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쉼팡/절반의 성공

시골에 와서 산다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들 교육부터 걱정해 온다. 우리가 전에 살던 곳이 교육열로 치자면 전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곳이라 어떻게 그런 곳에 살다가 시골로 이사를 왔느냐고 자못 근심스럽게 물어오는 이가 많다. 하지만 그곳에 살면서도 학원 한번 안 보내고 아이들을 ‘놓아 먹여’키여온 우리인지라 시골이라고 해서 아이들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올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두 아들 녀석에게 서울에 가겠느냐고 물었더니 첫마디가 “답답해서 가기 싫어요”였다. 친척 모두가 아파트에 사니 마당이 없어 싫다나. 우리부부는 의미있는 눈짓을 주고받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1년만에 이 정도의 대답을 들었으면 우리의 귀농은 적어도 실패작은 아니라는 뜻에서였다. 오히려 이즈음에는 우리의 귀농은 이미 절반 정도 성공한게 아닌가 하는 자신감마저 생긴다. 얼굴에서조차 허물이 벗겨질 정도로 새까맣게 타버린 두 아들 녀석들을 보고 있자면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가 시골살이라는 확신도 드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생인 큰 아들은 늘 일에 치여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엄마 대신 동생을 데리고 밤늦게까지 집을 지켜야 했다.어쩌다 토요일 오후 친구 생일 파티에라도 초대받으면 집에 동생만 두고 갈 수가 없어 그 친구에게 ‘동생을 데려와도 되느냐’고 다짐을 받던 큰 아들에게 동네 아주머니들이 붙여준 별명은 ‘소년가장’이었다. 이사를 해도 늘 도둑이 들어올수 없는 꼭대기층에서만 살자고 고집하던 아이, 어미보다 더 문단속을 잘 하던 아이가 급변한 것은 이곳으로 이사온지 두달이 채 안돼서였다. 도시와는 달리 해만 지면 사방이 깜깜해 산중에 고립된 듯한데도 개가 짖으면 스스럼없이 밖으로 나가 집을 한바퀴 둘러보고 오는 것이었다. 어느날 안방에까지 날아들어온 반딧불이를 따라 칠흑같이 어두운 동네 고샅을 뛰어 다니기도 하고 밤중에 가로등에 붙은 사슴벌레를 잡겠다고 용감하게 나서는 걸 보면서 정작 도시 생활에 찌들었던 건 우리 부부가 아니라 아이들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나는 교육을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체적, 정신적 단계에 따라 스스로 변화해 가는 것 또는 그 변화를 바람직하게 유도할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 아이들에게도 고민은 있을 것이고 도시 아이들에 비해 직간접 경험의 기회나 선택의 폭이 좁다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겠다는 명분 아래 아이들로부터 고향을 빼앗길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다음에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가면서 가슴 아픈 일을 당하거나 제 힘으로 어쩔수 없는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나는 아이들이 이 집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부모형제가 도란도란 살았던 야트박한 돌집, 해질녘부터 네 식구가 살을 부비며 드러누워 별이 듣기를 기다렸던 마당의 쪽마루 평상, 부모가 약 한번 뿌리지 않고 거둔 풋고추를 씻을 필요도 없이 쑥 베어물던 이 시절을 기억하면서 뿌리깊은 힘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그 첫발을 떼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미 절반은 성공한게 아닐까.조선희/남군 표선면 토산리제226호(2000년 8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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