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

 

"그분들이 제주항에 무사히 도착했다면 어르신들은 렌트카를 타고 식당에 가셨을 것이고 학생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관광에 나섰을 겁니다"

제주항 연안터미널 앞 공원, 보름달 아래 사람들이 하나 둘모여들어 세월호의 사람들을 기억했다. 한 올 한 올 엮은 노란색 리본이 세월호의 마지막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세월호의 목적지였던 제주항, 그들이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제주땅, 세월호 500일을 맞는 제주사람들의 마음은 뭍에 있는 사람들과는 사뭇 달랐다.

"우리는 그들이 오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그들의 혼백은 이미 제주항에 도착하여 제주를 자유롭게 여행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믿으시는 분?"

사람들의 손이 올라갔다. 그들의 손에 들린 종이컵 속의 촛불들도 덩달아 올라가며 흔들렸다.

"나의 사진 앞에 서 있는 그대, 제발 눈물을 멈춰요. 나는 그곳에 있지 않아요. 죽었다고 생각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보물섬학교 아이들의 노래가 촛불과 함께 제주항에 퍼져나갔다. 사람들이 함께 따라 불렀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잊지 않는다는 것, 기억한다는 것이 곧 살아있음 아니겠는가.

스크린에 한 명 두 명 학생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이름과 그들의 꿈과 그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말이 글씨가 되어 같이 나타났다.

강정마을에서 매일매일 세월호를 기억하며 불을 밝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영상이라고 했다. 아, 이렇게 매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이런 사람들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이지.

문득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일마다 시위를 하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떠올랐다. 피해자이면서도 숨죽이고 살아야했던 분들,  해방된 조국이 오히려 이들을 부끄러워하여 한이 더 깊어진 분들, 광복 70주년이라며 임시공휴일까지 만들면서도 이들의 피해와 희생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해방된 조국에서 이분들은, 1185번이 넘는 시위를 해 오고 계신다.

"일본은 우리가 죽기만 기다리며 저렇게 발뺌하며 시간을 끄는 거라구... 우리가 살아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1992년 1월 8일 첫 수요시위를 시작했다니 갓 태어난 아기가 23세 성년이 되는 세월을 버텨오신 것이다. 이 할머니들과 함께 해온 시민, 학생, 이렇게 끈질긴 풀뿌리들이 우리의 역사의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제주의 4.3은 또 어떤가. '속숨허라이'. 제 나라, 제 땅에서 맘놓고 말조차 할 수없이 살았던 제주도민들이 국가원수로부터 폭도라는 억울한 누명을 벗고, 원혼들의 시신을 햇빛 아래 모시기까지 환갑 가까운 세월이 흐르지 않았던가.

4.19와 5.18을 넘어 지금은 4.16세대(세월호 사건일)라고 한다. 세월호를 잊지 않고 '진실을 인양'하는 것이 역사적 과제가 된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40대로 보이는 여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분들의 생일을 기억해 줍시다. 석탄절, 성탄절, 부처님과 예수님도 태어나신 날을 기념하지 않습니까? 생일은 사람들마다 다르니까 더 많은 날을 기억하게 되기도 하구요.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는 가장 가슴 아픈 날이니 우리가 자식대신 편지를 보내드리는 건 어떨까요?"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종이를 내밀었다. 말하기가 수줍은 모양이었다.

"노란리본 대신 노란 나비는 어떨까요. 리본은 묶는 거지만 나비는 자유롭잖아요"

나도 생각이 하나 있다. 이들의 모습을 만들어 올레길 곳곳에, 오름이나 한라산이나 해안가 어디에나 돌하르방처럼 세워놓고 같이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는 건 어떨까? 제주에는 예술가도 많으니 맘있는 사람들이 한명씩 만들어 내면 쉽지 않을까(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의 희생을 기리고 전쟁범죄 해결을 위해  '소녀상(少女像)'이 미국에까지 세워지고 있다).

나는 천개의 바람, 천개의 바람이 되었죠
가을에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겨울엔 다이아몬드 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 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세월호 대신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제주섬에 온 그들이 제주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 제주사람의 특별한 사명, 특별한 사랑이 아닐까(이 일에 마음이 있으신 분을 기다립니다. opqw1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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