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봉>문순자/수필가

비가 올 것이라 하여 며칠 전부터 벼르던 오늘. 마음 편히 앉아서 밀린 숙제를 하리라 생각했다. 사색의 창을 활짝 열어보리라고 했는데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다. 오는가 하면 가버리기를 거듭하는 비. 나의 발목을 묶어놓기만 할 뿐 마른 땅을 적시지 못하고 있다. 비다운 비가 안 오니 농심은 밭으로만 향한다. 그동안 열심히 하였으니 하루쯤 쉬어가도 된다. 몇 번이고 마음을 다스려보지만 좌불안석이다. 다른 농가들도 쉬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어정쩡한 날씨는 저 아줌마들의 발걸음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밭으로 가야할 여인네들이 정자나무 아래로 모였다.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여인네들의 수다가 무르익는 것 같다. 유독 목소리 큰 그녀의 폭소만이 우리 집 까지 들릴 뿐이지만.

요즘은 길가다 누구를 만나면 마늘 밭에 비닐 모두 덮었는지를 묻는 게 인사다. 나무 아래 모인 저이들도 같은 인사말로 대화의 장을 열었을 것이다. 얼마 전 핸드폰 문자로도 요즘 농사에 대한 인사말을 받았다.

▲ 삽화/김품창화백

좋은 세상 살고 있다.
전화는 앉아서도 높은 성(?)을 쌓을 수 있게 하고, 천리를 오갈 수 있게도 한다. 말 한마디 전하기 위해서도 이웃을 방문해야 했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 애들 알기나 할까? 언제부터인가는 문자메시지로 많은 부분 대신하는 것 같다. 요구사항에 응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인상이 풍기는 문자메시지.

공들여 쌓은 성만 못할 때가 있지 않을까? 문자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는 이들이 있을 터. 쉽게 쌓은 성은, 성과를 기대하기도 애매하지 않을까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길을 가면서도 문자로 대화를 하는데 편한 세상이라고 해야 할지, 아리송하다.

우리 마을은 시골이다. 전화가 없던 옛날, 전화 할 일이 있으면 우체국에 가야 했다. 불편한 줄 몰랐다. 우체국에 가서 오매불망 그리던 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너무도 감사했다. 전화 속에서 그리운 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반가움에 어쩔 줄 몰랐다. 돌아서면서 고맙습니다, 는 인사를 몇 번이고 했다. 그 귀했던 전화를 지금은 사람마다 휴대하고 있다. 옛날에는 상상조차도 못했던 일이다.

이제는 핸드폰이 없으면 농사 하는 것도 불편하다. 아니 못할 것 같다. 놉들 구하는 문제하며 핸드폰 활용할 일이 너무도 많다. 자동차 운전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핸드폰과 자동차는 나를 앉아있게 하지를 않는다. 젊은이들 못지않게 사방팔방으로 달려 다닌다. 밭일에 취해 정신없이 살고 있다. 아니 방대한 화폭에 멋스러운 그림을 그리느라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무엇을 살피고 할 여력이 없다.

문자가 오고 가는지 모른다. 굳이 확인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스팸문자가 난무하여 더욱 그렇다. 꼭 봐야 할 일을 놓쳐버린 적이 있어서 확인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핸드폰문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문자 확인하며 할애하는 시간조차도 아까운 내용들이 많다. 핸드폰문자 공해라고 하고 싶다. 참으로 황당한 경우도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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