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촌로의 되돌아본 인생]윤세민/교육자

3.가파도 개웃 젖. 처음으로 서울 만찬 장 특선 메뉴로.

막상 오래 섬에 머문다고 해도 이틀 밤만 지나면 떠날 수 있겠지 나름대로 짐작이 됐다. 무심코 교무실에 놓여있던 학교일지를 한 장 넘겨보니 당직선생님은 이틀 분이 일지를 다 적어 놔 있었다. 이 선생님도 방학 중 당직근무 때문에 혼자 와 있어 우리 일행과 똑같은 처지라 미리 정해둔 사실. "학술조사단 오늘 떠남" 웃고 넘길 일이 아니라 낙도에 근무하는 교원 처우 문제에 정부하원에서 특단의 대책과 배려가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목전에 닥친 문제는 학술조사단 일행 네 사람 대식이 문제였다. 하루 두끼만 먹기로 작정해도 네끼는 먹어야 한다. 염치를 무릎 쓰고 이장님께 부탁드렸다. 막무가내로 간청을 받아주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솔직하게 토로한다. 이제 흰쌀도 다 동났으니 보리밥 찬거리도 이 바다에 따올수도 없으니 마늘장아찌와 된장뿐입니다. 단서를 단다. 돈 주고도 사올 수 없는 섬에서 그저 고마워 할 뿐이다. 이장님을 내조로 보필하는 주부의 인고와 삶의 슬기가 있기에 오늘의 가파도민을 대표하는 멋진 이장이 있는것이 아닌가.

아침식사시간은 열시 경으로 ‘시장이 반찬’이라 늦게 정했다. 밥은 보리밥이라도 흰쌀과 혼합해 지은 밥과 맛이 별 차이가 없었다. 가파도 토지는 원래 비옥함 뿐더러 해조류를 퇴비로 묻어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보리와는 질이 월등하게 다르다. 풀기가 있고 색깔도 좀 하얗다.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 5월이면 청보리 축제가 열어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이외의 반찬이 올라왔다. 한해 정도 숙성이 잘 된 개웃젖(전복 내장 젓갈)이었다. 제주에서는 산해진미 가운데 알아주는 젓갈로 귀빈 밥상이나 사돈이 내방했을때만 내놓는 찬이다. 소위 밥도둑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보리밥에 개웃젖. 생각 만 해도 군침이 돈다.

부산대학 교수 두분은 부산 토박이라 다른 젓갈 맛을 많이 감미해 왔기에 주저하지 않고 젓가락질 하는데 서울대학 이기문 교수는 혐오식품이라도 보는 듯 아예 거리를 둬 건상으로 식사하는 것을 보니 민망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해 독식할 수가 없었다.

저녁식사에 그 귀한 개웃젖이 나오면 꼭 먹어보겠으니 나에게 부탁해 두라고 했다. 저녁상에 나왔다. 난생처음 먹어본 개웃젖에 매료돼 1리터들이 우유 깡통을 사들고 제주의 진미를 서울대학교수 만찬회에 학술조사 선물로 대신하겠다며 이장님께 심심 당부해 두었다. 누구네 집 개웃젖이 배타고 기차타고 서울로 가는가? 우리 요 팔자보다 낫구나(이장님 말씀). 애지중지 깊숙한 안방에 보관해온 개웃 망데기(작은 항아리)는 별 덕분 없는 우리 불청객에 밑창만 드러내고 말았다.

4.가파도 이장은 아무나 하나.

사흘째 되는 밤 자리에서는 왠지 울렁거리는 파도소리도 정겹게 들려와 만나면 헤어지는 애별리고(愛別離苦)가 다가왔구나 생각하니 그 동안 대식 차리느라 이장 사모님께서 얼마나 상심하셨는지 직접 보고 왔기에 눈에 선히 보인다.

이 공을 잊지 말고 갚아야 하겠는데 맘이 무서워졌다. 전날 위스키 한잔을 나누며 담소하던 노옹도 찾아와 위로해준다. 오래오래 우리 가파도를 잊지 말고 또 찾아주시도록 당부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리 가파도 이장님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민으로부터 존경과 신망도 우선이지만 당신네 같은 손님이 왔을 때 으레 하루 밤을 머물 수 있는 손청 방(손님을 청하는 방)도 있어야 되고 밥 한상을 차리는데도 주부의 손맛이 있어야 됩니다. 주부가 정지간에서 빈정대는 군소리가 들려오면 손님도 감지돼 또 찾아오고 싶은 가파도가 아니라 버림받은 섬이 될 것입니다. 당신네들이 혹한 날씨에 이 섬에 오셨다 해도 잠자리용 이불만큼은 최상으로 준비돼 있습니다.

여름철이라 이불 덮어 볼 기회는 없었으나 이장 댁 벽장에 쌓아둔 이불을 보니 마치 새색시 이불같이 두터웠다. 어느 집에나 이불만큼은 최상이라며 자랑해 댄다.

몇 해 전에 면화생산지인 남양열도에서 솜 싫고 가던 화물선이 앞 바다에서 난파되는 통에 해상에는 정교하게 포장된 이불솜 뭉치가 떠다녀 그걸 보고 방치할 수 없어 섬사람들은 배타고 나가 주워 모은 물량은 이불 서너 채 만들고도 남아 육지에 나가있는 이웃에 보내주곤 했다. 당시는 특용 작목으로 농가에 권장 재배토록 해 가정에서 무명직물용으로 쓰고 잔량은 정부에서 수매해갔다.

난파선에서 얻은 솜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니라 질적으로 최상품이었다. 오래 되도 이부자리를 펴면 푹신한 체감이 든다며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망하는 놈이 있으면 흥하는 놈도 있다"는 속담은 이를 빗대어 나온 한 말이 아닐까.

우리 학술조사단은 기대이상의 연구자료를 발굴해 지역주민이 예언한대로 환희의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목적지로 향했다. 서울로 가는 이기문 교수 짐작에는 개웃젖 통이 혹시나 해서 위험물 취급하듯이 짐을 꾸려놨다. 후일 학술조사 보고회에 제주 가파도에서 맛본 개웃젖을 만찬장에 내놔 동료교수들과 시식했다는 특종기사가 게재된 대학신보를 받아 보았다. 이것이 가파도 개웃젖이 처음으로 서울 등지 미식가에 알려지게 동기가 될 것이다. 지금도 제주에서는 자연선 점복젖을 맛보려면 단골손님 아니고는 구경도 못하는 진미품이다.

끝맺으며 50여년 전에 만났던 그 어르신들을 이제는 찾아뵐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세월에 장사가 없듯이 이제 살아 계신다면 천수(天壽100), 황수(皇壽111) 나이이다. 명복을 빌 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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