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신문은 지역공동체재건의 ‘촉매

[특별기고]언론개혁과 풀뿌리 지역언론민주화의 기수가 되어야할 언론이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주된 이유는 한국 언론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지역언론을 억압하고 전국일간지와 전국방송 위주로 언론계의 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에 비롯되어 군사정권시절 공고화된 권력과 언론의 유착은 특히 신문시장의 구조를 기형적으로 만들어, 2백만부 이상을 발행하는 서너개의 중앙일간지가 전국시장을 거의 독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 서울에서 제작되는 방송뉴스와 중앙일간지들이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을 장악하고 있다 보니 각 지역에 거주하는 각계각층의 기호와 필요에 맞는 뉴스를 제공하지 못해왔다. 신문의 경우 전국지라면서도 취재하기 쉬운 수도권 중심의 뉴스로 대부분 지면을 채우고 있고, 40여 페이지중 불과 1페이지만 할애되는 지방판은 한 개 시도나 두개 시도를 묶어 한 면을 구색으로 제공하고 있다. (필자가 구독하는 일간지는 충청지역과 제주지역 뉴스를 같은 면에 싣고 있다. 덕분에 충청도에 살면서 제주도 뉴스는 비교적 소상히 접하고 있다.) 지방방송의 지역뉴스도 형식적이고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지방도시나 농어촌 지역의 주민들은 해당지역에서 대형사고가 터지지 않는 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관한 뉴스를 언론을 통해 제공받기란 불가능하다. 한편 서울에서 발행된다고 해서 일간지들이 1천만 명이 넘는 서울시민들의 다양한 뉴스 기호와 필요에 맞춰 다양한 기사가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서울 사람들도 자신들의 생활주변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언론을 통해 정보를 얻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날씨를 제외하고는 중앙언론으로부터 일반독자들이 자신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지역뉴스를 접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실정이다. 일간지를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지난 주 몇 건의 범죄가 발생했는지 신문이 알려주는가? 당신이 살고있는 지역에서 어제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교통사고가 발생했는지 기사가 실렸는가? 당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이나 인근지역의 환경오염 실태에 관한 뉴스를 제공받는 적이 있는가? 서울사람이건 지방사람이건 거의 모두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한국과 달리 유럽이나 북미 국가들은 지역언론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의 경우 지역일간지가 주축을 이루고 있고, 영국은 중앙일간지와 지역신문이 상호 균형을 이루고 있다. 미국 일간신문의 경우 주중에는 하루 평균 5천6백20만 부, 주말에는 6천10만 부가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이중 90퍼센트는 10만 부 미만을 발행하는 작은 신문이고, 85퍼센트인 1천2백개는 5만 부 미만을 발행하는 신문이다. 1999년 말 현재 1백만 부 이상을 발행하는 신문은 Wall Street Journal, USA Today, New York Times, LA Times 뿐이다. 미국의 10대 신문 중 8개가 지방일간지이다. 전국지라고 할 수 있는 신문은 1980년대에 창간된 USA Today와 경제지인 Wall Street Journal 뿐이다. 그러나 이 두 신문은 일반신문이 아니라 특수지이다. USA Today는 가정 배달보다는 가판에 의존하는 신문이고, Wall Street Journal도 직장에서 구독하는 경제전문지이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발행되는 1천5백개의 일간지와 6천여 개의 지역주간지를 구독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알려진 New York Times나 Washington Post도 뉴욕과 워싱턴의 지역신문이다. 단지 뉴욕과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일이 미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세계에서 이들 신문에 주목할 뿐이다. 그러나 Washington Post의 경우 워싱턴 지역 외로 배달되는 신문은 5퍼센트도 안된다. 1970년대 후반부터 전국판 발행을 해온 New York Times이지만 그 비율은 아직도 25퍼센트를 넘지 못하고 있다. 거의 모든 미국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을 구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문들의 대부분은 10만부 내외를 발행하는 신문들로, 한국의 중앙일간지에 비하면 정말로 작은 신문들이다. 미국언론의 모습을 기업에 비유한다면 거대화된 몇개의 재벌기업이 전국의 시장을 독과점하는 한국과 달리, 수백개의 중소기업이 균형있게 시장을 나누어 갖고 있는 것과 같다. 미국 사회의 다양성, 건강성을 지키는 것이 바로 철저히 지역화된 미국의 언론인 것이다. 언론의 본래 형태인 지역언론이 근대화 이후에도 우리 땅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뿌리깊은 집권층의 언론탄압 정책 때문이다. 조선총독부 시절부터 제5공화국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이 땅을 통치해온 권력집단은 비판세력을 통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언론의 숫자를 제한했다. 