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촌로의 되돌아 본 인생]윤세민/교육자

갑자 생이면 갑자 생이지. 왠지 “묻지 말라” 갑자 생인가? 전후 세대들의 반문이다. 생소한 말이니 당연한 물음이다. 80대의 노 세대는 지금도 이명(耳鳴)과 다름없이 들려온다. 그리고 가슴에 못이 박힌 채 살아오셨다.

다 아문 상처 자국을 어루만지니 몸살이 난다. 그럴 만 한 이유가 있다. 아베 일본총리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 책임 없다”는 역사를 거스르는 ‘망언’으로 피해 할머니들의 뼈아픈 기억에 또 다시 상처를 줬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세상이 한동안 시끄러웠다. 듣자하니 귀에 거슬려 분통이 난다.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징병이란 미명으로 입대했던 노옹의 참혹한 인생 역정을 그냥 묻혀 버릴 수 없어 한 맺힌 절규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한다.

올해 92세 노옹들은 1924년 갑자년에 태어난 어르신들이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을 안고 살아오면서 청운의 꿈을 펼 무렵에 “징병 1기”의 비운을 맞은 세대들이다. 이때 이분들과 덥석 손을 잡으면 나이를 묻지 않아도 “나 묻지 말라 갑자 생 이우다” 겉으로는 영예(?)를 대변하는 듯이 의기 당당하게 들리지 마는 진정 민족의 공분(公憤)을 쏘아대는 한 맺힌 절규였다.

당대에는 유아 사망률이 놓아 걸음마를 피해야 내 자식 됐다고 그제서야 출생신고 하던 때라 태반이 서너살 초과 돼 있었다. 그래서인지 갑자 생은 비운과 울분의 한이 얼마나 서러우니 “묻지 말라”로 실토했을까.

당사자가 아니고는 아무도 모를 것 이다. 2차대전이 승승장구(?)하던 1943년 읍 면 소재지 초등학교에 청년 특별 연성소를 설치해 징병 1기생을 입소시켰다. 현역병으로 소집하기 위해 생업에 종사하면서 주 1회 오후에 밀집훈련과 황국 신민화 정신교육이 전부였다.

개인 장구나 피복류가 지급된 것도 아니다. 당시 생필품 구매는 배급제라 재생고무 신발도 아무 때나 신을 수 없을 정도로 궁핍했다. 전투모에 국민복 다리에는 일본군 특유의 각반 게트르를 둘렀다.

언제 어디로 갈는지 몰라 총총하고 있을 무렵 1945년 1월 소집영장이 내려졌다. 나라 잃은 민족이라 요즘 막말로 “끌려 간다”며 인사 나누었다. 환송이란 동네 벗들과 소주 한잔이 고작 일뿐 너무나 초조했다. 정드르에 주둔한 부대에 입소한 장정은 징병1기 “묻지 말라 갑자 생” 제주의 젊은이들 이었다.

필자가 만난 허(許)어른은 어승생에 주둔한 도리대 부대에 배치됐다. 어승생 오름 진지 굴 파기에 주야간 4부제로 악랄한 십장의 채찍질에 시달렸다. 수직 갱도가 관통돼 햇빛이 보이는 순간 “천황폐하 만세. 대 일본 만세”를 일제히 외쳤다. 지옥에서 광명의 세계로 승화한 기분이었다. 축제라 해서 팥밥에 돼지고기 특식이 전부였다.

8월 15일 낮쯤 됐을 때 이외의 작업중단 명령이 하달돼 굴 밖에 나왔을 때 종전소식이 삽시간에 돌아 이제 살았다 생각하니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귀향한 젊은이는 패잔병이 아니라 민족의 설움을 이겨낸 의기 당당한 무명의 용사였다.

조국광복의 기쁨도 잠시, 제주 4·3의 불운을 당했다. 기구한 운명을 지닌 세대들이었다. 인생도 세월 따라 많이 흘러 “묻지 말라” 갑자생도. 구전해 오던 사람들도 우리 곁에서 서서히 떠나가고 있다. 그래서 선인들의 자취를 기록해 두는 것은 우리 후세들과 영원히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그 동굴 파인 자국에는 민족의 한이 빗물이 되어 고이고 쉴 새 없이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당시 이런 고초를 겪어야만 했던 모든 인생선배들에게 연민과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나라 잃은 민족의 치욕은 역사로 후세에 대한 교훈으로 남는다. 그러나 한 사람의 비운은 가숨에 묻고 살다 세상을 떠나면 사라져 버리니 애절한 생각이 든다.

지난(至難)한 민초들의 삶을 가슴에 담아보자. 선대들이 든든한 바닥을 깔아 줬기에 자유와 풍토를 누리는 전후세대들… 앞만 봐 외쳐대니 불안한 마음이 치닫는다. 과거보다 좋아졌는데 무엇 때문에 깃발은 사방에서 펄럭이고 구호소리가 온 천지에 요란한가. 우리의 욕구는 한이 없다. 알만하다. 국가안보, 민생 경제 등 튼튼한 국가를 다지려는 “묻지 마라”의 외침인가. 내면의 목소리에 깊이 귀를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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