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충근 시민기자의 식물 이야기

 

 토끼가 잘 먹는 풀에 승애도 있습니다. 줄기를 자르면 빈둑낭처럼 고름이 납니다. 방가지똥은 ‘돗승애’, 왕고들빼기는 ‘촘승애’ 이 비슷한 것들이 ‘새왓’에 있으면 ‘새왓승애’, 돌무더기에 자라면 ‘돌승애’로 불렀습니다.

 우룩 맞췄다가 ‘무근가름’ 아래로 돌승애 하러 갔습니다. ‘검은여’와 ‘흰동산’ 사이쯤 어디였습니다. 돌담들은 낮았고 팡돌이 놓여 있어 밭이면서 길인 듯한 곳이었습니다. 풀들은 성겼으나 키가 작았습니다. 비크레기에 사는 소나무 아래께 돌승애가 드문드문 있었습니다.

 앞선 동무들이 보이지 않아 좀 불안한 마음이었는데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기를 낚을 때 “올라온다”고 하듯, 지네를 잡을 때 “지냉이”라고 하듯 돌승애가 많이 있다고 외치는 소리와 호응하는 소리였습니다. 초행이라 일행들 곁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과 와리는 소리에 몇 가닥씩 있던 돌승애가 갑자기 시시해 보였습니다. 밭을 건너기 위해 돌담을 짚었습니다.

 소왁, 날카로운 가시가 파고든 느낌, 피가 솟았습니다. 담 구멍에 세 멜룩멜룩, 검은색이 많은 독사가 노려보며 있었습니다. ‘샛배염’에게 물린 사람 소문은 종종 들었지만 나는 독사에게 물린 것입니다. 쥐고 있던 낫으로 독사를 건들자 몸을 재빨리 풀며 사라졌습니다. 나를 문 놈은 죽여야 빨리 낫는다고 했는데, 죽였느냐고 꼭 물어볼 텐데 걱정이었습니다. 탁 조샀어야 했습니다.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잡고 아이들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처음 만난 이에게 뱀에 물렸다고 했고 아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돌아가며 피를 빨아주고 고무줄로 묶어 줬습니다. 모자 창에 있던 고무줄, 또 누군가는 팬티에 있던 고무줄을 빼냈습니다. 손가락을 묶고 손목을 묶고 팔뚝을 묶었습니다.

 지독히 더웠습니다. 목이 너무 말랐습니다. 그해 가장 뜨거웠다는 날, 진해 신병 연병장에서 전진무의탁 훈련을 받을 때도 엔간히 힘들었지만, 그때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집 바로 아래 ‘질모루’를 걸을 땐 한 발 놓기도 힘들었습니다. 갈착헌게 태풍 뒤끝 검은여 돌 위에 놓인 괴기 꼴이었습니다. 그래도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땡땡 더웠던 날, 가지보다 더 검고 크게 변한 내 손가락, 뱀에게 ‘너 왜 물었냐?’ 라고 물었던 일과 고무줄이 있어야 한다면서 서로 몸을 탐색하며 오가던 말들, 개구리를 사서 상처 부위에 처맸던 일, 그리고 헤카진 손을 보시고 너 어쩌면 군대 가지 못할 것 같다던 담임선생님.

 소독약조차 없어서 고름을 공중 수돗물로 씻어 내었고, 찬바람이 불어야 형태를 갖춰 가던 내 손가락, 손톱이 다시 자라 기뻤는데 결국엔 뱀 대가리처럼 변한, 참 그때 나서서 피를 빨아 준 후 “집에는 혼자 가사키여” 미안해하던 상호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선지 큰 회사의 높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한 번 뱀에게 물리면 평생 세 번 물린다는데, 그리고 또 그때 독은 완전 치명적이었을까, 그늘에라도 들어 쉬었다면 혹시, 이런 모든 것들이 돌승애만 보면 비온 뒤 구명물 터지듯 말이 터지는 것입니다.
돌승애---이고들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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