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

 

소문대로 그 마을은 동백나무가 대단했다. 하늘을 볼때만큼 고개를 젖혀야 나무의 꼭대기가 보이는 그런 큰 나무들이 어깨를 걸고 이어져 제법 긴 동백나무길을 이루고 있었다.
“어떤 할머니가 이 마을에 시집오자마자 한라산에서 동백나무를 한 그루 가져다 심은 것이 씨가 퍼져 오늘날 이렇게 된 거라고 합니다.”
“할머니는 가셨어도 동백은 남았네요”. 
 “그 할머니가 진짜 동백아가씨네”
 하하하하, 동백나무길을 걸으며 우리는 웃었다. 동백나무 덕에 웃었으니 이 웃음꽃 또한  동백꽃이리라.
  동백나무길은 내 가슴에 긴 여운을 남겼다. 그건 얼마 전에 만난 서홍동 소나무들 때문이었다. 내 가슴에 처음 소나무를 심어 준 것은 젊은 나이에 시골로 이사 간 내 친구였다. 그가 사는 동네에 놀러갔을 때, 논 한 가운데 서 있는 소나무 두 그루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동네사람들은 그 나무를 부부송(松)이라고 부른다 했다.
 “한 그루가 있어도 멋있고 두 그루 있어도 멋있고 여러 그루 있어도 멋있는 나무가 바로 소나무야”
  아, 소나무란 그런 거구나. 그때부터 였다. 내가 소나무를 유심히 보기 시작한 것이.
 서홍동 소나무들을 만난 것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장소에서였다.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사 가지고 급히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흘낏 소나무가 보였다. 고개를 돌려 멈춰섰다. 소나무를 많이 보았지만 이건 얼짱몸짱에 완전 연예인소나무였다. 나는 바쁜 심부름도 잊고 한발 한발 소나무에 끌려갔다. 마침내 소나무 앞에 멈추는 순간, 헉!  너무 놀라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그건 붉은 용이었다. 굵고 유연한 몸통에 푸른 솔을 이고 하늘 저 높이 비상하고 있는 한 무리의 소나무들, 옹색한 곳에서도 그들이 뿜어내는 장엄함에 나는 입을 벌리고 한참을 서 있었다.

 다음날 어머니를 모시고 찾아갔다. 어머니도 ‘세상에’를 연발하시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셨다.
“어머니, 이걸 그려보시면 어때요? 사진을 찍어가서...”
 고개를 끄덕이실 줄 알았는데  양미간을 찌푸리시며 손사레를 치셨다.
“여백이 없어서 틀렸다, 관둬라”
말 끝에 한숨을 길게 이으셨다. 소나무의 귓불 바로 옆까지 밀어붙혀 지어진 높은 건물, 말  안하는 소나무에게는 일조권도 없는 것인가. 어머니와 나는 말없이 소나무들 사이를 걸어 차도로 나왔다. 길건너 초등학교에도 같은 무리의 소나무들이 보였다. 상상해 보았다. 길이 나기 전 이어진 소나무들, 건물없는 넉넉한 땅과 막힘없는 하늘 아래 함께 서 있는 충분한 여백 속의 소나무들, 그것이 지금 남아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품안에서 쉬며  기운을 얻어갈 것인가. 세월이 가면 갈수록 그 진가가 더해져 동네의 명소를 넘어 귀중한 관광자원으로 세계 자연유산으로 인정받으련만... 자연과 공존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행복이며 자연을 살리는 것이 곧 지속가능한 수입원이 된다는 것을 왜 계산하지 못하는 것일까.
 남원의 어느 카페에 갔다가 농장 창고를 개조하면서 자연을 그대로 잘 살린 것이 고마워서 주인에게 말을 건넸다.

“말도 마십시오. 저 나무 몇 그루 살리느라 얼마나 애 먹었는지 몰라요”
 사람들이 공사하기 편한 것만 생각해서 무조건 나무를 베어버리자고 한다는 것이다. 땅을 살 때 그 땅에 있는 나무도 산 것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이다. 나무는 인간보다 지구에 먼저 산 원주민이다. 나무가 산소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인간은 지구에서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오스레일리아는 자기 집 마당에서 자기가 키운 나무라 할지라도 베려면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한다. 하물며 자기가 심지도 가꾸지도 않은 나무를, 후손들이 더불어 살아야할 동반자인 나무를, 어찌 그리 쉽게 벨 수 있으며 그렇게 해도 무방하게 방치할 수 있는가.
 난산리에 놀러갔다가 마당에 숱이 풍성한 비자나무가 우뚝한 집을 보았다.  맘씨 좋은 주인은 비자열매를 따서 향을 맡아보게까지 해주었다.  
“이 비자나무가 기생충을 없애요. 나도 젊어서 비자나무로 촌충을 없앴어요”
비자나무 숲을 거닐기만 해도 온몸의 기생충이 다 없어진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가. 비자나무 뿐이랴. 모든 나무는 면허없는 전문의일 것이다. 어쩌면 메르스 전문의도 있을지 모른다. 땅바닥에 떨어진 덜익은 비자열매들이 아까워 한알 한알 주우면서 동백할머니를 생각했다.
 “어떻게 나무를 심을 생각을 하셨을까, 인생는 짧고 나무는 길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을까, 그 어린 나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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