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에쓰이는 항암제는 50종미만

[대체의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어떤 질환으로 투병하던 중 어느 날 주치의로부터 ‘의학적으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통고를 받았을 때 닥쳐올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환자나 가족의 태도는 다양하면서도 공통된 특징을 나타낸다. 대부분의 환자나 가족은 일단 주치의의 판단이 잘못된 것일 것으로 기대하는 ‘부정’의 태도를 보인다. 따라서 다른 의료기관을 방문하여 다시 진단을 의뢰하거나, 보다 나은 의료기술이 있을 것을 기대하고 외국의료기관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러나 기존 정규의학에서 거듭 가능성이 없다고 확인될 때, 의료진의 판단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기존의학 그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것으로 선택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자신 혹은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규의학이 잘못 판단한 것이기를 희망하고 그와 같은 주장을 펴는 쪽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통해 널리 있어 왔던 일인데, 최근의 양상은 ‘대체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다. 대체의학의 문제점들은 거의 모든 의료행위에서 관찰되지만 특히 임종을 앞둔 난치병환자에서 극단적인 상황들이 관찰된다. 몇 년 전 모 대학에서 재직 중이던 50대의 교수님이 간암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진단시부터 암이 너무 퍼져 있어 기존의 의학적 기술로는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어, 환자 및 보호자에게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귀가해 안정을 취하도록 하자, 교수님은 잘 이해하겠다며 퇴원하였다. 그런데 1주일 후 ‘그 교수님이 혼수상태로 지금 응급실에 도착했으니, 급히 와 달라’는 연락이 왔다. 스스로 걸어서 퇴원하신 분이 혼수상태라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하여 상황을 파악해보니 교수님은 회생불능상태였고, 의료진이 소생을 위한 몇 가지 조치를 취하였으나 수 시간 후 돌아가셨다. 어떻게 이 같은 일이 일어났는지 가족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금식기도로 비슷한 상태의 환자가 완치되었다는 주변의 충고에 관심을 가지고 3일전부터 금식기도에 들어갔던 것이다. 진행된 간암환자가 3일간 금식하여 간성 혼수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그 결과는 처절한 것이었다. 그냥 의료진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안정하고 계셨다면 6개월 정도 마지막을 정리할 수 있는 기간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답답한 심정에서 이런 선택을 하게 된 상황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이렇게 되도록 방치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가는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부작용이 전혀 없이 우수한 효과를 지닌다’고 주장하는 부류의 치료법들도 많이 있다. 항암제의 경우 지난 50여 년간 50만종이상의 물질이 항암효과를 가진다고 정규의학전공의 연구자들에 의해 주장되었다. 그러나 암환자를 대상으로 널리 사용될 수 있는 항암제는 현재 50종이 채 되지 않는다. 즉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효과가 있다고 인정될 수 있는 ‘사실’은 결코 같지 않다. 대체의학이 지니는 문제점 중의 하나는 경제적인 측면이다. 임종에 가까워질수록 의료비지출이 증가하는 것은 서양이나 우리 나라나 마찬가지인데 그 원인은 서로 다르다. 서양에서는 인공호흡기와 같이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환자의 상태에 관계없이 절대적으로 생존기간만 연장시키는 경우 과연 이러한 생명연장이 의미있는 것인지에 대한 반문이 일어 ‘안락사’ 문제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반면, 우리 나라는 말기환자의 의료비지출의 대부분이 정규 의료기관이 아닌 대체의학의 시행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이는, 최근 소득수준의 향상과 가족구조의 변화로 인해, 과거 말기환자라고 하면 그냥 포기해 버리던 것에서, 이제는, 최후의 순간까지 무언가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있으면 환자에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요, 마지막 가시는 분에 최선을 다한다는 사회적 통념의 소산이 아닌가 생각되며, 이 같은 환자나 보호자의 심리를 이용하여 부당한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나쁜 집단들도 있다. 이 과정에서 대중매체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의료관련기사를 여과없이 보도하여 환자 스스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점이 의문스럽다.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연구자의 자유의사이겠지만, 그 검증과정은 공적인 연구기관에서 전문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발표도 신중을 기해야만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대체의학의 또 다른 문제는, 정규의학에서 충분히 치유될 수 있는 질환의 환자까지 의료진의 권고를 무시하고 잘못된 길로 이끄는 것이다. 이러한 예로, 비교적 초기에 위암으로 진단받은 경우를 들 수 있다. 수술을 통한 완치가 가능한데도, ‘암에 칼을 대면 병이 더 빨리 악화된다고 주위에서 들었다며, 식이요법으로 극복하겠다’고 적극적인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를 종종 보면서 무엇이 의료에 대한 이 같은 불신을 야기했는지 자책하기도 한다. 죽음을 아무런 저항없이 수용하라, 모든 희망을 노력조차도 해 보지 말고 포기하라고 권유한다면 아마 그 누구도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의학이 발전하여 난치병을 근원적으로 치료할 수 있어 대체의학에 의존할 필요성을 느낄 필요가 없게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효과적인 결핵약이 개발되기 전에, 지금의 말기암 환자들이 겪고 있는 것과 유사한 혼란과정이 결핵에 동일하게 나타났던 역사적 교훈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암과 같은 난치병에 대한 명확한 치료법이 개발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때가 올 때까지는 이 같은 혼란은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절박한 심리 주위에 끝없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고통을 받는 환자들을 도와주는 호스피스와 같은 제도적 장치의 확립이 이루어진다면 이들 환자나 보호자의 고통과 경제적 손실은 현저히 줄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말기암의 고통을 겪고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방법에 의존하기 보다는, 의료진과 계속적으로 상담을 하며 당면 문제들에 대처해 나가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제공/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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