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

서귀포 매일 올레시장에 있는 풍년야채는 나의 단골 채소가게이다. 내가 이 집의 단골이 된 것은 그 아들 때문이다.  서귀포에 이사 온 직후 어느 날 그 집 아들이 문학상 당선 소설가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채소가게에 소설가 아들? 호기심이 발동했다. '아드님이 소설가라면서요?' 이 질문 하나로 그 아버지에게서 당선작품인 <훌리건 K>를 선물 받아 온 날, 마침 살짝 불면증이 있던 때라 모두가 잠든 밤에 책을 펼쳤다.

그런데 이건? 야구이야기와 왕년의 인기 중국드라마 포청천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사회풍자를 해대는데.... 그것도 아주 기발하게 웃기면서...책 속에서 사진으로 소설가의 얼굴을 보았지만 실물로 그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서울사는 아들이 설명절에 오면 꼭 좀 만나보게 해달라고, 무하나 살 때, 시금치 이천원어치 살 때, 고구마 반 관 살 때, 거스름돈 챙기듯 잊기 않고 부탁했다.

드디어 명절 전날 늦은 오후, 그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명절 대목으로 바쁜 소용돌이가 한마탕 휩쓸고 간 채소가게에서 소설가는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얼굴에 소설가라고 써붙힌 사람은 없겠지만 아버지의 부름에 작업복 차림으로 툭특 털고 나오는 그 모습은 영락없는 채소가게 일군이었다.

이중섭 거리 바농카페에 마주 앉았을 때 나는 제대로 놀랐다. 낼모레 마흔이라는 나이가 도저히 믿기지 않은 동안이어서가 아니었다. 눈, 그 눈 때문이었다. 쌍꺼풀없이 동그랗고 까만 눈에 길지 않으면서 촘촘한 속눈썹, 그건 순정만화에서 봄직한 어린 소년의 눈이었다.   흔들림없이 상대를 바라보는 편안한 눈빛도 웬만한 어른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어린아이의  천진함이었다. 그의 이 천진하고 안정된 눈빛은 분명 서귀포와 관련이 있을 것이었다.
 
"서귀포는 여유있는 곳이죠. 지역만이 아니라 내가 아는 친구들도 다른 지역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다르게 어떤 느린 생활, 여유있고, 현추세에는 맞지 않는 불리한 인간형일 수 있는데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좋아요. "

이건 나도 100% 동감이다. 서귀포의 최고 강점은 여유에서 오는 안정과 평화다. 서귀포에만 살았던 사람들은 모르리라, 마치 물고기가 물이 뭔지를 절감하지 못하듯이.

그는 여유있게 30살이 넘어서 소설을 시작했고 그의 부모님도 서귀포 사람답게 아들이 뭘 하는지 모르면서 느긋하게 지켜봤다. 소설가가 된 다음에도 그는 ‘시간 있을 때 쓰고 안 써지면 걷고 강아지랑 산책하는’ 서귀포 스타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아이같이 천진한 눈과 여유있는 마음을 가진 소설가, 그의 눈은 이번에 서귀포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할머니 한 분이 당근을 고르시는데 5분정도 이쪽에서 보고 저쪽에서 5분, 보통은 그냥 집어서 사잖아요. 그런데 이 할머니는 수많은 당근 중에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당근다운 당근을 찾으시더라구요. 마치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이, 미술 작품과 달리 직접 만져보기까지 하고 3개를 골랐어요."

당근 하나를 사는데 15분 이상 걸린 손님과 그것을 그냥 지켜보는 주인, 이 모두가 '여유'를 자랑하는 서귀포 스타일, '최선을 다하는 '예술가 스타일 아닌가. .

"당근을 그리라고 하면 천편일률적으로 그리고,  당근을 살 때는 팩에 싸인 것을 천편일률적으로 사는데 할머니는 아주 신기하고 낯선 경험이었어요"

역시 소설가는 사물과 현상을 고정된 뻔한 눈으로 보는 것에 '항의'하는 존재였다. 그의 다음 소설이 급 궁금해졌다.

"목욕탕 갔는데 장애인 두 분이 왔어요. 다른 사람들 의식 안하고 씩씩하게 목욕을 하더라구요. 길거리에서 네 다섯사람이 휠체어를 타고 명랑하게, 소풍가는 올레꾼처럼 지나가는 걸 봤어요. 우리는 장애를 정형화된 사고로 다르게 보지만 사실은 똑같아요"

장애는 비극이 아니다. 비극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비극이 되는 것이다. 젊은 나이에 그는 이미, 장구하고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 인생은 짧고 인간의 차이는 사소하다는 것을 깨닫은 것 같았다. 이 또한  서귀포가 키워 낸 것이리라. 그의 소설을 기다리는 즐거, 이 또한 서귀포의 선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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