부도덕하게 집권한 정권은 비판의 목소리를 줄이고,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아 판단력을 둔하게 만들어야 했다. 우선 통제가 쉬운 지역언론을 사이비언론이라는 구실로 봉쇄했다. 반면 지역언론보다 더 부실하고 부패한 중앙언론은 권력의 필요에 의해 선택되고 지원을 받았다. 독재권력과 그들로 낙점받은 언론은 국민들에게 언론이란 아무나 함부로 운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거대한 전국적인 매체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 놓았다. 작은 것에 대한 콤플렉스, 도시가 아닌 낙후지역에 산다는 피해의식에 젖은 한국인들은 자연스레 언론이란 거대해야 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형성했다. 그리고 이러한 언론 거대화 논리는 1960년대 이후 개발성장 이데올로기와도 맞아 떨어졌다. 한국 언론의 외소 컴플렉스는 신문의 이름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미국과 독일의 권위있는 신문의 이름에는 New York Times, London Times, Frankfurter Allgemine 등, 대부분 도시이름이 붙는다. 영국의 전국지들은 Times, Mirror, Guardian, Independent, Mail, 등 언론의 공익적 기능을 의미하는 단어를 제호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중앙일간지들은 조선, 한겨레, 한국, 국민, 대한매일, 동아, 세계 등 한결같이 거창하게 대륙이나 국가적 의미의 제호를 사용한다. 겉으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신문인 것처럼 행세했지만, 한국의 중앙일간지들은 권력의 전횡과 부패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막대한 금전적 이익을 취득해 왔다. 신문들은 공정거래 질서를 어기고, 세금을 포탈하고, 광고시장을 독점했다.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며 진실보도를 주장하는 기자들은 언론계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만들었다. 1987년 수천만의 국민들이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거리로 뛰쳐나오자 언론은 어쩔 수 없이 민주화 투쟁에 동참했다. 그러나 그들은 독재정권 시절부터 누려온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1987년 6월 항쟁 이후 신문발행이 자유로와 지면서 일간지 시장의 독과점 체제가 깨지고, 지역신문의 발행도 자유로와졌지만, 중앙일간지들이 전국시장을 독식하는 기형적 신문산업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의 중앙언론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민주주의 파수꾼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행위를 거침없이 자행하는 우리사회의 치명적인 암세포 조직으로 굳어 버렸다. 걸핏하면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우지만 정작 진실한 보도와 공정한 여론 수렴을 위해 언론의 자정과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권력과 결탁하고 시장자본에 종속된 거대 중앙언론매체는 기존체제를 옹호하면서 기득권세력의 이익을 보존하고 확장하는데 몰두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자본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상업언론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윤 추구를 지상의 목적으로 발행되는 언론매체는 광고수입과 구독료 수입을 올리기 위해 다수의 구매자들이 요구하는 정보나 견해를 우선적으로 전달할 수밖에 없다. 설사 공익을 위해 필요한 뉴스라 하더라도 독자 다수가 시급히 원하지 않는다면 배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거대자본언론은 소외와 배제를 조장하는, 공동체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풀뿌리 지역신문은 한국의 왜곡된 언론구조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고질적 모순과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개혁의 실마리를 쥐고 있다. 지역신문은 지금까지 거대 중앙언론으로부터 소외되어온 지역주민들도 언론의 자유와 알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해주고, 지역주민 상호간 정보와 의견의 교류를 통해 지역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적 개혁과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지역신문은 지방자치를 정착시켜 지역 민주화를 실현시키며, 지역사회의 부조리 비효율을 감시하고, 지역사회의 경제적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지역신문은 지역간의 갈등과 지역이기주의로 사실상 와해된 지역공동체를 재건할 촉매이기도 하다. 이제 시동을 건 언론개혁이 성공하려면 풀뿌리 지역언론이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결코 중앙언론의 체질개선만으로는 언론개혁이 달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장호순/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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