저 밭 돌아다녔습니다. '큰무덤' 귀퉁이에는 '빈둑낭'이 있고 '엄냇또' 밭에는 '승애'가 있고 또 어느 언덕배기에는 '돌승애'가 있음을 자연스레 알았습니다.

토끼는 빈둑낭을 잘 먹었습니다. 빈둑낭은 야려서 낫으로 작은 가지 정도는 쉽게 자를 수 있는 나무입니다. 우연하게 시둑 같은 데서 빈둑낭을 만나면 남보다 먼저 마대를 채울 수가 있어 좋았습니다. 이런 날은 토끼가 곤밥 먹는 날이었습니다.

토끼장에 몇 가지 넣으면 토끼는 잎자루를 똑 끊고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그 모습이 아깝고 신기해서 이파리를 따 줘도 꼭 돌려 잎자루 있는 곳부터 오물오물 삼켰습니다.
 
빈둑낭은 낙엽수입니다. 날이 추워지면 잎은 떨어지고 빈둑은 남습니다. 윗가지에 있는 잎은 상대적으로 오래 견디는데 노란 모습이 사뭇 곱습니다.

어느 날 이파리 하나 따 잎자루를 물고 돌리기도 하면서, 방대 삼아 갖고 놀며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옛날 내 토끼는 꼭 잎을 돌려먹던데 이유가 있을까, 잎 꼬리를 애써 피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방향성이 있는 감촉, 꺼칠했습니다. 털들이 잎 꼬리 방향으로 거마색(拒馬索)처럼 서 있었습니다. 벌레를 막는 장치,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살갗에 닿는 기운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나를 공격하는 벌레에게 '쉬운 나무'가 아님을 분명히 알리는 몸태였습니다.

돔박이 달리는 나무라 동박낭이듯 빈둑이 달려 빈둑낭이라 부릅니다.
요즘도 빈둑이 보이면 가끔 먹는데 피삭피삭 헤심심한 것이 옛날 맛이 아니었습니다.
내 입맛만 탓하며 지내던 중 이웃 할아버지께서 촘빈둑을 먹는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이파리가 너풀너풀 한 것이 개빈둑낭, 솔람솔람 한 것은 촘빈둑낭입니다.
 

※촘빈둑낭--좁은잎천선과나무, 개빈둑낭--천선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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