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

(지난 주에서 이어집니다)

엘리 베이터는 7층까지만 올라갔다. 계단을 걸어 한 층을 올라갔다. 굳게 닫힌 철문, 어느 빌딩, 어느 층에나 있어서 특별히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철문, 그리고 차가운 문손잡이, 그런데 그 문을 여는 순간 나는 아!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나무로 만든 키작은 반달문, 그 너머로 하얀 수선화꽃송이들, 그 옆에 어린 단풍나무, 영산홍, 싱싱한 수국, 화분을 이고 있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 그리고 그 위에 파란 하늘.....

딴 세상이었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오거리, 빌딩 위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난데 없이 긴 한숨이 흘러 나왔다. 긴장이 풀릴 때 저절로 나오는 그런 한숨이었다.

한켠에 놓인 나무탁자, 마주 보는 두 개의 의자, 이런 자리를 보면 앉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일까? 나는 끌리듯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 보았다. 앉아서 보는 것은 서서 보는 것과 사뭇 달랐다. 꽃과 나무들이 더 깊이 다가왔고 그 작은 정원에 내가 폭 안겨있는 느낌이었다. 눈을 감았다. 아니, 눈이 저절로 감겨졌다. 눈을 감으니 내 숨소리가 들렸다. 이 숨소리는 계속 나와 함께 있었는데 ....눈을 감아야 들리다니.....

"여기 좋죠?"

해공선생이었다. 지난주에 인터뷰를 한 것을 계기로 나는 해공선생께 명상을 배울 마음을 내고 명상센터를 잦아온 것이다.

"네, 정말 좋은데요. 완전 카페같아요"
"여기 카페 맞아요"
"네?"
"카페가 별건 가요. 그냥 마음 편하게 앉아서  차 한잔 마시며 쉬면 카페죠. 그러다가 아는 사람 만나면 이야기 나누고..하하하"

듣고보니 그랬다. 요즘 도처에 그렇게 카페가 많이 생기는 것은 사람들이 그만큼 쉬고 싶다는 뜻일 게다. 집도 아니고 일터도 아닌 제 3의 공간, 그냥 멍 때리고 앉아 있어도 뭐랄 사람 없는 공간, 그러면서도 외롭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 현대인들에게는 필요하다.

"정말 신기해요. 바로 저 아래층에 자동차들이 달리는데도 여기는 이렇게 고요하고 편안하다는 게...."

"우리들 내면에도 그런 고요하고 편안한 공간이 있어요. 그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명상이구요"

그렇구나, 조금 전에 내가 여기 와서 눈을 감자 내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편안함이 느껴졌던 것, 그게 명상이었구나. 그렇다고 매일 여기 찾아와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디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녜요"

헉, 내 마음을 읽으셨나?

"누구나 산속에 들어가서 혼자 조용히 살면 명상이 잘 되죠. 그러다가 삶의 현장에 돌아오면 다시 부대끼며 명상이고 뭐고 다 날아간다, 이러면 제대로 된 명상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다 내 마음 같지 않고 일이 내 뜻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는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도 고통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명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 우리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 지는 것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사느냐에 달린 겁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어요. 그러면, 장차 네가 뭐가 될라고 이러냐, 걱정하고 야단치면서 힘들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부모가 있을 수 있겠죠? 그러나 아이가 건강하고 친구들 잘 사귀고 즐겁게 지내는 것을 보면서 다행스럽게 여기는 부모도 있어요. 또 공부를 잘하는데 불안한 부모도 있겠죠? 여기서 떨어지면 안 되는데... 우리애보다 더 잘하는 애들도 있을 텐데..이러면서 말이죠. 공부를 잘하냐 못하냐가 부모의 행불행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떠냐에 행불행이 달려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온통 공부위주로 돌아가는 게 현실이고, 그런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게 부모 마음 아닌가.

"현실을 무시하라는 게 아녜요. 그 현실 때문에 고통스럽다면, 현실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을 바꿈으로써 고통을 피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자신의 관점을 바꾼다? 어떻게?

