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오성중의 문화엿보기<20>

소박한 별장우리 가족이 뉴질랜드로 이주 할 때 대부분의 살림은 집에 놔두고 와야 했다. 가전제품의 경우는 전압이 맞지 않을뿐더러 가구까지 같이 이사를 하면 이사비용이 구입비용보다 더 크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정착 비용에 대한 큰 부담을 안고 있었지만 우리를 안심시켜 준건 월세제도와 발달한 중고품 시장이였다.뉴질랜드의 월세 집에는 한국과 달리 TV, 냉장고, 세탁기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전자제품과 침대, 서랍장 등의 가구까지 갖춰져 있어 정착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런 월세 집은 주거인의 편리를 위한 배려라기보다는 집 자체가 주인이 살던 집이거나 휴가 때 들리기 위한 별장들이기 때문에 모든 시설들이 이미 마련돼 있다. 특이한 것은 가전제품이나 가구 등의 시설들 중에 신제품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지금 필자가 사는 집도 집주인이 여름에 별장으로 이용하는 집이지만 그 안을 살펴보면 모든 것이 다 중고품으로 마련돼 있는데, TV같은 경우는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초창기 컬러 TV이고, 오디오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의 전축과 나무로 된 중고 가구들로 실용적이면서도 검소함이 물씬 풍긴다. 만일 한국에서 이렇게 집안을 꾸몄으면 궁상떤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지금 필자가 사는 집이 별장이라고 했지만 한국에서의 별장의 개념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족이 이 집에서 겨울을 지내고 여름이 와서 계약기간이 끝나면 우리가 그랬듯이 집주인은 다시 이 집에서 우리가 사용하던 침대에서 잠을 자고 우리가 쓰던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 휴가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라면 전혀 안면이 없는 사람에게 본인이 쓰던 물건들을 그냥 놔두고 집을 빌려준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힘들 것이다. 아니 중고품으로 집안의 모든 필요한 물건을 산다는 것은 더더욱 상상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사용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침대는 새것을 사야되고 남들의 눈도 있으니 새로 나온 TV에 냉장고, 가구는 오래 쓰는 것이니 새것으로… 이러한 우리들의 소비 문화가 물건과 함께 나쁜 운도 같이 온다는 관념에서 시작 됐는지 아니면 가난했던 시절에서 비롯된 소유욕에서 왔는지 모르지만 필자가 사는 집의 주인은 침대 시트와 담요까지 놔두고 가는 여유와 검소함을 보였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제249호(2001년 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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