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충근 시민기자의 식물이야기>

왕고들빼기, 동네 이름은 두 가지입니다. 연세 드신 어른은 날로 먹을 수 있어 촘승애라 부른다 하셨습니다. 나이 덜 많은 분은 새왓승애라 칭했습니다. 우리 또래도 새왓승애라 합니다. 전에 새왓이나 새왓 곁에 많이 자라 붙은 이름입니다.

식물에 대한 이야기는 무턱대고 물어야 효과적일 때가 있습니다. 실마리를 잡으면 무조건 덤비는 것입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질문합니다.

동네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께서 촘승애는 새왓트멍에 난다. 아무디나 나지 않고 건디 난다. 검질매당 점심에 장 찌겅 먹었다. 고름이 민민 나는 풀이주. 맛은 씁쓸헌다. 여름에 먹을 거 어실 때난 그거라도 어디 어신가 막 봐지곡 해났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덧붙이시기를, 그때 먹어난 풀 중에 백해에 나는 멜순도 하영 토당 먹었쪄. 그리고 어린 개바농풀도 데우청 먹어나시매.

연세가 그 아래 할머니께서는 요즘은 건강이나 뭐다 해서 새왓승애를 먹는댄해라마는 그때사 먹을 거 어시난 쓴쓴헌거 먹었주. 배고픈 때난 게. 나 시집왕 보난 물싹하게 솖앙 우막우막 먹는 집도 이서라. 또 친척 삼춘은 그거 장마 때가 그나마 좋나. 비가 하영 오민 덜 쓰주. 다른 땐 칼칼 써그네 구지는디 긍해도 먹을 거 어실 때난 그거라도 먹으멍 살았주.

저는 승애를 단순히 토끼 좋아하는 풀이라 생각하는데, 어른들은 한숨 먼저 내쉬셨습니다. 그리고 살아온 삶을 언급하셨습니다. 승애를 송키로 썼던 시절의 간난, 들었지만 감히 도시릴 수 없는 이야기가 승애 뒤에 있었습니다. 헤쳐 온 시간 떠올리는 것만으로 니에서 신물이 나고 메푼 것 같았습니다.

요즘 승애 철입니다. 각자 자기만큼 씩 자라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어릴 때는 귀했던 풀이 공한지, 길가, 밭 가리지 않고 보입니다. 토끼가 없으니 지천일까요? 저리 많은데 마대 메고 다니던 때는 왜 그리 없었는지요.

떼 지어 토끼 것 하러 다니다 가끔 토끼풀, 돗승애나 새왓승애 따위를 걸고 내기했습니다. 낫을 던져 땅에 박히면 이기는 놀이였습니다. 또 신발을 발로 던져 신코가 정한 방향으로 가면 우승하는 게임이 있었는데, 저는 어려서, 무엇을 걸고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뒤탈이 무서워선지 끼워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암자에서 승애를 처음 먹던 날,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습니다. 토끼나 먹는 풀을 먹는다는, 눈으로 먼저 거부했기에 탈났겠지요. 쓴맛과 함께 기억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이름과 표준 식물명이 다를 경우, 표준명은 아무래도 어색합니다. 개명한 친구 이름인 듯, 왕고들빼기도 그러합니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