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촌로의 되돌아본 인생]윤세민/교육자

서귀포시 강정마을은 예로부터 물이 많아 전답(田畓)이 넓어 곤쌀 고장으로 널리 알려서 있다. 어딜가나 맑은 샘물이 사철 솟아 나 늙은 몸체 굽혀감변서 한 모금 마셔 긴 수염을 내려 쓸고는 저무는 인생길에 서서 감탄과 함께 지난날의 논두렁 정취가 다가온 느낌이 들었다.

물줄기의 흐름에 따라 거침없이 논밭을 일구어 살아온 우리 선인들은 매우 지혜로웠다고 생각해 진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일 강정지경에 소분제조(掃墳祭條) 논판이나 마련해 두려고 생전에 갈망해 왔다.

황금알이 술렁거리는 강정 논 들녘을 한 눈에 바라다 볼 수 있는 중간지점 모릉에 망루역할을 해온 꿩망 동산이란 명소가 있다. 큰 바위 틈에서 용출하는 꿩망물을 정수로 떠다 토신제와 조왕제 제단에 뿌려왔다. 그래서 이곳을 신성시해 입욕을 자제해 왔다.

추수가 끝나 하늬바람이 세차게 몰아쳐 들녘은 살랑한 기운이 감돌아 허허벌판이 된다. 낱알을 주어 먹으려고 먼 여정을 거쳐 기러기와 철새들이 날아든다. 게다가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참새들도 군집한다. 들녘은 먹이 사슬이 좋아 온갖 철새의 낙원이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보리밭에 그 많은 기러기 떼가 한 번 내려앉으면 초토화되고 만다. 방비책으로 허수아비를 세워 보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방울 쇠를 달아매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날아든다. 동쪽 구럼비로, 동이물개로 미녀코지 들판으로 종횡무진 날아다니는 통에 겉잡을 수 없었다.

옛 선인들도 이 꼴을 보면서 얼마나 야속했는지 고안해 낸 것이 '기러기 코'였다. 이 '기러기 코'를 보면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면서 취약점을 보완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재료는 단지 명주실로 꼰 끈, 장 닭 꼬리털 뿌리 뼈다, 10센티 가량 된 대나무 못, 밀초가 전부이었다. 아무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손재주가 있는 숙련공이 만들어야만 기러기가 코에 잘 걸려든다는 속설이 나돌고 있었다. 이것을 보면 겨울 사냥 스포츠 회원임을 가늠할 수 있었다.

기러기가 내려 안은 곳을 봐 두었다가 보리밭이나 논두렁에 기러기 코를 연달아 꽂아 둔다. 그러면 경우에 따라 목에 걸리고 발목에 걸려든다. 숨죽여가며 위장해 근처에 잠복해도 바람 타 풍기는 냄새 탓인지 영 날아오지 않는 것이 기러기 생미를 이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꿩망 산 동산이 일명 관측과 통제소가 돼 버렸다.

기러기 코 매복한 곳에 내려앉으면 모두가 주시해 있다가 목 주둥이 부위나 발목에 걸려 후닥닥거리면 모두가 환호하며 달려간다. 한 두 마리 생포가 고작이었다. 매일 잡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한해 재수가 대통해야만 잡게 된다. 이 희소식은 동네에 삽시간에 파급돼 눈총을 받게 된다. 두 말 뜨기 무쇠 솥에 물 퍼놔 기러기 탕을 끓여 동네잔치가 벌여진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옛 선인들은 너것 나것 분별하지 않고 한솥밥 가족정신을 근간으로 행복한 삶을 이어왔다. 젊은이들은 기러기 사냥에 골몰하는데 애들도 보고 만 있을 수 없어 참새 떼를 포획하는 궁리를 해냈다. 참새 떼는 추수 때 낱알로 떨어진 벼 알을 주워 먹으려고 모여들게 된다.

옛 선인들은 논밭을 일구어 내면서 작은 돌멩이를 주워 모아 군데군데 쌓아 둔 것이 많았다. 이것을 작벽 동산이라 해 오랫동안 불경지로 방치되다보니 잡 가시나무가 자생하여 참새 떼들이 위급했을 때는 피난처가 됐다.

큰 내 상류 넷길이 소(四吉沼)기정에 멋나무 자생군락지로 이미 알고 있었다. 위험한 바위 나무에 매달려 나무껍질을 뻐겨 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떨어지면 즉사하고 만다. 이런 참상이 있었기에 위험지구로 정해져 있었다.

그래도 담력있는 애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나무에 매달려 왔다. 이렇게 생명을 담보로 해 얻은 나무껍질을 돌 혹에 놔 두둘겨 데다보면 고무 풀 보다 강한 접착제 풀을 만들어 이 풀을 나무막대에 돌돌 말아 참새들이 모여드는 작벽 나무에 꼽아 두면 영락없이 참새가 붙어 포획하게 된다.

하루에도 수없이 잡는다. 그러면 이 참새들을 다 모아 놔 털을 뽑고 내장을 빼어내 버린다. 이 손질은 애들이 도맡아 한다.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놔 화덕을 만들면 통째로 참새를 얹혀 구워내면 노랑 빛살 나는 참새구이가 된다. 고소한 냄새는 바람 타 들판에 퍼져 나간다. 그러면 어른들도 군침을 흘려가며 모여든다.

당시 농한기 추운 날씨에 거리에 나와도 갈 곳이 없었다. 이 꿩망 동산에 나오면 건전한 겨울 스포츠 놀이로 하루를 보내왔다.

지금은 옛 논농사가 마늘 농사와 하우스 작목 단지로 돼 버려 철새와 영 결별하고 말았다. 그 많은 작벽들도 농로도로 포장기초 골재로 요긴하게 써버려 흔적 없이 없어졌다. 이런 시절 이 꿩망 동산에서 병정놀이 하다 참새구이를 맛본 팔순 노인들도 이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서울 유학 중에 6.25발발. 인민군에 강제 징집돼 생사여부를 모르던 윤00씨도 소년시절에 이 동산에서 즐겨 놀던 사람이다. 이렇게 인연이 닿았는지 60여 년 만에 중국 연길에서 가족 상봉이 이루어 졌다.

첫말이 해마다 겨울 밤 함경북도 길주 상공을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보면 새들은 저렇게 왕래하는데……내고항 강정 비녀코지 구럼비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향하여 내 소식 전해다오 해마다 외쳐왔다. 그래서인지 오늘 누이동생들과 종손 조카를 만나게 된 것은 같다며 얼마나 한이 서려있기에 이런 말을 했을까.

명소였던 꿩망 동산은 언제 그랬느냐고 아는 사람도 없으니 찾는 사람도 없다. 소나무 숲이 우거져 사방은 가시덤불로 엉켜버렸다. 게다가 꿩망물 코 마져 매립해 버렸으니 옛 정취는 영 잃고 말았다. 자연을 저버리는 인간의 무지한 소치에 경탄(敬歎)해본다. 그래도 짝 잃은 백로는 물 길 따라 외롭게 서성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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