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명 아/전교조 제주지부대의원

쉽사리 떠들어대기 좋아하는 호사가들 입방아에 존재마저 가벼이 여겨져 씁쓸해지는, 스승의 날이 자리 잡은 오월입니다. 차갑고 볼품없는 철책 담장이나마 사랑스러운 듯이 얼싸안고 흐드러진 새빨간 장미가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오월입니다.
어느 대중가요 가사처럼 교사인 듯, 교사 아닌, 교사 같았던 저에게 교육자로서의 소명 의식을 깨우쳐 주신 선생님,어린이가 선생을 믿고 존경하면 이미 교육은 다 이루어진 것임을, 어린이를 이용하지 않는 인간화된 학교 사회의 건설을, <창조하기>, <주인 되기>, <자기되기>, <삶 배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지요.

학생을 살펴야 할 교사들의 눈이 관리자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음을 질타하셨습니다. 체육교육을 한 예로 들어 수십 개의 우승기와 우승컵이 찬란하게 진열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학교 교육과정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전체 학생들의 체위가 향상된 것이 아니라면 자랑할 것이 못된다고 엘리트주의, 경쟁주의 교육을 비판하셨습니다. 선수 중심의 지도에 집중되고 있는 지도교사의 역량이 모든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꾸준히 체육을 즐기는 것의 바탕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초, 중등 교육이란 모름지기 인간으로서의 기초, 교양을 쌓아주는데 목적이 있어 여러 분야에서 학생 각자가 타고난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개발하면 족함에도 <남과의 비교, 또는 경쟁>을 빼고는 남는 게 없는 지경인 우리 교육을 비통해 하십니다. 어른들이 학생을 이용한다고까지 표현하십니다. 지켜주어야 할 아이들을 살펴주기는커녕 악용하는 부끄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이지요.

현재를 살아가는 제가 선생님이 글을 쓰시던 때를 떠올리며 그토록 유사함에 놀라움을 느끼듯이 선생님이 지금을 살아가신다면 애가 타게 걱정하셨던 40여 년 전 교육의 추태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음에 얼마나 놀랍고 비통하실까요. 고작 행정기관의 말단 체제 안에 머무르는 학교와 학부모의 욕망에 부합하는 비교육적인 속성들을 포함하여 말이지요.

선생은 가르치되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학생들은 배우되 그들 나름의 절차로, 하나의 학급을 <창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장이 하라는 대로 교육해 주는 교사, 선생이 하라는 대로 공부해 주는 학생이 되지 말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교육하는 교사, 공부하는 학생이 되는 <주인>이 되라고. 배움이란 본디 하나밖에 없고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내 인생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라고 하시며 배운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같은 뜻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도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행복을 꿈꾸며 철책 담장보다 더 볼품없는 문제투성이의 한국교육을 얼싸안고 새빨간 장미 한 송이를 피워내기 위해 서귀포 서쪽 마을로 달려갑니다. 때때로 후회가 밀려들고 제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좌절할 때, 당신의 글을 ‘한국교육의 이름 없는 선구자들에게 바친다.’ 하셨던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힘을 냅니다. 하늘나라에서라도 한국교육의 이름 없는 선구자가 되기를 꿈꾸는 후배 교사들을 응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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