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수 명 (동화작가)

아버지가 서울로 올라가신지 꽤 여러 날이 지났다. 그 사이 아버지는 지난번과는 달리 몇 번의 전화를 했다. 이제 네 자매도 아버지가 안 계신 일상에 서서히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지아는 매일 철길 옆 본부로 갔다. 아버지가 계실 때보다도 지아는 더 많은 시간을 본부에서 보내고 있었다.

숨이 헉헉 막히는 뜨거운 여름날의 열기도 본부에 누워 있으면 이내 사라졌다. 바닥에 깔아 놓은 블록은 시원한 냉기를 온 몸으로 전해 주었고,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흙냄새와 비릿한 풀냄새는 찐득거리는 더위위 열기를 단숨에 식혀버렸다. 게다가 얼키설키 엮어 놓은 아카시아나무가지 사이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지아를 몽상의 세계로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태워 빠르게 데려갔다.

‘바람의 집’

지아는 본부 이름을 ‘바람의집’이라고 지었다.

“바람의 집, 네 덕분에 나는 하나도 슬프지도 외롭지도 않아. 이 세상에서 나는 여기가 제 일 좋아!”

‘바람의 집’

팻말을 세운다. 온통 지아만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지아가 바람의집으로 막 들어섰을 때였다.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몇 차례 들렸다. 지아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바람의집에 갑자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순간 지아는 긴장했다. 등골에 오소소 소름도 돋았다.

“멍멍!”

커다란 개였다. 흰색 털에 커다란 갈색털이 듬성듬성 섬처럼 박혀있는 세인트버나드.

“너, 누구야?”

철렁 내려앉았던 가슴은 진정이 되었다. 개를 좋아하는 지아가 낯선 송아지만큼 큰 개를 반긴다.

“너, 어떻게 여기 왔니?”

개는 눈꼽이 낀 눈을 끔뻑끔뻑이며 지아를 본다. 찐득한 침을 달고서.

“해에~리~, 해에~리!”

“멍멍~, 멍멍~!”

“야, 조용히 해. 여기서 짖지 마. 다른 사람이 여길 알면 안 돼!”

지아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다른 손으로 커다란 개의 엉덩이를 돌린다. 하지만 개는 꿈쩍도 않고 여전히 커다란 소리로 컹컹댔다.

“야, 여기서 짖지 마. 짖지 말고 가, 빨리 가, 가란 말이야!” 그 사이 처음 보는 낯선 남자아이가 숨을 헉헉 몰아쉬며 나타났다.

“해리, 해리!”

지아 또래 아이다.

“해리!”

해리를 보고 활짝 웃는다. 유난히 대문니가 큰 아이였다.

“어~ 누구니?”

남자아이는 바람의집을 흘깃거리며 지아와 주변을 살폈다.

“너 여기서 살아? 여기가 네 집이니?”

그 아인 미처 지아가 대답도 하기 전에 폭풍질문을 쏟아냈다. 그 바람에 지아는 남자아이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본다.

“너, 말 할 줄 모르니?” 급기야 남자아이는 손가락을 머리 옆에 대고 빙빙 돌린다. 아마 지아가 말도 못하고 머리가 이상해진 아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멍멍!”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들킬 것 같은 지아가 소릴 지른다.

“야, 빨리 이 큰개 데리고 가, 빨리!”

“너 말 하는구나!”

남자아이는 반색을 한다. 지아는 그런 남자아이가 거추장스럽다.

“야, 어서 개 데리고 가. 사람들이 여기 알면 안 돼! 여긴 내 본부란 말이야!” “본부?”

남자아이는 본부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지아의 본부를 휘 둘러 본다.

“멋지다!”

연신 입을 헤벌리고 떠들며 돌아갈 생각을 안 한다.

“야, 이제 제발 좀 가 줘!”

지아는 해리와 그 불청객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나는 박민호라고 해. 나도 여기서 같이 놀자, 그러자. 바람의 집, 이름도 정말 멋지다.”

지아는 어처구니가 없고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나타나서 함께 놀자니 어디 말이 되는 소린가? 기분이 정말 나빠졌다. 어이가 없어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지아를 밀치며 박민호는 신발을 벗고 바람의집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야~!”

“야, 나가!”

지아가 발끈하며 화를 냈지만, 민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가 막혀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지아는 민호가 벗어 놓은 신발을 집어 멀리 던져버렸다.

“뭐야, 내 신발!”

“빨리 나가!”

“너, 정말~!”

“빨리, 나가~, 나가~아~!”

지아가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야, 정신차려.”

지아의 머리를 툭치며 말을 한다. 누가 잘못했고, 잘했는지, 이런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깡마른 계집애를 한대 때려 주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다.

“아니,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왜 때려!”

지아는 순식간에 달려들어 민호의 팔을 물어뜯었다.

“아아얏~!”

민호의 비명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물어뜯던 지아가 더 놀랐다.

“멍멍!” 순간, 민호의 큰 개 해리가 지아에게 달려들었다.

“해리, 하지 마!”

민호가 해리를 붙잡았다. 하지만 해리는 지아에게 눈을 부릅뜨고, 침을 줄줄 흘리며 몸부림을 친다.

“야, 무서워, 저 개 빨리 어떻게 해!”

겁에 질려 새파랗게 사색이 된 지아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표정으로 민호 등 뒤로 숨는다.

‘겁쟁이면서 용감한 척 하기는.’

지아의 얼굴을 보며 민호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해리, 그만 둬. 가만, 가만히 있어.”

민호는 거드름을 피우며 해리의 등과 턱을 쓰다듬으며 명령했다. 지아는 그런 민호가 용감해 보였다. 조금 전에 그렇게 겁먹었던 제 모습이 상상이 돼, 몹시 창피했다.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조, 조금 전에 미안했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지아가 억지로 말을 한다.

“아니야, 주인 허락도 없이 들어 온 내가 미안해!”

민호와 지아는 서로 미안하다며 사과를 한다. 그리고 둘은 환하게 웃었다.

“나는 서울에 살아. 외갓집에 잠깐 다니러 왔어!” “그랬구나. 어쩐지 낯이 설었어.” 민호는 정말 멋진 본부라고 몇 번이나 지아에게 말했다. 지아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이제까지 바람의집에는 아무도 안 데려왔었지만, 이렇게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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