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자치연대 대표 이 군옥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리맡에 놓인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켜고  오늘의 주요뉴스와 날씨, 그리고 스포츠 뉴스 등을 시청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하루 일과의 시작은 완전히 달라졌다.아예 텔레비전을 켜지도 않고 시작하는 것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이전에는 대형사고와 사건이 어떻게 했기에 발생했는가에 대한 분노로 열심히 뉴스를 시청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정반대다. 언론 속보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진실과 멀게만 느껴진다. 어쩌다가 사건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알아갈 때쯤이면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하고 총체적인 불법과 부실에 허무해지고, 또한 너무 안타깝고 국가가, 청와대가, 정부가 이 정도밖에 안됐던가 하는 한탄과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래서 이제는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신문기사를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니다. 세월호 사태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생명보다 돈을 중히 여기는 풍조는 조금도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온갖 불의와 부조리 등 몰상식이 활개를 치는 사회로 갈수록 병들어 썩어가고 있다. 이러한 우리사회 상황에서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모든 사회적 부패와 병리현상에 대하여 최종적인 책임이 있는 ‘정치’가  완전히 ‘해체’ 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아닌가 싶다.

  우리 사회에서 이제 민주주의라는 말은 좀 식상한 듯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센 놈만 살아남고 센 놈이 모든 걸 다 가지는 ‘승자독식의 경쟁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식상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1등만 기억하는’  한국사회는 사회구조를 탓하는 건 힘없는 자의 비겁한 변명이니 능력 없는 자신을 탓하라며 약자들을 몰아세운다. 입바른 소리를 좀 하려들면 말 많은 놈은 종북으로 몰아세우고, 입을 틀어막고 본보기삼아 가혹하게 처벌한다. 그러니 부조리한 걸 몰라서가 아니라 내 한 몸, 우리 가족을 건사하려면 참아야 한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보며 배워온 사람들에게 ‘백성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는 실종되고 만다. 민주적으로 살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배반한다.“ 괜찮다”,“ 이번 한 번만”,“ 다들 이렇게 사는데, 뭘”,“ 애들 생각해서”, 날이 갈수록 핑계는 늘어나고 삶의 무게도 무거워진다. 그들은 때론 부조리한 사회를 걱정하기도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며 자신을 위안하는 비굴하고 모순된 존재로 만들어 왔다.

  민주주의 작동불능, 근로소득자의 절반 이상이 저임금을 받고, 자살률은 세계 최고, 젊은이들은 결혼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지금 우리사회 생활실태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나라 통치자들의 눈에는 ‘국민’들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선거 때면 머슴을 자처하며 굽신대는 정치인들이 눈에 띄지만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아선다. 고위 공직자를 검증하는 인사청문회에서는 부동산 투기는 물론 온갖 범죄들이 난무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분노하기는커녕 사람들은 냉소한다. 대의 민주주의가 우리의 뜻을 전혀 대변하지 않아도, 정치인과 재벌이 결탁해 사회의 부를 독식해도 술집의 안주거리가 될지언정 현실의 정치의제는 되지 못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생각해보면 아찔하고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형국이다. 사람들은 무게에 짓눌러 비명조차 내기에 어렵다.
 동학혁명 당시 “백성들 사이에 유행하던 민요‘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말라’ 또 한 가지는 갑오년, 을미년, 병신년에 빗대서 ‘갑오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거리다 병신이 되면 못 가리’ 라는 노래가 있듯이 민주주의가 실종된 현재 다들 무리 없이 2015년 을미년 한 해를 견뎌낼 수 있을까.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