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떠나는 동화여행]장수명/동화작가

 나영.
 지아를 만나고 나서부터 자꾸만 9년 전 그때가 생각났다. 잊고 있었던 그날의 기억이 나영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엄마, 요즘 왜 그래요?"
 "뭘?"

 민호가 넋 놓고 있는 나영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엄마, 요즘 어디가 아픈 것 같아요. 밥도 잘 안 먹고."

 민호는 정말 엄마가 걱정인가보다. 또래 아이들 보다 키도 크고, 생각도 깊은 민호는 엄마 나영의 이마를 손으로 짚어본다. 민호의 손이 이마에 닿자, 나영은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엄마 왜 그래? 많이 아파? 머리는 뜨거워요!"

 민호는 나영의 이마에 다시 손을 갖다 대며, 손이 데인 아이처럼 입을 꽃봉오리처럼 쫑긋 오므리며 호호 분다. 나영은 가슴이 미어져 나가는 것 같다.

 '아, 내 아들, 내 아들……, 절대 널…….'

 나영은 민호를 당겨 와락 안는다. 눈물이 끝없이 쏟아진다.

 "엄마, 정말 왜 그래? 그만 울어. 많이 울면 머리 아파요."

 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민호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키우는 사람을 닮는다고 했던가? 민호는 나영도 닮았고, 죽은 남편도 닮아있었다.

 민호를 보던 나영의 눈에 지아가 비친다. 유난히 반듯한 지아의 이마, 금방이라도 눈물이 후두둑 떨어질 것처럼 말간눈물이 고이던 커다란 눈에 지아가 생각났다.

 '지아야, 미안하다. 지아야.'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본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걷어 올리던 나영은 어릴 때 친정엄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이마가 이렇게 반듯해야지, 여자는 잘 살지.'

 동그스름하고 뾰얀 이마.

 '그래, 우리 지아도, 지아도 잘 살 거야.'
 
 한편 지아는.

 민호가 제엄마 손에 억지로 끌려가자 저도 알지 못하는 설움이 북받쳐 올라 온종일 혼자 남은 본부에서 엉엉 울었다.

 "엄마~, 엄마~!"

 지아는 있지도 않은 엄마를 찾으며 엎어져서 울고 또 울었다. 한번도 그렇게 엄마를 부르며 속 시원히 울어본 기억이 없는데도 지아는 엄마를 부르며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얼마를 울었을까?

 그렇게 한참을 울던 지아가 눈물을 닦으며 돌아누웠다. 하늘을 향해서 돌아누운 지아의 눈에 바람에 밀려 떠내려가는 뭉게구름이 보인다.

 '구름은 좋겠다. 언제나 하늘엄마 품에 있으니까…….'

 눈물이 주르륵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아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벌떡 일어서서 달렸다.

 "이지아, 울지 마! 울지 말라고!"

 뜨거운 햇살은 지아의 눈물을 금방 말려버려 얼굴이 따끔거렸다. 깡마르고 작은 여자아이는 뜨거운 여름햇빛을 머리에 이고 넘어질 듯 휘청거리며 블록공장을 쏜살같이 지나쳤다. 지아가 정신없이 달려가 멈춘 곳은 집 앞이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녹슨 짙은 남색철대문은 잔뜩 화가 난 아버지입처럼 굳게 다물어져 있다.

▲ 삽화/김품창.

 헉헉,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지아는 있는 힘껏 목구멍을 열고 큰언니 지민을 부른다.

 "큰언니!"

 파란 핏줄이 오도록 튀어나오도록 움켜쥔 주먹손으로 오래되고 낡은 남색철대문을 마구 두드리며 언니 지민을 불렀다.

 "큰언니, 헉헉!"
 "지아야 무슨 일이야?"

 화등잔만큼 커다란 눈을 한 지민이 언니가 황급히 문을 열어 주었다.

 "어, 언……, 언니."

 숨을 몰아쉬고 있는 지아를 지민이는 빤히 올려다보았다.

 지아는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걱정스레 지아을 찬찬히 살피던 지민언니의 눈에 하얀 보석이 앙증맞게 박힌 핀이 보였다.

 "지아야, 네 머리에 웬 핀?"

 지민언니의 말에 지아는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란 얼굴로 더듬더듬 머리에서 핀을 뺀다.

 "…이거……."

 선 듯, 민호 엄마가 준거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아니 왜그런지 말하고 싶지 않았다.

 "…길에서 주웠어……." "주웠다고?"

 지민언니는 미심쩍다는 표정이다.

 "정말이야?"

 지민언니는 지아를 빤히 건너다보며 다짐을 했다. 잔뜩 움츠린 모양새로 지아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지민이는 그런 지아가 미심쩍다는 듯이 형사처럼 어디서 어떻게 주웠느냐며 꼬치꼬치 캐묻는다. 지아는 블록 공장을 지나오다가 땅에 떨어져 있는 핀을 주웠다고 어설프게 둘러댔다. 완전히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지민언니는 더는 묻지 않았다.

 "참, 아버지 닮았다는 아이는 왜 같이 안 왔니?"
 "…오늘, 제 엄마하고 서울 간다고 갔어."

 말을 마치자마자 지아는 또 울음이 목구멍을 넘어왔다. 지민언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지아는 다급히 제방으로 갔다.

 하얀 진주가 앙증맞게 박힌 예쁜 핀이다. 손바닥에 동그마니 올려 진 핀은 정말 예뻤다.

 지아는 까치발로 방안 구석구석을 살피며 한참동안 두리번거렸다. 이윽고 서랍을 열고 이리저리 뒤적인다. 핀을 어딘가에 숨겨두고 싶어서였다. 마땅한 곳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지아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고, 손놀림이 빨라졌다. 지아는 이불장을 열고 그 밑에 있는 서랍을 급하게 연다. 그리고 하얀 종이가방을 찾아 꺼낸다. 지난번에 아버지가 준 그 가방이었다. 가방 안에서 빨간 원피스를 꺼내 든다.

 '됐다.'

 지아는 핀을 가디건 주머니에 넣었다.

 핀이 든 가디건 주머니는 볼록하게 도드라졌다. 지아는 그 위를 손으로 만지며 웃는다. 커다란 보물을, 비밀을 간직한 것 같아 지아는 가슴이 마구마구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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