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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들에게 들려주는 6·25 전쟁이야기[강정마을촌로의 되돌아본 인생]윤세민/교육자
윤세민 | 승인 2015.07.01 09:16
   
 

6·25 전쟁 발발일이 다가오면 역전의 노병들은 손주들에게 참전 전공(戰功)담을 들려주고 있을게다. 손주들아 들어보라. 6·25전쟁은 65년이 지나도 나를 오랫동안 짓눌러온 악몽이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1950년 6월 25일 할아버지는 어디서 뭣을 하고 있었는지부터 말해보지.

대정초교 교사로 재직하던 그 날은 일요일이었다. 모슬포에는 일본군 대촌병사였던 건물에 국군이 주둔하고 있었지. 아침 무렵에 왠 사이렌이 울리더니 "비상사태이니 영외에 나와 있는 장병들은 즉시 원대 복귀하라" 군 짚차로 부터의 가두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 50년대는 요즘같이 통신매체가 다양한 세상이 아니라 전황을 모르고 그저 38선에서 자주 발생하는 교전상태로만 알고 있었다. 각 기관이 비상사태에 돌입했는데도 귀머거리 캄캄한 세상이라 저녁 무렵에야 비상소집연락이 와 학교에 나갔다.

경찰서 정보주임이 기관 순방 차 왔다가 북한군이 새벽 4시에 38도선을 넘어 침공, 북한군 선두부대가 임진강을 도하해 전면 남침해 왔다는 전황을 전해줘 그제야 알았지. 며칠이 지나니 방위장교 두 분 선생님이 소집 돼 출정(出征)하는 등 사회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북한군은 서울을 사흘 만에 점령하고 한 달 만에 대구 부산 근교까지 밀려왔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선 사람들은 제주 젊은이들이었다. 칠월에 들어 건장한 청년들로 선발된 해병대 3,4기생은 모슬포에서 염천 날씨에 구슬땀을 흘리며 단기교육을 마쳐 최전선으로 출정하지. 한때 정막 했던 모슬포 거리에는 병사(兵舍)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군가에 젊은이들은 의기가 충천돼 군 자원입대 문의가 쇄도 한 것은 제주 젊은이들이 애국충정을 표징(表徵)한 것이다.

9월 1일 개학이 되자 출근하고 보니 운동장에는 젊은이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소집영장도 없이 "젊은이들 모여라" 귀 소문만 듣고 안덕 대정 한림 지역에서 자원(自願)해서 온 분들이었다.

당시 제주 젊은이들은 4.3에 너무나 시달려 사기가 저하돼 풀죽고 있었다. 대한의 사나이로 태어나 의기양양하게 총대 한번 매어 보는 것이 큰 소원이었다. 그만큼 의기(義氣)가 죽어 있었다.

이 할아버니도 수업하다 운동장에 나가 그 대열에 끼어 모슬포 신병교육대에 입대했지. 제주시 서귀포 모슬포에 육군신병교육대가 신설됐다. 이때 부여받은 군번이 030이라. 역전의 노병들은 다른 것은 다 잊고 마는데 군번만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니. 그러므로 군번은 훈장과 다름없다.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 주한미군 부대에 근무하던 손주 윤종현씨(가운데).

제주의 젊은 청년, 학도 만 여명이 자원해 최전선으로 달려 나아가 낙동강 전선 사수, 인천상륙작전 서울수복, 백마고지, 도솔산… 수많은 격전지를 누비며 4.3에 부모 형제를 잃은 아픔을 잊고 응어리진 한(恨)은 전투력으로 기염을 토해 제주의 기백을 보였다. 흔히 제주를 우리나라의 1%로 통칭한다. 6·25전쟁 참전 용사 50%이상을 배출한 효자 섬임을 모르고 도세로만 비유하니 울컥해 질 때가 있다.

하던 일손 남겨두고 일시에 전장에 나갔으니 집안 살림 꼴이 어찌 되었을까 짐작해보라. 제대로 된 신병교육도 받지 못하고 한 두 달 만에 산지 부두를 떠나는 L.s.t 의 기약 없는 이별의 고동소리에 사라봉도 울적해지고 어머니들은 모두가 합장해 무운장구를 기원했다. 치열한 전쟁터로 보낸 부모님들은 하루도 단잠을 이루지 못하고 때로는 악몽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당시 집배원은 전사통지서가 든 배낭을 들고 나서면 왠지 발걸음도 무거워지더라고 이를 빗대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했다.

요즘 군에 가는 젊은이들을 보면 부럽다. 부러운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군에 보낸 부모들은 세월이 느리다고 푸념해 댄다. 모두가 복 받은 세대들이다. 게다가 병영문화도 달라졌다고 하니 얼마나 좋은가.

6·25전쟁을 교과서에서만 배운 세대들은 당시의 위급한 상황과 참상을 몰라도 너무나 모르고 있다. 역전의 노병들을 홀대랑 해도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에 못질이랑 그만 뒀으면 한다. 비록 영예의 무공훈장은 아니지만 "참전유공자의 집" 명패도 기리 전할 것 이다.

노구를 이끌고 기념식장에 모여든 참전용사들은 세월에 장사 없듯이 그 용맹한 기세는 다소 소진돼 가나 전쟁의 상혼과 실체를 체험한 그대로 우렁찬 전우가가 들려온다. 비록 군복무를 마친 손주들은 자유 수호를 위해 참전한 할아버지가 개선장군 마냥 자랑스럽다고 하니 그래도 다행이다.

"전쟁 잊는 국민에게 전쟁 온다" 이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다. 한번 깨져버린 사회는 두 번 다시 원상회복 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 풍요로운 제주는 선대들의 수난과 악몽을 슬기롭게 극복해 이뤄진 것이 아닌가. 과거에 비하면 오늘의 제주의 위상은 천양지간이다. 당당하게 나서자. 먼 훗날 당신은 그때 어디서 뭘 했느냐 물으면 떳떳하게 답하리라.

윤세민  sgp1996@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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