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4월이다. 4월 남녘 땅 제주는 노란 유채꽃으로 물들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잠 못 드는’ 칠흑빛이다. 4·3 이후 질곡의 역사를 살아온 제주도민들에게 4월은 잔혹한 달이다. 제주 땅을 수놓은 유채꽃은 진상규명을 기원하는 4·3 유족들의 한(恨)을 형상화 한 수채화이고, 흐드러진 유채꽃은 명예회복을 서원하는 4·3 원혼들의 몸짓이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바라는 제주 땅의 울림은 올해로 67년째다.

4·3은 오랫동안 국가권력에 의해 어둠에 묻혔던 역사였다. 그러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 등의 끊임없는 저항으로 ‘금단의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00년 1월 12일 김대중 대통령은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공포하고,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를 설치했다. 이후 2003년 10월 31일 제주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에게 사과했다. 노 대통령은 2006년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4·3희생자 위령제에 참석, 무력 충돌과 진압과정에서의 국가권력 불법 행사에 대해 재차 사과했다.

이명박 정권은 4·3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1년 3개월 후인 지난해 3월 18일 4·3희생자 추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이는 반세기 넘게 ‘폭도’로 불린 4·3희생자의 명예회복과 ‘폭동’이 일어난 제주는 ‘반역의 땅’이라는 집단적 무의식을 종식시키는데 일조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아 마땅하다. 도민들은 국가기념일 지정이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했고, 박 대통령의 4·3희생자 추념식 참석이 그 변곡점이 되길 바랐다.

이 같은 도민 열망과 달리 박 대통령은 지난해 4월 3일 제주4·3평화공원을 찾지 않았다. 제67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을 앞둬 대통령 참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발간한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는 4·3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명피해만 2만5000∼3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제주도 인구는 28만명 정도였다. 피해자 상당수가 사상·이념과 무관한 선량한 도민이었다. 이 같은 잘못된 국가권력에 대해 국가통수권자는 마땅히 사과해야 한다. 여느 정권이든 예외 없이 대통령이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야 하는 이유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사과를 국가권력 남용에 의한 인권유린 등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대국민과의 약속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4·3희생자 추념식에 대통령이 참석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국민대통합이다.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다. 대립과 분열 등 우리사회의 굴절된 자화상은 잘못된 역사 청산의 미완(未完)에 기인한다. 잘못된 역사의 청산 없이는 사회통합은 불완전하고, 모래알 같은 불안정한 사회는 외부적 도전에 응전하지 못한다. 사과와 반성을 기초로 한 과거와의 화해 없이는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대립과 분열의 고리를 끊고 상생과 통합으로의 전환이 급변하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대통령의 과거 잘못된 국가권력에 대한 사과와 반성은 제주4·3을 넘어 전국 곳곳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손잡아 통합된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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