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 여자나이 꽃띠는 중년부터… 칠선녀 춤바람

해가 진 저녁 6시 30분, 중년의 여자들이 컴컴한 서귀포 새마을금고 계단을 오른다. 이어서 들리는 깔깔깔 웃음소리. 회의실 탁자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유리창을 향해선 열명의 여자들, 표정이 진지하다 못해 숙연하다. 드디어 음악이 흐르고 열 명의 여자는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48세부터 64세까지, 아줌마 댄스팀, 제주올레 칠선녀.

나는 생전 몸을 흔들어 본적이 없는 사람이야. 오죽하면 결혼할 때 피로연에서 춤추라고 친구들이 그렇게 성화를 대도 끝까지 버텼을까.

나도 완전 음치에다 몸치를 타고 났어. 노래방에 따라가도 노래는 절대 안했어.

나는 죽어도 못할거다 했어. 그런데 육십 넘어 난 춤바람에 우울증도 싹 낫고 여기 재미져서 이젠 안 오곤 못살커라, 하하하

이런 사람들이 도대체 어쩌다가 춤꾼이 된 거지? 제주올레였다. 올레와 연애에 빠져 올레안내소에 근무하거나 올레지기나 올레지킴이가 되는 등 인생이 올레에 엮이면서 올레축제를 위해 춤판에 뛰어든 것이다.  올레가 춤을 낳고 춤은 무엇을 낳았을까?

2012년, 올레 칠선녀의 첫 공연 댄싱 퀸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그 짜릿함과 흥분으로 본격적으로 춤바람이 나기 시작했다.

낮에 일해서 힘들어도 여기 오면 댄싱 퀸으로 힘이 팍팍 나. 오늘도 침맞고 왔어. 남편이 드글락하게 허고 오지 말랬는데…

미깡 따다가도 이 생각만 하면 궁둥이가 들썩 들썩 한다니까.
연습 오는 거 막 기다려져요. 삶에 활력이 되니까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 왕복시간 안 아까워요

저녁밥도 안 먹고 오자마자 1시간 넘게 빠른 템포에 맞춰 앞뒤양옆 돌아보며 리듬타느라 여념이 없는 이 여자들, 그들 마음 속에는 어떤 바람이 불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나는 원래 음악듣기를 즐겨하고 춤도 좋아했어. 잊은 줄도 모르고 잊고 살다가  지금은  나도 모르게 노래가 나와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는 나름 스타였는데 살찌고 몸이 많이 늘어졌지. 이게 될까 했는데 안 올라가던 팔도 올라가고 몸에 리듬이 들어오니 옛날 감흥이 살아나는 걸 느껴

나는 중학교때부터 리듬 좀 탔지. 나이 들어 다시 할려니까 더 멋지게 하고 싶어서 요즘 라인댄스를 따로 배우면서 완전 신나

여기 온다는 자체가 중요한 거야. 나도 시간 맞춰 갈 데가 있고 뭔가를 이뤄내야 하는 사회적인 일이 있는 거잖아

마음속의 소녀가 살아나고 있었다. 춤추는 동안은 엄마, 아내, 주부, 농사일, 직장일, 해야할 일들이 다 날아가버렸다. 춤은 자유로운 바람이었고, 잃었다가 되찾은 날개옷이었다.
선녀들끼리 사이는 어떨까? 요즘은 숫자가 늘어 열명이라는데.

좁은 바닥에서 여자들 모이면 뒷말난다는 소리가 들리긴 했어. 그런데 그건 옛말이라.

이제는 성격도 다 파악했고, 인생 한 고비 념기고 만난 동생언니니까 속이야기를 다하지.

자꾸 봐난 사람 보고싶어서 죽어져.

갑자기 나도 여기 끼고 싶어진다. 몸치선배들도 여럿 계시니 나라고 못할쏘냐.

연습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와서도 아쉬워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옹기종기 모여 선 칠선녀는 그 모습도 영략없는 소녀, 그들이었다.  돌아온 소녀시대!

나는 그날 칠선녀에게서 보았다. 여자에게 인생이 있다는 것을, 여자나이 꽃띠는 방년 18세가 아니라 중년부터라는 것,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며 자매애는 강하다는 것, 무엇이든 열심히 햄시민 해진다는 것을.

바람타는 섬 제주, 칠선녀의 춤바람은 쉽게 멎지 않을 것 닮다. 세상의 모든 어멍과 할망들이 소녀시대로 돌아오는 그날까지, 칠선녀의 춤바람아, 부디 멈추지 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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