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

"서귀포로 이사갔어? 제주도에서 꼭 하면 좋겠다고 내가 생각해 놓은 게 몇 가지 있는데..."
 6년만에 만난 전유성 아저씨는 마치 어제도 만난 사이인듯 거두절미하고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제주도 차량 번호판을 제주섬 모양으로 바꾸는 거야. 제주도 차가 뭍에 나가면 제주도에서 온 걸 금방 알구, 재밌잖아. 성산일출봉에서는 연을 날리게 하는 거야, 힘들게 일출봉 올라갔는데 해가 안 뜨면 김새잖아. 그런데 연을 날리면 그게 추억거리가 되는 거야. '애인 생기는 연', '건강해지는 연', '자식낳는 연', '부부사이 좋아지는 연', '부모사랑 받는 연'...이왕이면 미역이나 김 같이 바다에 떨어져도 환경적으로 문제없는 연을 만들면 좋지. 바닷가에 화산석들이 많잖아. 그런 돌을 해녀로 조각하는 거야. 파도가 치면 해녀가 물속으로 들어가고 파도가 가라앉으면 나타나고, 지나가면서 봐도 재미있잖아. 한라산이나 오름들 입구에 체중계를 놓고 등산 전후의 몸무게를 비교하게 하는 거야 '설렁설렁 걸으셨군요, 조금 줄었어요', '열심히 걸으셨군요, 많이 줄었어요', 다이어트 등산로가 되는 거지"

 "와, 아저씨의 머릿속에는 정말 재밌는 생각이 가득한 거 같아요, 그런데 미역이나 김으로 연을 만들 수 있을까 모르겠네.... "

"안 되는 거부터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게 없어, 되는 쪽으로 생각하는 거야."

"알았어요.  연구해 볼께요"

"그래. 연, 구해봐"

하하하하, 빵 터지고 말았다.
 
개그맨 전유성,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10대 소녀 때 TV를 통해서 였다. 나는 지금도 그의 데뷔작을 기억한다.

"어떤 도둑이 남의 집 담을 막 넘으려는 데 마당에 식구들이 나와 앉아 있었던 거예요. '도둑이야'하고 소리를 쳤어요. 그랬더니 도둑이 하는 말, '에이 씨, 안 넘어가면 될 거 아냐'“

그의 재치에 사람들이 넘어갔다. 못생긴 외모로 또는 넘어지고 쓰러지는 바보연기로 웃기는 것에 식상할 무렵, 그는 '개그'라는 창문을 통해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허술해 뵈는 인상과 어눌한 말투 속에 번득이는 재치, 그는 비교와 경쟁이 판치는 세상에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편안한 비타민이 되어갔다.

그리하여 어느날 800만명이 듣는다는 MBC 라디오<여성시대>의 공동진행자가 되었고, 나는 10대 소녀에서 여성학자로 성장하여 그 프로그램의 고정출연자로 일주일에 한번씩 의무적으로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10년쯤 지났는데 내가 그를 아저씨라 부르며 몇 달에 한번 뜬금없이 전화로 안부를 묻고 있었다. 언제부터지? 어떻게 하다가? 모르겠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답이 있긴 하다. 개그맨 전유성, 그는 매우 편안한 사람인 것이다.  연예인이라고 재거나 튕기거나 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향해 마음이 열려 있는 그가 내게는 만만한 친척 아저씨 같은 것이다.

지난 3월 초에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1년만이었을 거다.

"아저씨, 5월 30일 경북 안동에서 열릴 토크콘서트 진행을 맡았는데 '재미있는 가족이 되자'는 얘기 좀 같이 했으면 좋  겠어요"

"나는  가족에 대해 할 말이 없는데...이혼하고..알잖아? 그래도 도움이 된다면 가보지 뭐"

5월 10일 콘써트 기획회의라는 명분으로 아저씨를 찾아 청도로 갔다. 그 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빵터졌다. 아저씨는 그새 우리밀 빵집 주인이 되어 있어 빵복이 터지기도 했지만  빵집 이름이 식스팩이었다. 갓구운 식빵을 배에 붙힌 남자 그림, 그 밑에는 쌩뚱맞게도 '대출금을 빨리 갚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걸보고 '헬쓰클럽이냐', '대출업체냐'는 문의전화가 적잖이 걸려왔단다. 이에 대한 아저씨의 반응은 딱 한가지, '재밌잖아'

그는 삶의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재미있는 발상만 하는 게 아니라 즉각 실행에 옮긴다. 서울 인사동에 <학교종이 땡땡땡>이라는 카페주점은 학교에서 쓰는 책상과 의자에 학창시절 추억의 인테리어로 대박을 쳤다. 그러나 그 돈을 친구 보증으로 날리고 서울을 떠나 청도로 갔다.

"아저씨가 철가방 소극장 만들었단 얘기 들었어요. 코메디 연기 후배양성하시는 거죠?"

"응, 선배를 양성할 수는 없으니까 후배양성하는 거지

"개나소나 콘써트는 잘 되시구요?"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야외 콘써트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고 매해 성황이다. 그는 개그맨으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공연기획자로서 연륜이 매우 깊다. 듣고 보도 못한 음악회, 모유수유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을 위한 음악회, 임플란트가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콘써트, 그는 대중들의 가려운 곳을 짚어주는 데 도사이다. 성악가가 부르는 가요 60년사를 기획하면서는 성악가들의 약력에 최종학력이 아닌 최초학력을 적어넣게 했다.

"공연이 끝난 다음에 성악가들마다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팬들이 나타난 거야. 같이 사진찍고, 얼마나 재밌어? 좋잖아"

아저씨는 상투적인 것을 거부한다. 그래야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살아야지, 그런데 돈 들여서 하지 말자는 거야. 생각을 바꿔서 하자는 거야"

일상이 재미로 점철되어 있는 전유성, 아저씨와 보낸 1박2일은 살아있는 개그콘써트였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