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환경보호 앞장 '박연폭포씨'

서귀포신문 독자라는 분이 내게 연락을 해왔다. 내가 꼭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으니 외돌개로 오라는 것이다.

점심때가 막 지난 시각, 외돌개 주차장은 중국인 관광객으로 붐볐다. 도로변에서 바닷가로 향하는 계단 또한 사람들이 밀려올라오고 밀려내려가고 정신이 없었다.

더구나 한쪽에서는 계단을 손보는 사람이 엎드려 있는지라 정신을 잘 차리고 내려가야했다. 이토록 많은 사람의 발들을 매일매일 받쳐주느라 계단도 병이 난 모양이었다.

나를 부른 독자라는 분은 만나보니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만남이라는 지면을 잘 읽고 있어요. 내가 독자로서 소개하고픈 사람이 있어서 독자 자격으로 전화를 한 거쥬게. 근데 이 양반이 어디 갔냐? 방금 여기 있었는데…아, 저기 있네, 그 새를 못 참고 계단 고치러 가 있네요. 저 양반이 저렇다니까. 누가 보면 시청에서 나온 일꾼 같잖아요. 자기 일이 아닌데도 잘못 된 걸 보면 그냥 있지를 못해, 내가 가서 모셔오쿠다

내가 무심히 지나쳐 온 계단에 엎드려 있던 사람이 바로 내가 꼭 만나야 할 사람이라는 말에 나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여기 올 때까지 무심히 지나친 사람이 한 둘이 아닌데 그들 중에도 내가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을지 모른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나는 지금껏 사람 하나 하나의 존재를 얼마나 의미하게 대해 왔던가, 벌써 뭔가 소중한 가르침 하나를 얻은 듯했다.

별명 '박연폭포', 그는 외돌개 바닷가의 쓰레기 치우기를 10년 넘게 해 오고 있었다. 대가를 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해양경찰도 포기한 그 위험한 절벽에서 썩은 내 나는 온갖 쓰레기를 걷어 올리는 것이다.

나는 한번 죽었다가 새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 때 의사가 내가 살아난 것은 기적이라며 수술을 한 자기도 믿을 수가 없다고 했어요

창업을 위해 일을 배우러 들어간 직장에서 기계가 떨어지는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쳐 목숨이 경각에 달렸었던 것이다. 직장에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외면했다.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그의 큰누나가 나섰고, 치료비를 받기 위해 5년이라는 긴 시간이 재판에 소모되었다. 그는 아픈 몸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세상을 원망하며 폐인처럼 살았고, 가족들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죽을 생각만 하고 살았지…낚시가 나를 살렸어요. 어느날 낚시하는 삼촌들이 낚시 한번 해봐라. 해서 시작한 건데…외돌개를 기어갔다가 기어서 올라올 정도로 몸이 안 좋았는데 계속하다보니 건강이 좋아졌구…안 그랬으면 반신불수가 되었을 거예요. 보고 있으면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요. 낚시한 거 팔아서 생활도 하고, 바다가 고맙지요. 낚시꾼들이 쓰레기를 많이 버려요. 태풍한번 불고 나면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이는데 바다에 보답하는 뜻으로 치우는 거예요. 비닐은 썩지 않잖아요. 삼매봉도 나를 살렸죠. 너무 아름다운 곳이니까요

그가 혼잣말인듯, 내게 하는 말인듯, 술술 풀어놓는 이야기는 동화에나 나옴직한 것이었다. 풍경부터 먹거리까지 바다에서 얻는 것은 많지만 보답을 해 본 적이, 아니 보답해한다는 생각이라도 해 본 적이 있었던가.

저번에 낚시꾼들이 내가 미화원인줄 알고 자기네 쓰레기를 줘서 자원봉사라고 하니까, 이렇게 하면서(엄지를 치켜든 모습) 막걸리를 막 따라주는 거야. 싫다해도 돈 2만원까지 막 주는 거야, 근데 오토바이 타고 집에 거의 다 가서 경찰에 걸렸어(오토바이도 음주단속 대상), 경찰이 집에 오니까 우리 어머니가 아들 붙잡혀 갈까봐, 집세 줄 돈을 벌금으로 냈다니까, 할 수 없지,  나쁜 짓 안하고 살면 되지

어눌한 말투 속에 배어있는 순수함, 나는 그의 말들을 고스란히 받아 적었다. 그래야 순수함이 훼손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내가 하는 말을 자꾸 적습니까? 들키고 말았다. 어쩌지? 신문에 낸다고 하면 당장 말문을 닫을 지도 몰라, 내가 마땅한 대꾸를 못하고 있자 소개한 독자가 고양이 얘기를 꺼냈다. 그의 얼굴에 웃음이 확 번졌다.

너무 귀여워요. 낚시터에서 다른사람들 앞에는 안 나타나는데 내가 가면 딱 옆에 앉아서 안 가요. 그래서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붙혀서 연호고양이라고 그래요, 허허허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긴다는 말이 있듯이 낚시터에서 고양이는 경계의 대상이다. 그런데 그는 팔지 못할 생선은 포를 떠서 고양이에게 주고, 절벽 밑에 숨어살다 굶주린 고양이는 데리고 올라와서 아는 집에 맡기며 먹여 줘, 살려 놔 한다니 사람의 마음을 단박에 알아차리는 게 동물이니 어찌 그를 따르지 않을까.

자신이 당했던 깊은 아픔과 슬픔이 여리고 약한 짐승에 대한 보호본능이 된 걸까, 자연의 치유로 육신의 아픔과 마음의 슬픔을 넘어서면서 자연과 생명의 존귀함을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영혼으로 진화한 것일까.

동네 사람들이 86세 노모를 모시고 사는 그를 생활보호대상자로 추천하자 그는 한사코 사양했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있을 거잖아요. 그 당시는 치료비로 받은 돈도 좀 남아 있어서 거짓말하기도 싫어서 그랬어요

나를 부른 독자가 마침내 그에게 고백했다. 좋은 일 하니까 신문에 소개할라구. 그는 예상대로 손사래를 쳤다. 원래 나는 더러운 걸 싫어해요. 남의 집 앞이라도 깨끗하게 치우면 기분 좋잖아요. 그래서 보이는대로 치우고 쓸고 하는 거 뿐이예요 그러더니 다른 사람을 추천했다. 진짜 외돌개를 청소하는 사람이 있어요. 40~50대로 보이는 여자인데, 어떻게 저기까지 내려갔지 하는 데에서 쓰레기를 주워 큰 포대에 담아놓는 걸 봤어요. 다가가서 포대를 들어오고 싶어도 (내가 남자라서) 놀랄까봐 못 갔는데….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천사의 도시>라는 외국영화가 생각났다. 천사들이 인간의 주변에 안 보이게 있다가 어느 순간 인간으로 변해서 잠시 함께 사는 내용은 그 감독이 천사를 체험 했기 때문에 나온 게 아닐까.

그를 천사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지라도,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처럼, 계산없는 아이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천국처럼 살며 천국으로 만드는 사람인 건 분명했다.

그와 함께 있는 동안 내 마음이 교정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손해볼세라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들, 부족하고 약한 듯하면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들, 앞에서 웃고 뒤에서 흉보는 사람들, 이들 속에서 때론 상처받고 때론 닮아가면서 살아가는 나에게 그의 존재는 외돌개였다.

혼자 의연히 서 있음으로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는 외돌개처럼,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순수한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인간 외돌개, 그는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질 때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서귀포의 살아았는 외돌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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