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 장 수 명

 지아는 방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가만히 천정을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불쑥 민호엄마 얼굴이 천정에 겹쳐졌다.
 ‘민호엄마 참, 예쁘다.’
 민호엄마를 가만히 떠올려 천정한가운데 올려 논 지아는 민호엄마 젖가슴에서 울리던 쿵쿵 달음박질치던 심장소리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치 민호엄마랑 함께 있는 듯 쿵쾅대는 심장소리는 지아의 방을 가득 채웠다. 그런 후, 이상한 일이 생겼다. 지아는 자꾸 눈물이 났다. 가슴도 콕 아픈 듯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다. 지아는 돌아누워 본다. 하지만 여전히 숨이 턱턱 막힌다.
 ‘보고 싶다…….’
 또 눈물이 났다.
 “휴우~.”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지아가 손을 가슴에 대고 숨을 후욱 뱉는다. 몇 번이나.
 ‘보고 싶다…….’
 자주, 때때로 그리움이 만들어졌다. 민호엄마를 보고 나서부터……. 아니, 민호엄마의 가슴에 안겨서 갑자기 터져 나온 설움을 느낀 뒤부터 지아는 가슴이 갑갑하면서 숨을 잘 쉴 수 없는 날이 많아졌다.

 막연한 그리움이 생겨버렸다. 민호엄마가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걷어 올려 주던 일, 그 앙증맞고 예쁜 핀을 똑딱 꼽아주던 일이 자꾸만 떠올려지고 또 떠올려졌다. 짧은 만남이었는데……. 도래질을 세차게 하며 지아는 혼잣말을 한다.
 “이제까지 한 번도 아무도 내게 그렇게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지아는 제게 제가 말을 걸며 제 위로를 했다. 아홉 살 깡마른 여자아이 지아는.
 ‘보고 싶다. 많이, 많이…….’
 막연하게 자꾸만 그립다. 민호엄마의 고운 얼굴이 아른거리고, 돌아가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진 속 엄마까지도 지아는 몹시 자꾸만 그리워졌다.
  ‘아, 아파.’
 지아는 가슴을 누른다. 콕콕 아파지기 시작한 가슴이 요즘은 정말 자주 아프기 시작했다.   지아는 이런 것을 어른들은 가슴이 아프다고 하나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비는 오지 않고 하늘이 무겁게 땅 가까이 내려 온 날이다.
 철둑길 아까시 나무를 살짝 걷어내고 본부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부스럭부스럭 손에 들고 간, 작은 비닐가방을 연다.
 ‘하얀 핀’
 지아는 바람의집에서만 아무도 몰래 머리에 핀을 꼽는다. 핀이 꽂힌 머리를 손으로 더듬어본다. 핀은 도드라진 느낌으로 손끝에 와 닿았다.
 ‘민호는 좋겠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철둑을 흔들며 기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지아는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렸다. 기차가 지나가면 땅이 울린다. 마치 땅이 살아서 몸을 흔드는 것 같아 참 좋다. 아카시 나뭇가지도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리고 코끝에 와 닿는 흙냄새는 여느 때보다 더 싱그럽게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마음이 자꾸만 지아 속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이런 기분은 안 들었는데, 웬일인지 자꾸만 슬픈 생각이 든다. 그리고 눈물이 자꾸만 쏟아져 나왔다.
 ‘그리움.’
 민호가 가고 몇 주일이 지났다. 아주 오랜만에 밤새 비가 내렸다. 여름장마가 유난히 비도 없이 짧게 끝나는가 싶었는데 어제 밤부터 주적주적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자 비바람으로 변해 지아네 마당에 흥건히 고였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기는 오늘이 처음인 것 같지?”
 지민이 언니가 말을 했다. 아무도 대답을 않는다. 네 자매는 처마에 걸터앉아서 물끄러미 떨어지는 낙수를 보고 있다.
 “비가 오니까 아버지가 보고 싶다.”
 지인 언니가 불쑥 말한다.
 “아버진 정말 언제 오실까?” 지은이도 아버지가 보고 싶은지 한 마디 했다. 하지만 지민이 언니는 그저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 볼뿐 별 말이 없었다. 아마 아버지가 보고 싶은 마음은 지민이 언니도 엄청 클 텐데…….
 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 생각이 별로 나지 않았다. 민호 엄마를 만나고 난 후부터 지아는 아버지보다 이상하게 민호 엄마가 더 많이 보고 싶고 그리웠다. 가슴이 싸한 그리움. 그 그리움은 지아의 숨을 턱턱 막았다. 그리고 가끔씩은 온 종일 민호엄마의 쿵쿵 뛰던 심장소리만 느껴져 눈물만 울컥울컥 쏟아지곤 했다.
 아홉 살 깡마른 여자아이 지아는 이런 마음을 언니들에게 들킬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며 지내고 있었다. 지아는 아홉 살이라는 나이에 맞지 않게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잠을 잘 자지도 못했고, 아니 잠자기가 싫어졌다. 그냥 오도카니 앉아서 멍하게 있는 것이 더 좋았다. 하지마 그런 지아의 변화를 언니들은 알지 못했다. 그저 좀 늦게 자나보다 했을 뿐이다.
 그칠 것 같지 않던 비가 멎었다.
 비가그치고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앞집 순이 할머니가 옥수수를 한 바구니 가지고 지아 집으로 왔다.
 “어떻게들 지내니?”
 네 자매는 모처럼 발걸음을 한 순이 할머니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래, 밥은 잘 먹고 있니?”
 할머니는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네.” 합창이라도 하듯이 대답을 한다. 할머니는 찬찬히 네 자매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아버지도 없고, 엄마도 없는 집에서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는 네 자매가 무척이나 기특했다.
 할머니 눈길이 지아에게 멈췄다. 지아와 순이할머니는 서로 눈길이 마주쳤다.
 “아이구, 지아야! 왜 이렇게 말랐어?”
 순이할머니 눈빛이 일렁였다. 지아의 이마를 짚는다. 순이할머니의 따뜻한 손이 이마에 닿는 순간, 지아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민호엄마가 흘러내린 지아의 머리카락을 걷어 올려 주던 생각이 와락 달려들었다. 지민이 언니와 눈이 마주친다. 언니는 의아하고 당황한 표정으로 지아를 바라봤다. 지아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몇 번 해보였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