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충근 시민기자의 식물이야기

오래전 일입니다. 한 모임에 참석했다가 혹시 이야기를 건질 수 있을까, 불쑥 동백나무를 화제 삼았습니다. 대화를 스리슬쩍 바꾼 내 뻔뻔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H형은 서귀포에 사는 사람이 받으러 왔는데, 동백꽃을 꺾어서 판 적이 있다고 하데요, 내가 의심스러워 자꾸 묻자 곁에 있던 마을회장이, 가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일이 분명 있었다고 거들었습니다. 두 분은 올레를 이웃한, 같은 동네에 살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동네는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많은 곳입니다.

이 말을 들은 후부터 동백꽃 쓰임이 궁금했습니다. 어디에 썼을까 궁리도 하고, 겨를 있을 때마다 수소문해도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거의 잊을 만한 무렵 제주시에 주소를 둔, 나와는 또래인, 어떤 분과 꽃 이야기를 하다 자기 부모님 결혼식 때 쓰인 부케가 동백꽃으로 만든 것이었다고 알려줬습니다.

아, 동백꽃부케라니, 내 속 어디선가 무엇이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플로렌스 헤들스톤 크레인이 쓴 '한국의 들꽃과 전설'에 결혼식 날 예식상 위를 장식한 동백나무 가지는 장수와 영원불멸을 뜻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저는 이글을 시들하게 봤었는데요. 동백꽃부케로 확 살아났습니다. 예식상 위에 올랐던 동백 가지가 꽃이 되어 부케로 된 것입니다.

서귀포에서도 동백꽃으로 만든 부케가 있었는지 궁금해 많은 사람에게 묻고 다녔습니다.
"결혼식을 신식으로 헙디과 구식으로 헙디과?"
신식으로 한 분들에게는 또 물었습니다. "부케 헙디과? 안 헙디과?"
"부케가 뭐니?" 이러는 분이 많았습니다. 저는 혹시 부케를 직접 만든 신랑을 만날까 기대했는데 당신의 결혼식에 신부가 부케를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조차 기억 못 하는 거였습니다.

동백꽃으로 축하 화환도 만들었습니다.
동백나무 이야기 첫 회가 나간 후 아이디 oys1671를 쓰시는 분께서 댓글을 써주셨습니다.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결혼식 집 마당 혼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 돔박꽃 화환,.. 짚으로 커다랗게 둥글게 두 개 만들어서 돔박꽃 꽂고 화환 가운데 구멍에는 축 결혼 우인들이 만들고, 글씨는 동네 최고 명필이,... "

▲ 사진 양쪽에 동백꽃으로 만든 축하 화환이 놓여있다.

또 조화도 만들었습니다. 어른들에게 동백꽃 부케의 존재를 조르며 다니다 우연히 조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참 신기하데요. 지금 아니면 영원히 못 들을 것 같아 염치 불구 펜과 종이를 내밀었습니다. 그분은 솜씨 좋게 쓱쓱 그리며 그 당시 상황을 전해 주셨습니다.

"옛날 동네 상이 나면 친목들은 우선 조화(弔花)를 만들었지. 짚과 대나무로 틀을 만들고 창호지를 바른 다음 동백꽃을 꽂았는데 물론 조화(造花), 만든 꽃도 같이 사용했어. 그리고 가운데는 친목 이름을 떡 하니 썼고, 요새 옛날식 조화가 상가에 나가면 눈에 확 띌 텐데 말이주. 성의도 있어 보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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