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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에 대한 인류 투쟁의 역사[죽음학 칼럼①]정현채/서울의대 내과
서귀포신문 | 승인 2015.11.20 10:50
   
 

연재순서

① 질병에 대한 인류 투쟁의 역사
②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 - 사망 원인 1위인 암에 대하여
③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죽음의 여러 모습 (1)
④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죽음의 여러 모습 (2)
⑤ 의료현장에서 경험하는 죽음의 여러 모습 (1)
⑥ 의료현장에서 경험하는 죽음의 여러 모습 (2)
⑦ 의학연구로서의 근사체험 (1)
⑧ 의학연구로서의 근사체험 (2)
⑨ 현대인이 알아야 할 삶의 종말체험 (deathbed vision)
⑩ 인류에게 죽음이 사라지면 축복일까 재앙일까?
⑪ 자살에 관한 담론 (1) (자살을 하면 왜 안 되는가?)
⑫ 자살에 관한 담론 (2) (자살을 하면 왜 안 되는가?)

인간은 고대로부터 전염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으로 고통을 받아 왔으며, 한편 이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감염성 질병이 세균에 의해 발생하고 세균이 질병을 퍼뜨린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8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이다. 그 전까지 수천 년 동안은 치명적인 감염성 질환이 창궐하더라도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신이나 조상의 노여움으로 여기고는 크나큰 두려움에 떨곤 했다. 또한 이로 인한 사망이 워낙 많아서, 100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의 평균 수명이 40세 정도에 불과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신석기 시대의 두개골 상부에는 커다랗고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추측이 있다. 누군가가 이 두개골의 주인을 살해할 목적으로 구멍을 뚫었을 가능성, 또는 주술적인 목적이나 치료 목적으로 뚫었을 가능성이다. 그런데 두개골의 구멍 주위를 현미경으로 세밀하게 관찰해 보면 새로운 골세포가 생겨났던 흔적이 관찰되므로, 두개골의 주인이 구멍이 뚫린 직후 사망하지 않고 상당기간 생존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생각해 보면, 살해 목적보다는 주술적인 이유에서거나 치료 목적으로 구멍을 뚫었다고 짐작된다. 중남미 페루에서 발견된 두개골에도 측면에 예리하게 동그란 구멍이 뚫린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고대 페루인들은 정신병을 악령이 머릿속에 들어가 생기는 것으로 봤기 때문에,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 악령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게 해주면 정신병이 나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마취기술이 없었으므로 환자의 사지를 꼼짝 못하게 하고 두개골에 구멍을 뚫었을 것이다.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이후 생명이 유지되었을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두개골의 구멍이 매우 정교하게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고대 페루인들의 외과 수술 기술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은 짐작할 수 있다.

1562년 화가 피터 브뢰헐이 그린 죽음의 승리에는 1347년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흑사병의 참상이 잘 그려져 있다. 그림 곳곳에는 해골의 모습을 한 죽음이 인간을 괴롭히고 있고 시체를 태우는 연기가 하늘을 치솟고 있다. 흑사병으로 인해 당시  유럽  인구의  1/4 혹은 7500만 명이 사망했다고 하는데, 20세기 스웨덴의 명감독이었던 잉마르 베리만의 작품 제7의 봉인에는 흑사병이 창궐했던 당시의 상황이 잘 묘사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흑사병을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벌로 생각하여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고, 교회 성직자들은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으므로 회개하라며 사람들을 협박하고 종용한다.

   
▲ 피터 브뢰헐 作 죽음의 승리(1562년).

이러한 암흑기를 벗어나 1800년대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현대의학이 시작된다. 1858년에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전신마취가 시작되는데 이전까지는 팔다리를 절단하는 큰 수술을 하더라도 마취법이 없어서 환자는 맨 정신으로 수술에 따른 큰 고통을 참아내야만 했다. 썩어가는 팔다리를 그냥 두면 결국 죽게 되므로 절단이 불가피했는데, 마취가 없었으므로 다음과 같은 상황도 벌어졌다. 당시 병원의 수술실은 건물의 맨 위층에 위치했고 수술의사는 귀마개를 했다.
이는 환자의 비명소리가 건물 밖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최소화하고, 의사는 환자의 비명소리를 안 들음으로써 수술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일부 자료에 의하면 마취가 가능한 또 다른 화학물질인 에테르가 발견된 것은 1500년경이었다고 하는데, 그때 바로 활용되지 못했던 것은 종교계의 반대 때문이었다고 한다. 인간의 고통은 신의 섭리이므로 사람은 이를 참아내야 한다는 어리석은 관념 때문에, 300년 동안 인간은 팔다리를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을 때도 맨 정신으로 그 엄청난 고통을 견뎌내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의학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다. 100년 전의 의학 수준이 현재에 비하면 유치한 수준이었을지라도, 지구상에서 먼저 살다 간 선조들의 노력과 수많은 시행착오의 결과로 현재의 의학 수준이 이루어졌음을 감안한다면 크게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의학은 인간의 몸을 불사의 몸으로 바꾸어 주는것 은 아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오랫동안 믿어 왔던 도그마가 신진 학자에 의해 깨지면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져 질병 치료가 새로운 국면을 맞기도 한다.

1980년대 초 호주의 내과 의사인 마샬과 병리과 의사인 워렌에 의해서 사람의 위 속에 헬리코박터라는 세균이 살고 있음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그 당시의 상식은 사람의 위 속에는 아주 강한 염산인 위산이 끊임없이 샘솟기 때문에 세균 따위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발견 당시만 하더라도 이 사실을 믿지 않는 과학자가 많았다. 심지어 이들 두 의사가 자신들이 발견한 새로운 사실을 발표하려고 호주 국내학회지에 초록을 제출하자 이런 황당한 내용은 학회에서 발표할 수 없다며 가차 없이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호주 국내학회에서는 발표할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친 놈 소리를 듣던 이 두 의사는 20여 년 후 이 발견으로 2005년 노벨 생리 의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최신 치료법으로 여겨지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버려지기도 하고, 반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소외시켰던 이론도 획기적인 발견이라며 새롭게 주목받기도 한다. 이제 우리나라의 의학도 특정 분야는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와 있다. 우리가 앞서 갈 수 있는 이러한 의학 분야에 관심을 갖고 긴 안목으로 집중 투자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서귀포신문  sgp199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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