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

중학교 2학년 시절, 나는 엉엉 울면서 집에 왔다. 가정시간에 수 놓는 솜씨가 없다고 선생님께 심하게 꾸중을 들었다.

"국어로 밥하고 수학으로 빨래할래? 여자는 손재주가 있어야 시집가서 사랑받는 거야. 이렇게 수도 하나 제대로 못놓은 여자를 누가 데려가겠냐?"

나에게는 거기에 죄목이 하나 더 붙었다. “입만 살아가지고...” 여자애가 말 잘하는 건 미덕이 아닌 시대였다.

언니들은 수도 놓고 뜨개질도 잘하는데 엄마는 왜 나만 이렇게 낳았냐고 엉뚱하게 조상탓을 하며 울었다. 내 미래가 암울한 것 같아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단호하셨다.

"까짓 수 못 놔도 된다. 열 가지 재주 가진 사람 밥 굶는다고 했l어. 너는 네가 잘 할 수 있는 걸로 돈 벌어서 이 세상에서 수를 젤 잘 놓는 사람이 내다 파는 거 사다가 쓰면 된다"
아이고,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그래, 그러면 되는 것을.

그 무렵 나는 포도를 좋아했는데 친척 어른들은 포도에 사족을 못쓰는 나를 보고 “너는 포도밭 하는 집으로 시집을 가야겠구나”라고 하시곤 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펄쩍 뛰셨다.

"그런 소리 마. 과수원집  며느리가 얼마나 힘든 지 몰라? 좋은 건 다 내다 팔아야지 먹어볼 수나 있어?  너는 네 집 앞의 가게에서 일등품 포도 사다먹으면 돼. 그러자면 돈 벌어야지. 뭐 해서 돈 벌까, 그거나 생각해"
이것이 내가 받은 경제교육이었다.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 선배는 외할머니에게서 경제교육을 받았다. 선배의 부모들이 딸을 대학에 보낼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할머니는 9살 어린 손녀에게 6년간 물질을 가르치셨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걸로 먹고 살 수 있으려니 생각도 하지 마라. 짐승들도 제가 낳은 새깨들은 제가 다 먹여 키운다."

앞날이 어떻게 될 지 모를 험난한 세월을 살아내면서 삶의 지혜를 터득한 노인은 세상에 난리가 나면 직장은 없어져도 바당의 먹을 것은 없애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자연 채취의 생계능력을 '장착'시켜 주신 것이다.

과연 제주에 와서 보니 해녀정신은 대단한 경제 교육이었다. 80~90이 되어도 현역 해녀로 물질을 하며 돈을 벌고 있었다. 해녀뿐이 아니었다. 제주 여성들 모두 대단한 독립정신의 소유자였다. 안거리 밖거리라 하여 늙어서도 자식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당신 손으로 먹고 싶은 것을 해먹는 자유로운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자유로운 삶을 살기위해서는 경제적 자립이 역시 필수였다.

그런데 제주에 살면서 여성들의 내막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나는 이 자립적인 여성들의 의식에 상당한 모순이 들어 있음을 보게 되었다. 전기세를 아끼려고 가로등 밑에서 마늘을 까는 할머니, 부실한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는 할머니, 그렇게 절약하는 이유는 오로지 돈모아 자식들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이건 조냥정신이 아니라 자신을 갉아먹는 자해행위이다. 그렇게 해서 아프고 병들면? 그럼 죽으면 돼지, 자식들에게는 절대 짐 안 될 꺼.

나는 옷장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사는 할머니를 알고 있다. 6·25전쟁통에 아들 하나와 피난 내려와 죽장사를 했던 할머니는 저녁이면 냄비밥을 지어 아들과 나눠 먹었다. 그리곤 아들을 내보내고 냄비에 물을 부어 누룽지를 불려 자신의 배를 불렸다.

"아들놈이 잠긴 방문을 막 두드리며 난리를 쳤지, 엄마 혼자 다 먹는다고 울고불고... 난 돌아앉아서 눈물로 그걸 목구멍에 넘겼어. 내가 살아야 그 놈을 고아원에 안 보낼 거 아냐? 에미가 무조건 살아야 자식의 삶이 있는 거야"

대학교수가 된 아들에게 서운한 일이 있으면 그 냄비를 바라본다고 했다. 그래 이제 너는 너의 인생을 살아라, 나는 나의 인생을 살마.

제주 창조설화의 주인공 설문대 할망은 정말  죽솥에 몸을 던졌을가?  자식들이 다음 날부터는 어떻게 끼니를 해결하라고? 설문대 할망을 그렇게 죽지 않았을 거다. 이제는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 내라고, 그만큼 해 먹였으면 이젠 너희들 손으로 해 먹으라고 슬그머니 몸을 감춘 것일 게다. 설문대 할망이라면, 물고기를 잡아주는 맹목적 모성이 아니라, 물고기 잡은 법을 터득하도록 기회를 주는 현명한 모성이라야 걸맞지 않는가.

나는 설문대 할망이 물장올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지금도 바다와 나무와 돌로 제주에 살아있다는 것을 믿는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우리에게 시킨 경제교육의 핵심은 남에게 의존하지 말라는, 늙어서도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라고, 자식들에게조차 매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자식사랑을 자해에 가까운 행위로 표현하는 어리석음을 권한 것이 아니었다.
설문대 할망이여! 이제 제대로 가르쳐주십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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