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촌로의 되돌아본 인생]윤세민/원로교육자

흥부는 다리를 다친 제비를 구해 준 갚음으로 박씨를 얻어 심어, 거기서 연 박 속에서 금 은 보화가 나와 벼락부자가 됐다는 우의소설은 선과 악의 교훈을 우화적으로 재미있게 꾸민 것이라 자주 들어도 실증 나지 않는다.

우리는 태교나 유아기의 감화가 인성형성에 중요함을 자식을 키워보면 알게된다. 사랑의 열도는 높아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냉온이 차도를 시의 적절하게 조절해야 하는데도 그걸 모르고 과열로 자식농사를 혹시나 망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대가 낳고 세월과 함께 가 버린 ‘문전나그네’들은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생소한 말이 돼 버렸다. 그러나 굿판에서는 나그네 상(床)에 인정 겁서 한다. 사오십 년대 춘궁기에 일강정(一江汀) 유명세 탓인지 대식 때마다 동냥바치가 찾아와 ‘나그네 보내고 점심한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때로는 귀찮은 존재로 여겨왔다.

어머니는 늘 제몫이 국밥 그릇을 넘겨주고도 태연히 지켜봤다. 자리를 뜨고 나면 “문전나그네 박대하면 너의 들도 나가면 박대 받는다. 한 술 덜 먹고 배고픔을 함께하자. 불우한 사람의 걸음마를 흉보지 말라. 밥그릇 앞에서 음식 맛이 좋다 싫다 타박하는 목소리가 높으면 장차 남의 집 종노릇으로 태어날 자손이 나온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도 든든한 내 마음이 유산이 돼 주고 있다.

‘밥상머리교육’의 원칙을 적절하게 살린 가르침이었다. 그래도 우리들은 어린 효심에서 대식 때마다 올레 망보기로 나섰다. 당시 문전 나그네들은 암울한 생활상을 여실히 풍자하고 있었다.

장애자는 사회로부터 냉대시하고 버려졌기에 구걸행각에 나설 수 밖에 없었던. 이 설움과 고통은 당시 다함께 겪은 우리의 아픔이었다. 구걸하는데도 나름대로 일관된 법도가 있어 과부나 홀아비, 부모를 일찍 여읜 집에는 구걸을 안 한다는 것이다. 미천한 인생관으로 살아오신 어머니에게는 어느 날 해괴 망측한 일이 발생했다.

점심을(보리밥과 된장) 논두렁에 놔두고 김매다 보니 웬 두 사람이 인사불성하고 먹고 있었다. 영문을 묻기도 전에 송악산을 가르키며 저 해변 진지 굴 파기에 징용당해 왔는데 생지옥과 다름없어 어제 밤에 탈출해 여기까지 왔다는 기막힌 사연을 들으니 나라 잃은 민족의 의분에 차마 그대로 올 수 없어 나그네 식구로 맞아 들었다.

혹시나 세인에게 노출될까봐 낮에는 피신방책으로 소몰이로 나가 일몰 후에 오곤 했다. 순사(巡査) 온다는 말만 들어도 죄책감에 질려 하루해가 더디 진다며 탄식하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8·15 그 날까지 꼬박 두 달 동안은 불안과 공포의 도가니 속에 들어간 기분이었으나 다행히 무사한 것은 이웃 간에 동족애로 감싸줬기 때문이었다. 8·15의 그날, 필자는 일본천황이 떨리는 음성으로 황국신민에게 고한 방송을 듣고 서귀포에서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젠 고향에 갈 수 있다는 말에 두 분은 감읍(感泣)을 못 이겨 요동치는 통에 우리들까지도 울고 말았다. 귀가채비를 서둘다보니 저고리 안쪽 천에 주소와 이름이 먹 글로 적혀있어 보는 순간 아연실색 하고 말았다. 생사를 갈구하는 꼬리표이었다. 귀향한지 꼭 오늘로 70년이 됐구나 이것이 잊혀져 가는 민족 수단의 역사이다. “논두렁에서 베푼 촌부의 푸근한 은덕”을 잊을 수 없는 게 인지상정이라. 이 기연(奇緣)이 훗날로 이어지는 절절한 사연들은 한 권의 실화 소설책과 다름없다.

나그네에게는 항상 기대감과 더불어 막연한 허전함이 있게 마련이다. 주변사람들에게 베풀지 않으면 고약한 평판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동냥은 안 주고 쪽박만 깨는 비정한 사회. 찾아오는 손님에게 후하게 베풀어야 좋은 평판을 들을 것 아닌가. 선인들은 적선을 많이 해 놓으면 시일이 언젠가는 반드시 후손들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는 믿음으로 살아왔다. 옛 말이 틀린게 하나도 없다. 어떻게 보면 후손들을 위해서 보험에 드는 일이다.

배고픈 시대는 한물 가고 마음이 배고픈 세상이다. 제주에 오는 나그네들에게 미소로 맞아주고 상냥한 말씨로 그리고 다정한 마음으로 사람을 보자. 제주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무표정은 자신을 할퀴고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다. 풍요로운 오늘의 삶에서 잃어버린 옛 후정을 되살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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