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촌로의 되돌아본 인생]윤세민/교육자·수필가

예전 같으면 오곡이 무르익는 가을철에는 내 고향 강정마을 들판은 나록 황금물결이 넘실거려 일대 장관이었다. 논두렁을 걷고 있으면 프랑스 파리 향수의 거리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특유의 나도향이 코를 찌른다. 이럴 때는 심호흡을 해가며 가슴이 부풀도록 마신다.

이 마을에서 나서 잡초의 삶으로 이어오는 나에게는 풍만한 추억이 내 인생의 자양분이 돼주고 있다. 나록 알 잎에 맺힌 이슬은 불볕더위에 등이 타 들어가며 흘린 우리 어머니들의 땀의 결정체라 이 논밭에서 한 해 동안 흘린 땀을 모아 무게를 달아본다면 얼마나 될까.

옛 모습이 이제 내마음 속에 남아 영원한 그리움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토목기기가 없던 시절에 만여병듸에 물길을 열어간 선인들의 지혜가 놀랍다. 그저 물의 흐름에 따라 물길을 열어간 것이다. 급변하는 시대의 해일(海溢)은 논두렁들이 엮어내고 있는 아름다움을 재연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사시(四時)에 맞추어 다양한 색상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들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연을 통째로 사용한 예술가의 감흥이 솟구친다. 사시사철 도처에서 용천수가 솟아나 물 많은 지경임을 상징하여 강정(江汀)이란 지명으로 통하게 됐다.

광활하고 비옥한 농토에서 생산되는 곡물(보리 곤쌀)은 미질이 좋아 식객들의 입맛에서 소문나 선호하게 됐다. 토양이 점토질이라 조 농사가 되지 않아 좁쌀이 여간 귀해 조팝은 특이식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강정애기 울면 조팝 주면 울지 않는다"는 속언이 1950년대까지만 해도 흔히 말해왔다.

필자도 어렸을 때 흐린 좁쌀로 무쇠 솥에서 감주 밥을 짓는 구수한 냄새를 감지해 정지에서 할머니 치마 자락을 붙들고 애원하다 누렁 밥 한 숱에 그만 매료돼 소원성취의 꿈을 이룬 때가 있었다.

정의, 모간 지방에서 어지간한 부자나 문중에서는 제사나 제미(祭米)를 마련하려고 논판이를 소유하고 있었다. 추수철이 오면 조랑말 타고 마을로 들어오는 위세는 너무나 도도해 행인들이 눈총을 쏘아댔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방울소리에 애들은 신기해 말 뒤를 개선장군 따라 나서듯 동네 안을 누벼 다녔다. 어른들은 방울소리만 들어도 누구네 논 임자라고 알아챘다. 지주와 소작인과의 관계가 요즘 사회일각에서 대두되는 노사문화와 흡사했다.

투명한 소득분배로 노사 간에 극렬한 갈등이 파생하듯 틀 아래 흩어진 얼마 되지 않는 나록 강메기 알까지 챙겨가는 야박한 지주가 있는가 하면 몇 말 더 얹어주는 후정한 지주도 있었다. 이런 저런 후문이 온 마을 안에 나돌아 지주들의 품격을 가늠해왔다.

귀넘어듣던 장난꾸러기들도 곡심이 생겼는지 야박한 논임자 말 뒤는 역불 따라 다니며 대나무 막대로 말 똥구멍을 찌르는 통에 말은 버둥질 쳐 으쓱거리며 뽐내던 논임자도 혼비백산 말 등에서 떨어지는 꼴은 여간 보기가 민망했다. 멀리서 지켜보던 어른들도 웃음을 감추지 못해 몰래 깔깔 웃어대는 진풍경은 옛 농경시대의 희로애락을 동반한 스트레스의 한 단면이었다. 해방 후 농지 개혁령에 의하여 농지는 소작자의 소유로 되어버려 그 후부터는 논임자와 말방울 소리도 영 끊기고 말았다.

농경시대에는 살기 좋은 농촌마을이라 일강정이라 했다. 이 논밭에는 수백 년 우리의 삶이 모두 배어 있었다. 그 안에서 생명을 걸고 일을 해왔다. 자연과 더불어 희로애락을 같이하면서 때로는 순응하고 혹은 원망하고 그래서 투쟁하면서 현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완만하게 굴곡진 먼 들판의 모습은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린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예술품, 바로 그것은 거대한 대지(大地)미술 같은 아름다운 정원이다. 그 사이에 흐르고 있는 물줄기는 미로처럼 얽혀 있으면서도 반드시 규칙과 순서를 어기지 않는다.

난데없이 논두렁에서 하신 아버지의 말씀, 물은 유연성이 있어 아무 그릇에도 담을 수 있다. 살다 보면 악연이 생긴다. 명약은 관용뿐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겸손함을 배워라. 물은 한 웅덩이를 채우고 나면 다른 곳으로 옮긴다. 진퇴의 판단력 등 이루 헤어릴 수 없는 교훈은 내 인생의 이정표가 돼주었다.

어이도 모나지 않은 논배미는 순한 농군의 심정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논을 절대로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우리 선인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흐름에 따라 물결 같은 논두렁을 그리면서도 중심 바닥만은 공평을 잃지 않는 것이다.

들녘을 바라보면서 생존의 고단함을 무심히 달래고, 거기 넘실대는 나록을 보면서 생의 의지를 돋우었을 옛 어른들을 생각한다. 거친 한숨, 고뇌의 숨결은 그대로 노동요가 돼 지금도 애환을 달래느라 흥얼거리고 있다.

이제 들녘에는 광음의 트랙터가 안하무인격으로 덤비고, 덩달아 갈바람도 세차게 전율이 감돈다. 장마철이면 으레 팡팡 솟아나던 구명(鳩鳴)물줄기는 종적을 감추어버렸고, 젖줄과 다름없는 큰 강정물도 고갈돼 옛 정취를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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