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명/동화작가

지아…….
나영은 가슴이 아리다.
자신의 아이를 그대로 두고 떠나 온 매몰찬 모정을 지닌 자신에 대해서 몸을 떨었다. 하늘 아래 이 세상 어디에도 자신과 같은 어미는 없을 것이다.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게 지아의 얼굴이 떠오른다. 반듯한 이마. 거울 앞에 앉아서 머리카락을 걷어 올리는 나영의 손끝이 떨린다.
닮았다.
나영은 자신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더듬거려본다.
처음으로 만져본 자기 아이의 머리카락, 따뜻한 볼, 동그란 눈, 그 속에 호수처럼 맑고 검은 눈동자. 하지만 우울함을 머금고 있던 슬픈 표정. 이런 생각을 하던 나영은 숨이 헉 막힌다.
지아…….
서울로 돌아 온 민호엄마 나영은 잠을 잘 수도 없었고,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자꾸만 활활 타오르던 불길 속을 헤쳐 나오던 9년 전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오른다.

잘했어요! 소방관 아저씨였다.
아기를 주세요.
나영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두 아기를 내려다보며 순간 머뭇거렸다.
아기!
어느 쪽을 내밀어야 할지 주춤거려진다. 진숙의 아기에게 욕심이 생긴다. 아들이다! 나영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빨리요!
소방관 아저씨의 재촉이 이어졌다.
나영은 왼쪽 팔에 안긴 아기를 내밀었다. 그러다가 황급히 오른 쪽 팔에 안긴 아기를 내민다. 곧이어 나영은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잠시 후, 구급차가 오고, 나영은 구급차에 실려졌다.
아가, 미안하다. 엄마를 용서해라.
나영의 품에 안긴 아기는 꼼지락거린다. 배가 고픈지, 자꾸만 나영의 품으로 고개를 돌려 입술을 달싹인다. 아기를 내려다보던 나영의 눈엔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가슴은 터질 것처럼 아리고 숨이 막혔다.
내 아기!
구급차 안에는 간호사 한 명이 있었다.
저어…….
간호사가 나영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라는 듯 부드러운 눈빛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영은 간호사의 눈을 외면하고 입술을 깨문다. 어떻게 말 할 것인가? 무엇이라고 이야기 할 것인가? 지금 자기 품에 안긴 아기가 자기의 아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 할 수는 없었다. 나영은 고개를 흔들며 눈물만 흘렸다. 울고 있는 나영에게 간호사는 따뜻한 손으로 나영의 손을 꼬옥 잡아주며 작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세요. 이제 모든 건 다 잘 끝났어요. 진정하세요. …….
나영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고개만 끄덕인다. 간호사는 나영이 우는 까닭을 갑자기 겪은 화재로 인한 쇼크로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너무 잘 생긴 아기네요. …….
나영은 가슴이 저리고 두근거려서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하지만 자고 있는 아기의 얼굴은 편안해보였다.
나영은 아기의 오뚝한 콧날이 자기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 나는 과연 어떻게 될까?
나영은 무서웠다. 가슴이 쿡 찌르는 듯한 통증을 일으킨다.
벌 받겠지, 벌을 받을 거야.
나영은 돌아눕는다.
아긴 어떻게 되었을까?
나영은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 TV를 켠다. 마침, 뉴스 시간이다. 뒤이어 나영이 분만한 문산부인과 화재뉴스가 나왔다.

오늘, 오후 6시경에 경기도 남양주…….
화재는 모텔 하우스의 난방 시설이 가열되면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확한 원인은 정밀조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모델하우스는 합판을 주재료로 사용하기 때    문에 불이 붙으면 삽시간에 번져 초기 진화를 하지 못하면……. 더구나 이 모델하우스는    전소 된 산부인과 바로 옆에 지어져서 산모들의 피해가 더 컸다고 합니다.
미처 피신하지 못한 산모 김진숙씨, 이소영씨가 숨졌으며, 3도 이상의 중 화상자…….

나영은 눈을 돌렸다.
TV화면에 오열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가슴이 턱턱 막혀서,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보아도 지금은 뉴스 시간인지 산부인과 화재 소식만 전해지고 있었다.
검은 연기에 둘러싸인 건물. 그리고 붉은 불길에 휩싸여 타들어가는 모델하우스와 산부인과 건물의 모습이 두려움을 일으키고 있었다.
곧이어 이어지는 여자 앵커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 불이 난 산부인과는 삽시간에 번진 불길로 거의 다 전소 되었고, 환자들의 진료 기   록들마저도…….

여자 앵커의 목소리가 너무나 또렷하게 나영의 가슴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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