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가 만난 서귀포사람들>

 

우리 어머니는 그림을 그리신다.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겨울철이면 엽서나 사진으로 나와 있는 풍경들을 그리신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원본에 사람이 없는데도 어머니 그림에는 꼭 사람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어머니의 답은 아주 간단하다.

 사람이 있으니까 풍경이 더 사는 것 같지 않니?

 듣고보니 정말 그랬다. 사람 없이 풍경만 있는 엽서나 사진이 정물화처럼 딱딱하다면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도 누군가가 존재하는 풍경에서는 어떤 스토리가 느껴지고 그래서 훨씬 정감이 갔다.

 여행도 그렇다. 제 아무리 멋진 곳도 아는 사람이 없다면 해가 진 다음은 쓸쓸한 객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찾아가 반겨줄 이가 있다면 그가 있는 곳은 관광명소가 아닐지라도 설레는 여행지가 된다. 음식또한 그러하다.  가장 맛없는 밥은 혼자 먹는 밥이요, 맘 맞는 사람끼리 먹는다면 소찬도 진수성찬 부럽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도 나온  것일 게다.

 서귀포에 와서 지낸 지 반백일이 되어 간다. 서귀포의 자연에 나의 오감이 익숙해질 만하니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뚝뚝했던 사람들이 두 번 세 번 마주치면서  그 정깊은 속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관광버스를 타고 한 번에 훑고 지나갔던 서귀포 풍광을 올레길로 꼬닥꼬닥 걸으면서 자연이 만든 속살에 전율하는 것과 닮은 일이었다.

  자연미를 간직한 서귀포에 인간미를 잃지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음엔 눈뜰 무렵 맹맹이 아저씨 소식을 듣게 되었다. 부음이었다. 서귀포 매일 시장에서 돼지와 닭을 잡는 일과 택배, 각종 폐기물들을 처리하는 일을 해오셨다는 그분, 생선 가게를 하는 할망들이 우리 아방없이는 살아도 맹맹이 없이는 못 산다고 할 만큼 온갖 허드렛일을 헌신적으로 해 온 그 분의 죽음 앞에 시장전체가 슬픔에 젖었다고 했다.

  올레 시장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이 끝나고 난 어느 날, 나는 우연히 맹맹이 아저씨를 보게 되었다. 오랫동안 맹맹이 아저씨를 지켜 본 상인들 중에 한 여성이 여럿이 밥먹는 자리에서 그를 추억하던 중  맹맹이 빙의로 그를 살려낸 것이다.

  자아, 올리고 올리고(쓰레기 비닐봉지를 오토바이에 실어올리는 흉내),돈은 알아서 줍서, 자아, 올리고, 올리고, 할망은 그 냥 놔 둡서(내미는 돈을 마다하는 흉내), 나 노는 거 안좋아 햄쪄, 놀면 뭐해? 매일매일 일하는 게 좋아, 자, 올리고 올리고....

▲ 매일올레시장에서 허드렛일을 헌신적으로 해온 '맹맹이 아저씨'. 사진은 작고하기 이전 2008년 당시 모습.그는 얼마전 올레시장장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그 분의 죽음 앞에서 시장 전체가 슬픔에 젖었었다.

 약간의 장애로 발음이 명료하지 않아 맹맹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그 아저씨  특유의 말투를 기막하게 흉내내는 바람에 사람들은 박장대소하다가, 문득 그리움에 결국 눈물을 흘리고들 말았다. 아저씨는 과연 매일시장의 조용필이었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게 하는 것이나, 작은 오토바이 하나로 질척한 시장의 피를 맑게 걸러내는 거인의 삶을 산 것이나, 매일올레시장의 전설로 자리매김된 것이 그랬다.

  우리는 왜 모든 것이 지나간 다음에야 진정한 가치를 아는 것일까. 맹맹이 아저씨의 죽음은 한 충직한 일꾼이 사라진 것 이상의 아쉬움이 있었다. 장애의 몸 속에서 피워낸 티없는 인간미, 그는 가장 낮은 모습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 속에 사랑을 실어나른  천사에 다름 아니었다.

 맹맹이 아저씨를 살아생전 뵙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이제부터 서귀포 사람들을 기록하고자 마음 먹었다. 자연이 훼손되듯 인간미가 사라져가는 요즘 자연을 닮은 마음을 여전히 품고 사는 사람들이 우리 모두의 삶에 위로와 용기를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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