마침 수요일, 해공명상센터의 정기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저녁 7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한 두명씩 오기 시작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나이는 20대부터 70에 가까운 사람까지, 그런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모두 잘 웃는다는 것, 그리고 웃는 모습이 해맑은 것이었다. 반갑게 인사들을 나누며 깔깔대는 모습이 마치 초등학교 1학년 교실 분위기였다.

7시 정각, 땡! 작은 종소리와 함께 전등이 꺼졌고 좌선이 시작되었다. 깜깜한 속에 가부좌로 앉은 14명의 사람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가 한 순간에 나타나면서 그 방은 깊은 숲속이 되어버렸다. 꼿꼿이 버티고 앉은 사람들 하나 하나는 나무였다. 눈을 감았다. 역시 눈을 감으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퇴근시간을 맞아 더 복잡해진 길거리의 자동차 소리, 사람들 소리, 그 소리에 끌려갔다가 내 숨소리로 돌아오고 다시 끌려 갔다가 또 돌아오고, 그러다가 어느 새 내 몸이 기우는 것이 느껴졌다. 졸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 졸고 있는 나를 내가 보고 있었다.

땡! 아까와 같은 종소리에 불이 켜졌고 나는 쉽게 눈을 뜰 수 없었다. 아, 얼마만의 단잠인가. 밤에 내 집에서 다리 뻗고 누워서도 오지 않던 잠이 이렇게 잘 오다니, 불을 껐기 망정이지 아니면 얼마나 창피했을까. 단잠을 자라고 불을 끈 건가?

"명상을 하면 시선이 바뀌어요. 밖으로, 상대방으로 향하던 것에서 자기를 향하게 돼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기와 대화가 시작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내가 바뀌게 되요."
 해공선생은 어떤 부부의 실화를 하나 소개했다.

"시작은 부인이 먼저 했어요. 그런데 명상을 하면서 마음이 편해지자 얼굴도 밝아지고 남편에게 불평불만을 하는 횟수가 줄어든 거예요. 남편이 처음에는 몇일 저러다가 도로 제자리일 것이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대요.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부인의 얼굴이 더 밝아지고 잔소리가 없어진 거예요. 남편이 궁금해지더래요. 도대체 명상이란 게 뭔가. 그래서 남편도 명상을 알게 되고 함께 하면서 대화가 많아지고 사이도 좋아졌다는 훈훈한 이야기, 하하하"

해공선선생은 그 부부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비결은 간단했다. 배운대로 숨을 들이쉬면서 "일어남", 내쉬면서 "사라짐", 이렇게 하다가 어느새 잠이 든 것이다. 누워서 머릿속으로 기와집 12채를 지었다 부쉈다가 하던 온갖 잡념이 숨소리에 집중하는 바람에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좌선시간에 달게 졸았던 것도 잡념에서의 해방이 가져온 평화 덕분이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갱년기다, 우울증이다, 하면서 다운되었던 몸과 마음이 업 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불면증 동지들에게 둑달같이  전화를 걸었다.

"불면증에는 명상이 직빵이더라. 언제까지 수면제만 먹겠어?  행복의 나라가 별거야?  잡념이 없으니까 잠 잘 오고,  잘 자고 나니 밥 잘 들어가고, 그게 바로 행복의 나라 아니겠어?"

나는 해공선생에게 부탁했다. 내 친구들을 행복의 나라로 가이드 해주십사. 선생은 즉석에서 흔쾌히 날을 잡아 주셨다. 4월 7일 11시.

그날 철문을 닫아두리라. 그래야 친구들이 문을 여는 순간, 딴 세상을 보며 감탄할 수 있지. 내가 그랬듯이.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해, 내가 진정 선물하고 싶은 것은, 이런 멋진 고요와 평화의 공간이 자기 안에 있다는 믿음이야.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나 자신과 함께 있는 영원한 정원말야.

친구들아 기대해! 우리 모두  행복의 나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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