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팡]‘오전 근무조’ 유감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지만. 내가 남편을 따라 농부가 되겠노라고 결심을 굳혔을 때 남편은 제법 호기롭게 말했다.“농사를 지어 식구들 먹여 살리는 것은 내가 책임지겠으니 당신은 텃밭에 오전근무만 해라. 나머지 시간을 다 가져도 좋으니 반드시 작품을 써야 한다”고.한편으로는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로 고마운 말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시무시한 조건이기도 했다. 우리의 귀농 스토리를 잘 아는 어떤 이가 자기 시어머니에게, 누구누구는 시골로 농사지으러 가는데 남편이 오전근무만 하라고 했다며 참 부럽다고 했더란다. 그랬더니 그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아직 철이 없구먼. 농사가 오전 근무따로 오후 근무 따로 해서 되는 일로 아는 모양이지?”하시더란다. 그 분은 평생을 시골에서 채소 농사를 지어오신 분이라고 했다. 나도 물론 이곳에 온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그 분 말씀마나따나 농사라는 게 오전 오후 근무가 따로따로일수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늘 24시간 365일 비상대기해야 하는 일이 농사인 줄 알겠고, 때로는 나무가 시키기 전에 땅이 부르기 전에 야근(?)도 불사해야 하는 일이 농사인 줄 이미 터득했다. 애초에 ‘오전 근무조’ 따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 농사인 것을!적어도 50센티미터는 됨직한 폭설이 내렸던 지난 며칠 동안 우리 부부는 쉬지 않고 일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 첫날 하우스 지붕 비닐은 걷어둔 상태였다. 남편과 나는 비닐 지붕에 그대로 눈이 쌓이는 것보다 아래로 떨어지는 게 더 나을거라고 생각했으니 그것은 곧 경험없는 초보 농꾼의 한계 그 자체였다. 눈보라 속에서 경운기를 우리집까지 몰아다 준 승훈씨와 상철씨가 깜짝 놀라면서 곧바로 비닐을 덮으라며, 할 수 있다면 하우스에 장작불을 지펴 눈을 녹이라고 가르쳐주었다. 이튿날 여전히 쏟아지는 눈, 하우스 안은 컴컴했고 우리는 행여나 하우스가 무너지지나 않을까 조바심을 내며 장작불을 피웠다. 다행히 감자를 심기 위해 귤 묘목과 고추나무를 이미 뽑아놓은 상태라 불을 놓기가 쉬었다. 서너 군데 불을 피워놓으니 아치 형태의 지붕위의 눈이 짝 갈라지며 서서히 홈통 쪽으로 흘러내렸다. 내가 눈속을 헤집어 장작을 찾아다가 불을 피우면서 혹시나 내부의 온기가 바깥의 냉기와 만나면서 비닐이 찢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기우로 속을 끊이는 동안 남편은 경운기로 밭을 갈기 시작했다. 눈에 갇혀 어차피 다른 일은 볼 수가 없으니 눈이 오는 동안 비닐 하우스에 감자 파종까지 다 끝낼 계획이었다. 세상 일이 계획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서너 고랑만 갈아도 로터리에 낀 풀과 짚을 제거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아무래도 고랑이 낮은 것 같아 로터리 대신 쟁기를 바꿔 달았지만 익숙치 않아 삐뚤빼둘 고랑 모양이 엉망이었다. 다시 로터리로 바꿔달기는 어찌 그리 힘이 드는지. 기계치(機械痴)인 나는 물론이고 기계 만지기에 능숙하지 않은 남편도 쩔쩔매기 일쑤였다. 5백평도 안되는 밭을 가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면 웃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게다. 그렇게 눈이 오는 동안 내내 우리는 경운기와 씨름하며 밭을 갈고 매운 연기를 마셔가며 장작불을 땠다. 이게 어디 ‘오전 근무조’의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게다가 비닐 하우스라는 것도 그렇다. 이것이 없을 때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그날은 휴일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일이 있으면 날씨 핑계 댈 것도 없이 일을 해야 하고 태풍이 불면 날아갈까, 눈이 오면 무너질까 오만가지 걱정에 사로잡혀 사니 이건 진짜 아무리 봐도 ‘일년 무휴 전일 근무조’이다. 창밖에 눈발이 너울거리는 날 뜨뜻한 아랫목에 배깔고 누워 먹던 김치 빈대떡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나는 도리없이 ‘전일 근무’를 해야 했다.가끔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남편에게 볼멘 소리나 던지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나 아무래도 속아서 왔나봐!”조선희/남군 표선면 토산리제248호(2001년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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