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

아저씨는 단박에 내 신발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이거 아주 좋은 신발입니다”

얼른 보면 당장 버려도 아까울 것 없어뵈는, 밑창 떨어진 샌들을 귀하게 맞아주는 마음에 나는 벌써 기분이 좋아졌다.

아저씨가 샌들을 살펴보는 동안 나는 가게를 둘러보았다.  신사숙녀화를 쭉 훑어보던 내 눈에 놀라운 구두가 한 켤레 들어왔다. 초록색 ,더구나 신발전체가 빤짝이로 화려하게 빛나는, 저건 뭐지? 댄스화였다. 갑자기 동화가 생각났다. 깊은 밤, 사람없는 공간에서 초록색 구두가 춤을 추기 시작하면 초록 빤짝이를 불빛 삼아 구두들이 저마다의 스텝을 밟으며 공중에 붕붕 떠다니는 모습이 백일몽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바닥창을 대고, 뒷굽을 조금 높게 따로 붙혀야 편할 거 같은데...."

구두 진찰을 마친 아저씨가 나를 깨웠다.

"좋아요. 한 시간 쯤 후면 될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아저씨께 가볍게 목례를 하려는데 앗! '수선비 선불, 10일 경과 후 폐기'라는 글씨. 현금이 똑 떨어져서 은행에 갔다 올 심산이었는데.....

한 순간의 당황은 나를 동화속에서 현실세계로 재빨리 돌려놓았다. 잽싸게 돈을 찾아 간단명료하게 장을 보고 오니 완쾌된 샌들이 나를 맞았다. 가게를 나오다 문득 배낭 속의 사과가 기억났다. 아저씨게 사과를 내밀었다. 후불을 양해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랄까.

"아니, 나는 받을 돈 다 받았는데 이렇게 선물을 주시면, 나는 어떵합니까?"

사과 받은 손을 어쩌지 못하고 망연히 나를 바라보시는 아저씨를 뒤로 하고 오는데 아저씨의 말이 계속 따라왔다.

"받을 돈 다 받았는데 선물을 주면 어떵합니까?"

그 말은 집까지 따라왔고 다음날 아침에도, 그 다음날도 사라지지 않았다. 왜 이럴까? 까짓 사과 한 알, ‘고맙다’는 한마디면 족한 게 요즘 세상 아닌가. 그런데 내가 내민 사과 한 알을 선물로 보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었다. 일확천금이 만인의 당당한 소망이며 돈 앞에서  뻔뻔해질 수 있는 것도 자본주의 시대의 능력으로 여겨지는 게 작금의 풍토 아닌가. 그런데  이미 돈을 받았으므로 선물을 받는 것은 미안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건 감동이었다.

신발 대신 서귀포 신문 한 부를 손에 들고 아저씨를 다시 찾아갔다.  .

"아이구, 왜 나를......배운 것도, 가진 것도,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인데....."

그러나 누구한테 배운 바 없이 가방, 허리띠, 바느질, 어지간한 건 다 고쳐줄 수 있다니 타고난 손에 더 배울 것이 무엇인가. 이 일로 키워낸 4남매가 있는데 왜 가진 게 없는가. 고쳐놨는데 안 찾아가서 버릴 때는 말도 못하게 속상해도, ‘버릴라고도 했는데 새거 닮네요’ 하는 한마디를 보람으로 여기는 마음 보다 더 크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이제 겨울이 돼야 일이 많지...아무래도 여름보다 신발이 중한 걸 알게 되니까...나도 마누라가 그렇게 큰 줄 몰랐는데 여자가 소중한 걸 죽고나서야 알았어...... "

너무 고생을 많이 시켰기에 이제는 친구들 사귀고 즐겁게 살길 바랬지만 병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아내, 그리움은 결국 아저씨 눈가에 이슬로 맺혔다.

자구리 공원에서 새벽운동할 때 꼭 뵙자는 말로 작별인사를 대신 하고 나오는데 아저씨가 급히 따라 나오셨다. 
신문에 쓰지 말라고 하시면 어쩌지?

"내가, 이렇게..... 커피 한잔도 대접할 줄 모르고......"

돌아오는 내내  그 말이 따뜻한 바람으로 내 마음을 흔들었다. 
두 번이나 사기를 당하고도 사람의 마음결을 잃지 않은 아저씨, 아저씨는 신발만 고친 게 아니라  내 마음도 치유해주고 계셨다. 나야말로 사과 한 알로 큰 선물을 받았다. 미안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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