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수 명(동화작가)

아버지는 지민이가 있어서 정말 든든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겁을 잔뜩 먹은 얼굴로 지아가 아버지 방에 들어왔다. 그런 지아의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 아버지는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불쾌한 생각이 또다시 불쑥 올라와서 고개를 몇 번이나 가로 젓는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지아는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아야. 그동안 아버지가 너무 했지.”

지아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몸을 어떻게 가누고 있어야 할지, 머리가 멍해졌다. 우두커니 서서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지아를 아버지는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버지와 눈이 마주친 지아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렸다. 그동안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던 지아는,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런 지아를 앉으라며 손짓을 한다. 그리고 농문을 열었다. 농안 깊숙이에 있던 까만 가죽가방을 꺼내서 내려놓으신다. 가방엔 작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아버지는 상자에서 열쇠를 찾아 가방을 연다.

수첩도 보이고, 사진뭉치도 보였다. 아버지는 가방 속을 뒤적였다. 엄마사진이 보인다.

‘엄마다, 엄마!’

지아는 엄마사진을 보자 울컥해진다. 언젠가 갑자기 사라진 엄마사진이 그곳에 있었다. 아버지는 엄마 사진을 옆으로 밀친다. 엄마가 쓰던 가계부인지 메모장인지 오래되어 낡은 노트들도 몇 권 보였다. 아버지는 그것들을 몽땅 바닥에 꺼내 놓았다. 그리고 가방 맨 아래쪽에서 하얀 종이가방을 꺼낸다. 낯이 익다. 입학식 하던 날, 지아에게 건네셨던 그 종이가방이었다. 가방 속에 있을 빨간 원피스!

지아는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조용한 방에서 지아의 침 삼키는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네가 찾던 거다.”

아버지는 지아에게 하얀 종이가방을 주었다. 지아는 손이 떨린다. 어서 펼쳐보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눈치를 살핀다.

“펼쳐봐.”

가슴이 쿵쿵 방망이질을 했다. 손에서 땀도 한줌 배어나왔다. 지아는 가슴팍에 손을 쓱쓱 몇 번 문지르고 종이가방을 끌어당긴다. 갑자기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다. 아버지를 다시 한번 힐끗 올려다본다. 아버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빨간색 원피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빨간 원피스가 지아의 눈에 들어 왔다. 눈물이 후두룩 떨어져 빨간 원피스에 검은 점으로 박힌다. 지아는 참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어디서 그런 설움이 몰려드는지 더는 억누를 수가 없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울음을 토해내고 있는 지아의 모습은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래, 지아야……, 넌 내 딸이었다.’

아버지는 지아를 꼭 안아주었다. 너무 미안했다. 아버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지아와 아버지는 그렇게 한참동안을 말없이 있었다.

“지아야, 그동안 아빠가 많이 미안하다.”

지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아버지 품에 안긴 지아는 너무 행복했다. 아버지의 품은 여전히 너무나 따뜻했다.

아버지는 지아를 꼭 껴안고, 생각한다.

‘마음이라는 것이 갑자기 이렇게도 평화로워 질 수 있는 거였구나.’

지아는 아버지의 넓은 품에서 무서움도 두려움도 잊어버렸다. 아버지는 바닥에 있던 엄마사진과 몇 권의 노트들, 엄마의 유품들을 모두 챙겨들고 마당으로 나가신다. 그리고 커다란 양은 세수 대야에 그 모든 것을 넣고 라이터 불을 갖다 댄다. 불은 처음엔 포르스름한 연기를 내면서 잘 붙지 않는 듯 하더니, 이내 바싹 마른 노트들을 활활 삼켜버리고 있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너무 오래전에 엄마가 떠나버려서일까?

아버지는 다 타버린 재를 모아서 비닐봉지에 담는다. 희끗한 재가 묻은 양은대야를 수돗물로 헹궈내며 꺽꺽해진 목소리로 아버지가 말을 한다.

“오늘 외식하자.”

외식이라는 말에 네 자매는 방금 전까지 쓸쓸했던 기분을 잊어버렸다. 아주 오랜만에 지아 가족들은 즐겁고 맛있는 식사를 했다. 식사를 어느 정도 마칠 때였다.

아버지는 네 자매를 둘러보면서 서울에 좀 갔다가 올 거라는 말을 하신다. 지민이 언니만 빼고 모두 깜짝 놀라는 얼굴이다.

“아버지, 왜요?”

“아버지 언제 올 건데요?”얼굴들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토해낼 듯 울상이 되었다.

“겨울이 되기 전에 올 거야.”

아버지의 표정도 슬퍼보였다. 가고 싶지 않는 데 가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

지민이 언니가 다시 한 번 아버지를 말려본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번에 갔다 오면,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아주 금방 돌아올 수도 있다며 네 자매의 만류를 뿌리쳤다. 또 걱정 말고 모두 큰언니 말 잘 듣고, 서로 도와가면서 잘 지내고 있으라는 당부도 한다.

모처럼의 외식은 무척이나 쓸쓸한 송별식이 되어버렸다. 아무도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묵묵히 남은 식사만 했고, 네 자매도 아버지처럼 말을 하지 않고 남은 음식들을 먹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 온 아버지는 지민이를 불렀다. 아버지는 생활비가 든 통장을 건네준다. 그리고 서울에서 생활비를 조금씩 부치겠다고 했다. 지민이는 아버지를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애써 참고 있었다.

 

4. 민호와의 만남

 

밤새 비가 내렸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가 어찌나 쓸쓸하고 처량하게 들리던지 네 자매는 잠이 오지 않았다.

“언니, 아버지 정말 갈까? 안 갔으면 좋겠어.”

지아가 말했다.

“나도.”

“정말, 나도.”

그렇게 뒤척이던 네 자매는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럽게 결정을 내렸고, 네 자매에게 이야기까지 해 놓았지만 마땅히 갈 곳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창문에 어둠이 걷히고 있다.

아버지는 농문을 열고,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입을 옷 몇 벌, 그리고 깊숙이 넣어둔 통장 하나를 꺼내서 펼쳐든다. 작지 않은 돈이 들어있는 통장이었다. 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통장을 접어 바닥에 내려놓는다. 가슴에 싸한 아픔이 느껴졌다.

지아 엄마가 남기고 간 돈이었다.

 

지아를 낳고 변을 당한 그날.

까맣게 그을린 지아 엄마의 얼굴, 아버지는 또 다시 그날이 악몽처럼 떠오른다.

그 때 지아 엄마 앞으로 나온 보상금이다. 이건 정말 필요할 때 쓰려던 돈이었다.

 

아버지는 네 자매를 불러서 마지막으로 당부를 하고, 윗옷 안쪽주머니에 통장을 넣는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우산으로 받고 아버지는 대문을 나섰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섰던 네 자매는 심장이 쿵 떨어진다. 하지만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의 뒷모습을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인 눈으로 물끄러미 보고 서 있기만 했다.

“아버지, 빨리 와야 해요!”

지아가 입 나팔을 만들어 소리를 지른다.지아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버지는 순간 발걸음을 멎었다.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들고 있던 가방을 더욱 세게 감아쥐고 조금 전 보다 빠른 걸음으로 다시 걷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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