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채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연재순서

① 질병에 대한 인류 투쟁의 역사
②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 - 사망 원인 1위인 암에 대하여
③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죽음의 여러 모습 (1)
④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죽음의 여러 모습 (2)
⑤ 의료현장에서 경험하는 죽음의 여러 모습 (1)
⑥ 의료현장에서 경험하는 죽음의 여러 모습 (2)
⑦ 의학연구로서의 근사체험 (1)
⑧ 의학연구로서의 근사체험 (2)
⑨ 현대인이 알아야 할 삶의 종말체험 (deathbed vision)
⑩ 인류에게 죽음이 사라지면 축복일까 재앙일까?
⑪ 자살에 관한 담론 (1) (자살을 하면 왜 안 되는가?)
⑫ 자살에 관한 담론 (2) (자살을 하면 왜 안 되는가?)

우리나라 통계청의 2013년도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의 사망원인 1위는 암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많이 발생하는 암은 위암이다. 암은 우리 몸을 이루는 정상 세포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하여 비정상적인 세포로 변형된 상태이다. 세포가 정상적인 경우에는 우리 몸의 조절 기전에 의하여 세포의 숫자나 형태 등이 일정하게 유지되나, 어떤 원인으로 인하여 암세포로 변하면 이런 조절 기전이 말을 듣지 않게 된다. 1973년 9월 11일 칠레에서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대통령궁으로 난입한 군인들에 의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살해되고 오랫동안 군부독재의 암흑기에 있게 되었는데, 암은 마치 쿠데타가 우리 몸에 일어난 상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상세포에서 암세포로 변형되기까지는 몇 년의 세월이 필요하며, 우리 몸을 위협하는 암 덩어리로 변하는 데는 또다시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암은 고약하게도 자꾸 크기가 커지며, 다른 장기인 폐, 간 등 온 몸에 퍼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전이” 라고 한다. 암이 초기에 발견되어 전이가 일어나지 않은 경우에는 수술로써 대부분 완치를 기대할 수 있으나, 전이가 발견되면 완치를 위한 수술은 불가능한 상태라고 판단하게 된다. 왜냐하면, 위암이 발견되었고 이후의 검사에서 간으로도 위암세포가 전이된 것이 발견되었다면, 그것은 간에만 전이된 것이 아니라 우리 몸 전체에 퍼진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이는 우리 몸속에 있는 혈관이나 림프조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고대 중국인들은 적의 침입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만리장성을 축조했겠지만, 외적이 이 만리장성에 일단 침입하고 나면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중국 전역을 퍼져나갔을 것이다. 우리 몸의 혈관이나 림프조직도 이와 같은 이치다. 우리 몸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작전 같은 것이 혈관 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일단 암세포가 혈관이나 림프조직으로 침투해 버리면 이를 통해서 오히려 더 쉽게 우리 몸 전체로 퍼지게 된다. 암이 일단 전이되고 나면 그곳에서 걷잡을 수 없게 커지면서 장기가 원래 수행하던 정상적인 기능을 못하도록 방해한다. 간으로 전이된 경우에는 황달, 복수 등이 나타나게 되고, 척추로 전이된 경우에는 신경마비 등의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잔여수명은 다 다르지만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위암의 경우, 증상이 전혀 없는 경우부터, 복통, 피를 토하거나, 검은 변을 보거나, 빈혈, 그리고 드물게는 신경마비 등의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대체로 증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을 때는 치료하기에 너무 늦어 있는 경우가 많다. 암이 생긴 초기부터 증상이 나타난다면 병원을 찾게 될 것이고, 검사로써 암이 발견돼 수술을 받아 암의 완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암뿐만 아니라 모든 암은 완치할 수 있는 시기인 발생 초기에는 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발견되기가 어렵고, 증상이 심해져 병원을 찾을 때는 이미 온몸으로 퍼져 손을 쓰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망원인 1위를 암이 차지하게 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항암화학요법은 암 제거 수술을 했더라도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서 시행되며, 또는 다른 장기로의 전이가 발견되었을 때 암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 시행하게 된다. 항암치료제는 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된 적이 있는 독가스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겨자가스 살포로 사망한 군인들을 부검한 결과 우리 몸에서 백혈구와 적혈구를 만들어 내는 골수가 광범위하게 파괴된 것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이 발견에 착안해 골수를 침범하는 암을 치료하기 위해 겨자가스의 화학 구조를 변경해 ‘질소 머스터드(nitrogen mustard)’라는 화학물질을 만들어 냈다. 1942년 12월 림프종 환자에게 이 화학물질을 투여한 것이 항암화학요법의 효시이다. 이후로 여러 가지 수많은 항암제들이 개발되었는데, 항암요법 치료 때 나타나는 오심, 구토, 탈모, 골수억제 등의 이상 반응은 항암제의 이러한 개발역사를 알면 이해될 수 있다.

  이렇듯 암은 많은 고통과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망 원인 9위인 교통사고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게 되는 것과는 달리, 수개월 내지 수년에 걸쳐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말기 암 환자들이 임종이 가까워져 의식이 없어지고 상태가 불안정해지면 중환자실에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중환자실에서는 전문화된 치료를 위하여 가족들의 면회를 제한하므로 정든 가족과 수시로 만날 수 없고, 인공호흡기를 연결하기 위하여 구멍을 뚫는 기관지절개술을 받은 경우에는 말을 할 수도 없게 된다. 건강 검진을 위해 정맥에서 잠깐 피를 뽑는 것도 매우 따끔하고 아플 수 있는데, 정맥보다 더 깊숙이 위치한 동맥에서 피를 뽑아 검사하는 일도 수시로 행해진다. 또 심장박동이나 호흡수 측정 기계장치에서 나오는 삑삑거리는 소음, 가래를 뽑아내는 시끄러운 소리, 옆 환자가 내는 신음소리 등으로, 품위 있는 죽음과는 아주 거리가 먼 외로운 죽음을 맞게 된다. 수십 년간 같이 살아 온 가족들과는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생전 처음 보는 의료진에 둘러싸인 채 말이다.

  생태건축으로 잘 알려진 故 정기용 건축가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촬영된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죽음관을 얘기한다. “나이가 들고 늙을수록 조금은 철학 공부를 해야 되는 것 같다. 오히려 철학적이어야 된다. 죽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옛것을 돌아보고 회상하고 추억하고 눈물을 흘리고 그런 것이 아니라, 산다는 게 무엇인지, 왜 사는지, 세상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가족은 무엇인지, 친구는 무엇인지, 건축은 무엇인지, 도시는 무엇인지 하는 근원적인 문제들을 다시 곱씹어 보고 생각하고 그러면서 좀 성숙한 다음에 죽는 게 좋겠다. 한마디로 위엄이 있어야 되겠다. 밝은 눈빛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죽음과 마주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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