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촌로의 되돌아본 인생]윤세민/교육자

제주 말이 갖고 있는 풍부한 어휘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길에서 마주치면 웃어른이던 아랫사람이던 간에 가리지 않고 하는 인사말이 "어디 감서. 어디 감수광"이다.

인사말로 한 것이라 구태여 긴 말을 늘어 놀 필요가 없다. 다 건성이라 듣건 말건 직답이 "먹은 오몽 호래 감쭈"(먹은 오몽 하러 간다) 으레 하던 인사말이다.

오랜만에 만나 근황을 물으면 대뜸 하는 말이 "먹은 오몽 햄쩌 꽝 성한디 노랑 되는냐.(먹은 오몽 하고 있다. 온 몸이 건강하니 놀아서 되느냐)“ 기력에 맞는 일거리를 찾으려는 노 세대들은 지금도 거리낌 없이 주고 받는 인사말이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육지 친구는 묻는다. 우리말 사전에도 없는 말이라 뭐라고 설명해야 될까 망설이다 한 말이라곤 얄팍한 상식에서 말해줬다. ‘움직인다’를 제주어로는 ‘옴직거린다’라고 한다에서 나온 축약어가 곧 ‘오몽(動)’이다.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조석으로 걷기 운동을 건강 수칙 제1호로 하고 있는 반면, 제주 선인들은 항시 밭에서나 집 울안에서도 일감을 찾아 오몽해왔다.

근래 대두되고 있는 건강, 장수비결로 약보(藥補)보다는 식보(食補) 식보보다는 행보(行補)라 하고 있다. 행보는 곧 오몽인 것이다. 오몽하면 제절로 저근(貯筋)력이 생겨 활보할 수 있었다.

단 두글자로 구성된 짧은 말이지만 구성진 어감에 정감이 들어서인지 노세대들은 세계 어디에 살던 제주인은 잊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이 말을 쓰고 있을게다.

구차하게 늘어 놀 필요 없이 간략해서 좋다. 세상에 이처럼 함축적이고 맛깔스러운 말은 드물 것이다. 이 말의 멋을 알아채는 사람들이 없어져가니 그저 멋없이 혼자 중얼거려 지는 것 같아 때로는 머무적거려진다며 하소연 한다.

감정이 풍부한 제주어의 어휘를 잃어 간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이제 자연과 멀어져 가는 생각이 든다.

제주의 자연과 어우러진 삶의 숨결 속에서 만들어진 토박이 말은 순박하게 살아가는 공동체의 정신이고 삶이다. 제주어는 간결 명쾌하게 압축하여 표현하는 축약력(縮約力)이 있다. 일본 언어학자는 나를 지칭하는데 외국어에 비해 와다구시(私)가 네 음절로 돼 길다고 한탄 했다고 한다.

제주어에 매료됐으면 탄성이 나올 것이다. 우리는 지난날 언어의 이중생활에서 사투리가 주는 즐거움을 잊고 말문이 막힐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사투리를 쓰지 말자고 내건 때가 어제 같은데 이제는 제주어 축제와 동요 축제가 열리고 있다.

외지에 나가면 제주어가 촌스럽다고 조심조심 말문을 열었던 시대도 한물가 어디를 가나 이제는 활짝 말문이 열린다. 제주사람 판명에 나도 더욱 으쓱해진다.

‘먹은 오몽 하라’ 표현은 소박하고 간결하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의미는 심장하다. 이 말은 대 식솔을 거느린 어머니의 통솔(?)방침이자 잠언이었다. 대식 때 정지바닥에 모여 앉으면 때로는 하루의 오몽 상황을 점검해 왔다.

건달 부리려는 자식에게도 늘 격려와 칭찬, 애정표현으로 일관하면서도 ‘공부를 밥 먹듯이’ 하라는 메시지를 넌지시 얹어주었다. 어머니처럼 훌륭한 선생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살아오면서 절절히 통감해질 때가 있을게다.

굳이 명사의 말을 인용하지 않아도 「가정은 도덕의 학교」인 평범한 진리가 가장 쉽게 전달한 이는 학교보다 우리들의 부모들이었다. 글방 문전 구경도 못한 어른이 그 값진 말씀을 어디에서 체득했을까! 가문의 훈기에 젖어 제 절로 나온 것이다.

늦게나마 잠언의 근간을 알게 됐다. 백장선사의 하신 말씀 ‘일일불작(一日不作) 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겠다. 일하는 사람이 밥을 먹을 자격이 있다는 데서 온 말씀이었다.

이 말씀은 이 험난한 우리 인생여정의 등대가 돼 주었다. 선인들이 인생의 절정기를 후회 없이 불태울 수 있도록 만들어준 활력소이고 추동력이었다.

옛 어른들은 문지방을 넘나들 수 있는 기력이 있을 때 까지는 ‘먹은 오몽을 해야 한다’며 대식을 며느리에게 의존하지 않고 노부부가 살아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제주의 독특한 안 밖 거리 문화가 생긴 것이다.

오몽 거리는 주위를 살피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을게다. 농촌에서 살다 제주시 도심지에 아들 따라 온 할머니는 빈 공터에 우거진 잡초를 뽑아 터밭에 채소를 가꾸는 모습은 곧 근면성과 자립정신의 표징인 동시에 경건한 정신의 노동인 것이다. 즐거운 맘으로 움직이는 낙동(樂動)과 다동(多動)은 곧 장수요인이 돼 주었다.

오몽 할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며 동시에 행복 그 이상 가는 보약이 돼 주고 있다. 효성이 지극한 자식은 평소 오몽하던 부모님을 편히 모시고자 방안에 안락 의자와 침대를 마련해 놔 생활방식을 일시에 바꿔 드렸더니 반년만에 병상신세가 돼 불효 막심한 생각이 든다며 한탄하는 것을 봐 왔다.

무병장수를 열망하는 신(新)노인이 많아지고 있다. 항상 자신의 몸을 괴롭히자. 우리의 두 다리와 발에 활기가 넘쳐날 때 일감이 생글생글 우리 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요 세상은 피안에서 손짓하는 시늉만 하고 있다. 그래서 실버 봉사단이 일감을 찾아 나섰다.

몽케도 좋으니 오몽하자. 그러면 행복지수로 이어 나갈 것이다. 이런 말들을 곱씹어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의 그 안에 켜켜이 쌓여 있는지 모른다. 억세고 슬기롭게 살아온 선인들의 예지를 품고 오늘도 넓은 대지를 밟으며 활보하는 것처럼 심신에 좋은 것이 또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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