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오충근의 식물이야기

어디에 효험 있는 나무라면서 어머니가 쪽지를 내미셨다. 노인회관에 놀러갔다 소문 들으셨다는데 짚이지 않았다. 이런 나무도 있었던가. ‘산묘지낭’을 알려준 사람은 구순을 넘기신 어른, 그 어른 조카가 효험을 보았단다. 다행히 한 다리 건너면 아는 분이라 전화를 드렸더니 ‘산유지낭’이라고 고쳐주셨다. 산유지낭이라면 산유자나무가 아닐까, 산유자나무는 날카로운 가시가 특징인 나무다.

혹시 가시 이수과?
“아니여 가시 엇다. 빨간 열매가 달리고 해변에는 자라지 않는다. 내창 여피 흩어져 사는디 설명하기 참 곤란허다”

 제주식물 이름을 잘 아는 H에게 전화를 걸었다. 산유지낭 알아지크냐? 내 설명을 듣고는 가막살나무 아니카예? 한다. 그건 ‘얼루레비’ 잖아? “게메예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게 부를지도 모릅주. 떠오르는 나무 어신게 마씀”

널리 알려진 이름이 아니라면 처음 알려준 분에게서 정보를 얻는 것이 순서다. 명절 아랫날이지만 알고픈 마음에 ‘조카님’에게 두 번 세 번 연거푸 전화를 드렸다.

 “키는 혼 30센티미터에서 어른 지레 정도, 빨간 열매가 달리는데 폿보다는 크다. 먼나무 열매보다는 훅다. 낙엽수는 확실하다. 낭 굵기는 애매하다. 솔진 것도 있고 얄룬것도 있쪄. 산 볼레보다는 호썰 크멍말멍 헌다 ”

또, 효험을 봤다는 어떤 분 이야기를 어머니가 전해 주셨다.
“웃법호촌에 한 그루 있었지만 누가 뿔리까지 파가버려서 씨가 졌다.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다. 그 낭만 찾으면 병 고치는 건 백발백중인디게”

 이 말은 안 들으니 만 못 했다. 나무에 신화나 전설의 옷이 입혀져 있는 것이다. 정말 효능 있는 식물이면 얼마나 좋으랴. 어떻게 문제를 풀까 궁리하다, 알암직한 할아버지께 여쭈었더니, ‘개다리낭몰다리낭’아니냐고 말씀하신다. 처음 듣는 나무다. 산묘지낭이 아니라도 무척 반가웠다. 모처럼 희한한, 눈이 베롱한 나무가 내게로 온 것이다. 이런 게 횡재구나. 식물에 대한 말을 주고받다 말이 새끼를 칠 때, 또꼬망 들썩들썩 기분이 확 좋아진다. 삼춘! 개다리낭은 뭐꽈 잘 고라줍서. 통화상태가 좋지 않아 장소를 옮기며 말씀을 들었다.

 삶 속에 스민 식물 이야기 채집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어른들 말씀을 따라다니다 보면 실마리가 잡힌다. 이게 요령이다. 식물을 은근히 화제 삼아야 걸리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용을 써도 얻어 들을 수 없는 경우가 사실 더 많다. 어른들은 기억력이 젊은 사람보다 약해선지 직접 물어보면 잘 안 된다. 우연히, 말 중에 툭 튀어 나오는 것에 알찬 정보가 많다.

지금도 식물에 대한 사연은 많은 것 같다. 엊그제 기분 잡친 일 있음에도 이걸로 얼마간 풀린다. 이런 게 사는 맛, 내 가난한 생활의 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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