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

"아이구, 너네 동네 이제 부자 됐쪄.  땅값이 막 오르지 않았시냐?"
"우리 동네는 완전 대박났다. 공항에는 들어가지 않으면서 인근이라 부대시설이 다 우리 동네에 들어설 꺼"

지난 주 제주도는 섬전체가 부동산업체 같았다. 아침 일찍 신제주의 어느 목욕탕에 갔었는데 돈 내는 곳에서부터 탈의실, 탕안, 사우나실, 목욕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내내 신공항과 땅값이야기가 틀어놓은 수돗물처럼 쉼없이 좔좔 흘렀다.

"이제 자식들이 촌에 사는 부모한테 자주 찾아오고 잘 하겠구나"
"재산싸움이나 안 날지 몰라"
"그렇지만 농사짓던 사람들에게는 평생 일거리가 사라지는 거잖아"

오래 전 김해에 갔을 때 일이 생각났다. 김해읍내에 들어서자 좁은 길에 어찌나 차가 많은지 강연시간에 지각할까봐 애가 탔다. 대낮에 시골동네에 웬 차가 이리 많은가? 궁금했다. 강연을 마치고 식사자리에서 그 이유를 묻자 국어교사라는 분이 한숨을 쉬면서 말해주었다.

김해에 공항이 생기면서 넓은 농토가 공항부지로 수용되었다. 평생 농사만 짓던 사람들에게 억대의 돈이 주어졌다. 할 일이 없어진 사람들이 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돈쓰는 일, 돈 쓰러 다니는 일. 돈을 본 자식들이 부모 졸라서 차 한 대씩 뽑아 부산시내로 놀러다니는 게 새 풍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제자들 중에도 꽤 괜찮은 녀석들이 있었는데 갑자기 맞은 돈벼락에 사람이 변했다며 다시 한숨을 쉬었다.

조용하던 제주의 동쪽 마을이 이렇게 부동산 바람을 타고 있을 때 반가운 전화가 왔다.

"우리 삐삐가 드디어 출산을 했어"
"어머, 순산 했어요?"
"응, 1남 3녀야. 얼마나 이쁜지 말도 못해. 이제 보러와도 돼"

어린 강생이들을 보러 간 날은 마침 그 마을의 공항수용과 관련 되어 도지사와 대화가 있는 날이었다. 한적하던 돌담길에 자동차들이 줄지어 서있고 마을회관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서 밖에 서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한 마을이 이러할 때 다른 마을들은 어떠할 것이며, 그 마을들이 모였을 때는 어떨 것인가? 

강아지들은 정말 예뻤다. 살이 토실토실 오른 데다 에미가 부지런히 핥아댄다더니 털에 티하나 없이 우아하도록 깨끗했다.

"마을은 뒤숭숭한데 요것들을 보고 있으면 금방 웃음이 나고 행복해져"

정말 그랬다. 강생이를 보러 오긴 했지만 공항수용으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마을이라고 해서 뭐라고 위로를 해야할 지 몰랐는데 강생이들 재롱을 보느라고 웃기만 하다가 돌아왔다. 
4마리 강아지가 한데 어울려 뒹굴던 모습이 돌담길을 지나오는 내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지금 이 마을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저 강생이들이 아닐가?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 왜 그다지 행복하지 못할까?"

돈 때문이다. 돈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인생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가 걱정 때문이라면 그 걱정의 대부분이 돈걱정일 것이다. 먹고사는데 어려움이 없어도 남이 나보다 돈이 더 많아지면 불안해지고 속상해지는 '상대적 박탈감' 역시 돈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된다.

"부자되세요"

어느 카드회사가 20년 전에 퍼뜨린 이 인사가 전국을 강타하면서 이제는 한술 더 떠서"대박나세요"로 바뀌어 온국민이 '돈'으로 인사를 나누고 '돈'이 덕담이 되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돈은 생활의 기본수단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돈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삶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사라지는 돌담, 사라지는 감귤나무, 헤어져야 하는 이웃 삼촌들, 무엇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과 삶의 추억이 서린 고향이 없어진다는 것에 대한 애도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공항 공사는 3년 후에나 시작된다고 한다. 남은 3년, 생길 돈보다  우리가 잃어버릴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하면서 그것들을 우리 마음 속에 옮겨심는 작업을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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