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

그 사나이의 눈매는 매서웠다. 다부진 체격에 짧은 머리까지, 살짝 '조직'에 몸담으실 분같은 분위기여서 첫만남부터 친근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리고 늘 바쁜 모습이었다. 그래서 시장을 매일 오가며 그를 보아도 인사할 염을 내지 못했다. 그런데 우연히 귀동냥해 들은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를 급 땡겼다.

5년전, 제주 올레 서명숙 이사장은  해외 출장 중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독수리눈을 가진 그 사나이였다. '올레라는 이름을 시장에 쓸 수 있게 허락해 달라'는 용건이었다. 흔쾌히 승낙을 받은 그는 일사천리로 시장 이름을 매일 올레 시장이라고 바꾸었다. 매일 올래, 이건 시장에 매일 오겠다는 뜻이 아닌가. 제주 올레가 힛트치면서 올레라는 이름을 따붙힌 것들 중에 의미있기로 최고였다.

그는 올레꾼들이 이중섭 거리를 거쳐 매일시장에 즐겨 오는 것을 목격하고 그들의 뇌와 입에 쉽게 붙을 수 있는 이름 올레로 바꿔야 한다는 감을 잡았다고 한다.  높이 떠서 먹이를 발견하는 눈과 즉시 급 하강하여 채는 순발력, 그는 진정 독수리였다.

시들하던 서귀포 매일 올레시장이 활력을 띄면서 제주시 쪽의 시장에서도 올레라는 이름을 쓰고 싶어했다. 그러나 한발 늦었다. 이미 서귀포 매일 올레 시장이 상표등록을 해놓은터라 동일 업종에는 같은 이름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높이 뜨는 새는 멀리 보는 법, 그는 제주시가 훨씬 큰 상권인데다가 공항에서 가깝기 때문에 같은 이름을 쓸 경우 올레꾼들이 그쪽으로 몰릴 것을 이미 계산해놓은 터였다.

설 연휴를 앞 둔 무렵, 올레시장은 그야말로 돗대기였다. 긴 연휴를 맞아 서귀포를 찾아온 여행객들과 설맞이 장을 보러온 주민들, 거기다가 한쪽에 돔을 만드는 공사까지 겹쳐 혼잡한 시장입구, 차량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한 가운데 그가 서 있었다.

손에는 주차안내용 봉을 들고서. 사람이 없나? 상무라는 타이틀을 가진 그가 왜 직접 여기서?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에 대한 호기심이 괜한 친근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는 내 인사에, 요즘 말로 영혼없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나의 맹렬한 호기심은 그에게 인터뷰를 구걸하게 만들었다.

"나보다는 우리 사무국장과 이야기 하세요."

연방 봉을 휘둘러 주차안내를 하면서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쯤되니 나도 삐짐이 발동, '됐어요'하고 돌아섰다. 그 순간 그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곤 푹신한 노란색점퍼를 입은 몸으로 나를 툭 치면서 "아이, 같은 편끼리 왜 그래요?" 하는데 완전 이미지 반전이었다.

독수리 눈매는 강아지 눈처럼 내려앉고  동그란 얼굴과 몸매는 귀여운 곰돌이로 순간 변신하는데 주체할 수 없게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내가 삼사 년치 욕을 오늘 하루에 다 먹었어요" 주차가 원활치 않은 화풀이를 그가 하루 종일 머리 조아리며 받아낸 모양이었다.
행여 올레시장 불친절하다는 소리라도 나올까봐 그 스스로 방파제가 된 것일까. 시장을 위해 기꺼이 '욕'을 먹고 있는 그를 등지고 돌아오면서 얼마 전에 그가 시장 마이크에 대고 욕을 했다는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올레시장에서 매년 김장을 해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는데 올해는 이천 열 다섯 포기를 했주게. 2015년이니까. 기자들도 취재를 오고 덕분에 시장 홍보도 돼고 좋은 거쥬. 근데 상인들이 다 제 점포일이 밀리다 보난 김장 약속시간에 못 간거라. 기자들 카메라가 대기 중이니 한 상무가 기다리다 화가 나서 마이크에 대고 빨리 안 온다고 욕을 한 거라. 그런데 고무장갑들고 달려온 사람 중에 욕했다고 고까워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라. 왜? 올레시장에 대한 그의 열정을 아니까, 그게 개인 감정이 아니라 시장에 대한 사랑때문인 걸 아니까"

설혹 화 난 사람이 있었다 해도 그는 금방 곰돌이 푸우로 변신하여 그들의 마음을 녹여냈으리라. 이 작은 시장이 전국 전통시장 연속 1위를 차지한 데에는 그의 진정성이 빚어낸 시장상인들의 신뢰와 열정이 밑거름이었을 것이다. 올레 시장을 지키는 두 얼굴의 사나이는 다음엔 무슨 에피소드를 만들어낼까.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