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 '관광개발 미명하 곳곳 난개발'

▲ 오한숙희씨

그날은 불금, 불타는 금요일밤이었다. 과연 택시회사들의 전화는 계속 통화중이었다. 한참 만에 전화가 걸렸다 싶으면  지금 차가 없습니다.  서귀포 택시가 천대가 넘는다던데 이렇게 사람이 많단 말인가. 집들이 간 집에서 막걸리를 좀 더 축내다가 자고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즈음 드디어 택시가 나타났다. 어찌나 반갑던지,

주말이라 관광객들이 많이 온 모양이죠? 서귀포에 빈차가 없더라구요

나는 오래 기다린 승객의 푸념을 기사님들의 수입에는 좋으시겠다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기사님은 이젠 관광객도 안 올 거 같아요하며 한숨을 내쉬는 게 아닌가.

난개발, 난개발 말만 들었는데 지금 서귀포가 다 망가져 가고 있어요. 택시 손님을 모시면 서귀포에 사는 나를 부러워했어요. 이렇게 바닷가를 보고 운전하며 돈도 버니 얼마나 좋으냐고, 개중에는 자기도 서귀포에 와서 운전하면 먹고 살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어요

택시는 마침 신서귀포 LH아파트가 한껏 높이 올라가고 있는 지점을 지나고 있었다. 젊어서부터 서귀포를 사랑한 소설가 조정래 선생께서 아파트가 고근산을 가려버렸으니 이게 무슨 서귀포인가, 다시는 제주에 오고 싶지 않다고, 마치 변심한 애인에게 절교를 선언하듯 하셨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던 게 기억났다.

그러게요, 저도 서귀포 풍광에 반해서 얼마전에 이사왔는데 저 아파트를 보니 내가 너무 늦게 왔구나 싶어요. 좀 더 일찍 왔어야 서귀포의 아름다움을 많이 누렸을 것을…

여기, 여기가 진짜 문제예요

기사님은 흥분한 목소리로 앞창문을 쫙 내렸다. 돔베낭길에서 외돌개 방향이었다  공사중인 건물덩어리들이 어둠속에 괴물처럼 시커멓게 늘어서 있었다. 낮에 볼 때는 이토록 험상궂지 않았는데… 건물을 지나자 저 아래 바다가 나타났다. 밤바다는 어둠속에서도 하늘과 구분되어 있는게 보였다. 하늘과 바다의 희미한 경계선이 참 평화로웠다. 그 평화를 느끼고 나니 지나온 건물의 괴기스러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

외방에서 온 손님들이 이 돔베낭길을 지날때면 야, 정말 멋지다, 저절로 말하는 소리가 들려요. 사실 외돌개의 감동은 이 길에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나부터도 이 길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저쪽에 한라산 이쪽에 바다, 운전을 하면 물론 앞만 보고 가지만 그래도 다 느끼거든요. 그런데… 아휴

너무 속이 상해 말끝마다 한숨이었다

한라산 바로 밑에 중국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집을 지었어요. 한라산 기운이 서귀포로 내려오는 곳인데 거길 딱 막아버리면 말이 됩니까?
기사님은 그 앞을 지날때면 보기 싫어서 고개를 돌리고 운전해 지나간다고 했다.

뭍에 사람들이 이젠 제주도 맛이 갔다고 안 올라고 합니다. 중국관광객들은 많이 오겠지만 이젠 중국사람들이 만든 큰 호텔, 큰 음식점에 가서 돈벌어줄텐데 우리는 말이 좋아 외자유치, 관광수입이지 실속은 없어요

야, 이게 진짜 서귀포사람들의 생각이구나. 택시에서 내릴 때가 다가오는 것이 한스러웠다. 나는 정체를 살짝 밝히고 인터뷰를 청했고 기사님은 선선히 이름과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셨다. 그런데, 웬걸, 약속을 정하자는 내 문자 메시지에 운전중이니 나중에 전화 드리겠습니다라고 답신이 온 다음부터 연락이 두절 되고 말았다. 수신거부가 걸린 게 틀림없었다. 왜이러시나? 기사님이 했던 이야기를 되짚어보니 아하! 하는 대목이 나왔다. 

공사 허가를 내 준 사람들이 문젭니다. 우리 위해서 일한다는 공무원들이 그럴 줄 알았나요. 제주가 발전을  해야하긴 하지만 허가를 너무 많이 내줘서 새 도지사가 막을 수도 없다고 하더라구요. 큰일났어요.

관을 비판했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뿌리깊은 두려움, 43 후유증이었다. 서귀포 사람이들이 무지해서가 아니었다. 세상일에 무관심해서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살아온 고향인데 왜 무관심할 것이며 매일 살아가는 곳인데 어찌 모를 것인가. 

기사님은 내가 내린 다음부터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내 전화가 걸려온 다음부터는 공포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원망하던 마음이 죄송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서귀포 사람들은 다 뭐하고 이렇게 망가져 가는 것을 보고만 있느냐고 안타까운 마음에 공연히 서귀포 사람들을 원망아닌 원망의 마음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만난 택시 기사님의 마지막 멘트를 전해주리라.

고향에만 살면 뭐합니까? 이추룩 고향을 지키지도 못하는데…

마침 뭍에서 제주도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사랑해온 사람들이 <제주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걱정만 하던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이제 서귀포사람들의 속마음을 알았고 나도 주민등록까지 옮긴 명실상부 서귀포 사람이니 지금부터 서귀포를 지키는 일에 나도 한몫 거들리라. 오늘도 서귀포의 곳곳을 달리며 가슴앓이를 하실 기사님, 우리 힘내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으니 서귀포 내고향을 아까워하는 당신의 마음을 설문대 할망께서 모른 척 하지 않으실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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