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떠나는 동화여행]장수명 / 동화작가

지아가 몸을 일으킨다. 블록 공장을 지나 아주 오랜만에 바람의집으로 가는 언니들에게 미안했다. 민호 엄마를 보고 싶어 하고 있으니 말이다.

 민호와 헤어지고 나서 지아는 혼자 바람의집에 있기가 싫었다.
 오랜만에 가 본 본부바람의집은 썰렁했다.
 밤새 내린 빗물이 블록과 벽돌을 흠뻑 적셔 놓았고, 아카시아 나뭇잎이 비바람에 시달려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다. 지아는 물이 흠뻑 젖은 바닥에 앉기가 싫어서 본부 주변을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도로 내려 왔다.

 '다 싫다, 싫어.'
 지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작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천천히 걷는다. 점심 때가 지나서 들어오는 지아를 보고 지민이 언니가 짜증을 낸다.

 "밥도 안 먹고 어딜 갔다가오는 거야?"
 지민이 언니가 화를 내자, 지아는 멈칫한다.
 "아니……."

 말끝을 흘리면서 서 있는 지아를 보고 지민이 언니는 짜증이 나는가 보다. 얼굴을 찡그리며 지아더러 밥 찾아 먹으라며 소릴 지른다.

 '밥 먹기 싫다.'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말을 삼킨다. 공연히 말을 해서 지민이 언니를 더 화나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지아는 부엌으로 얼른 달려 들어간다. 옥수수가 있었다. 순이 할머니가 가지고 온 옥수수를 언니가 삶아 놓은 모양이다. 지아는 옥수수 한 자루를 들고 한 입 베어 물어본다. 옥수수의 까칠한 맛이 혀 끝에 닿는다.
 '싫다.'
 옥수수를 내려놓고 공연히 서러운 생각에 눈물을 만들어 올린다. 주먹손으로 눈을 비비며 밥솥뚜껑을 열어 본다. 밥 한 그릇이 밥솥 안에 놓여 있었다. 언니가 퍼 놓은 밥을 보는 순간, 눈물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훅훅 올라와 지아의 숨을 막는다. 후다닥 부엌에서 뛰어나와 방으로 들어간다. 그런 지아의 모습이 지민이 언니 눈에 띄었나보다. 송곳같은 말끝이 지아 등뒤를 뚫고 가슴에 올라 앉는다.
 "정말, 너 요즘 왜 그래? 밥도 안 먹고. 쬐그만게 벌써부터 밖으로 돌기나 하고. 너 자꾸 그   러면 정말 가만 안 둬."
 아버지 계실 때처럼.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다.
 '언니.'

▲ 그림 / 김품창.

6. 비밀을 알다


 몸에 열이 났다. 방으로 들어 온 지아는 으슬으슬 한기가 든다.
 아래턱과 위턱이 서로 딱딱 부딪혔다. 왠지 있을 곳이 아닌데 있는 사람처럼 부담스러운 생각이 드는 가족들. 조금만 불편한 것 같으면 눈치가 보이고……. 서러운 생각에 지아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엉엉~!"
 이불을 뒤집어쓰고 운다. 서럽고 서운함은 점점 더 커졌다. 이불이 들썩거려졌다. 마음 놓고 울기도 어렵다. 지아는 어금니를 문다. 그렇게 울다가 지아는 잠이 들었다. 
 꿈을 꾼다.
 바람이 무섭게 불어 대는 꿈을 꾼다. 바람은 삽시간에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지아는 그런 바람을 타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은 불을 만들었다. 벌겋게 혀를 내밀면서 붉은 불길이 삽시간에 바람을 따라서 여기저기로 옮겨 붙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아의 치맛단을 태웠다.
 "아~, 안돼!"
 지아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어스름한 어둠이 내리는 건지, 아니면 새벽이 희뿌옇게 밝아 오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문밖은 어스름해져 있었다. 뒤척이면서 일어나려는데 몸이 너무나 무거웠다. 다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머리도 목도 모두 너무 아팠다. 몸살이 톡톡히 난 것 같았다.
 '정말, 이상한 꿈이야.'
 지아는 일어나 앉았다. 둘째 지인이 언니가 곁에서 자고 있었다. 주위가 깜깜해진 것을 보니 밤인 것 같다. 지아는 살며시 자리에서 나왔다. 종일 별로 먹은 게 없어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고, 갑자기 일어나서인지 현기증도 약하게 일었다.
 지아는 조심조심 까치발을 하고 부엌으로 간다. 그런데 아버지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아버지!'
 지아는 놀랍고, 반가웠다. 불 켜진 아버지 방을 아주 오랜만에 보자, 너무나 좋았다. 지아가 조심스레 아버지 방 앞으로 가자, 방안에서 두런두런 사람소리가 새어나왔다.
 "아버지, 언제 오실 건데요?"
 지민이 언니 목소가 문을 넘는다.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나보다. 지민이 언니에게 방해가 될까봐 지아는 가만가만 움직였다. 큰언니는 울고 있는가보다.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지아가 밥도 잘 안 먹고, 많이 말랐어요. 아버지."
 '언니!'
 늘, 무섭기만 한 큰언니가 지아 자신을 그렇게 걱정하고 있는지 몰랐다.
 "아버지, 지아도 이제 우리 동생이에요."
 지아는 멈칫 했다.
 '무슨 말일까? 이제 우리 동생.'
 뜻밖의 말이다.
 "……엄마가 낳았잖아요. 엄마에게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었을 거에요."
 지아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건,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 아이는 아니지만, 엄마가 낳았고, 아버지가 많이 사랑 했   잖아요."
 갑자기 심장이 몸 밖으로 튀온 듯 쿵쿵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동생이 아닐지도 모른다. 엄마가 낳았다.'
 지아는 지민이 언니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언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지민언니가 한 말을 되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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