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학 칼럼⑤]정현채/서울의대 내과

연재순서

① 질병에 대한 인류 투쟁의 역사
②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 - 사망 원인 1위인 암에 대하여
③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죽음의 여러 모습 (1)
④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죽음의 여러 모습 (2)
⑤ 의료현장에서 경험하는 죽음의 여러 모습 (1)
⑥ 의료현장에서 경험하는 죽음의 여러 모습 (2)
⑦ 의학연구로서의 근사체험 (1)
⑧ 의학연구로서의 근사체험 (2)
⑨ 현대인이 알아야 할 삶의 종말체험 (deathbed vision)
⑩ 인류에게 죽음이 사라지면 축복일까 재앙일까?
⑪ 자살에 관한 담론 (1) (자살을 하면 왜 안 되는가?)
⑫ 자살에 관한 담론 (2) (자살을 하면 왜 안 되는가?)

영국 화가 필즈가 1891년에 발표한 그림 의사는 런던의 테이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귀족이었던 헨리 테이트 경은 필즈의 재능이 뛰어남을 알아보고는, 화가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을 그려 달라고 부탁한다. 필즈는 몇 해 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자기 아들을 떠올리면서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림의 중앙에는 고열과 호흡곤란으로 신음하는 서너 살배기 사내아이가 누워 있고 옆에는 왕진 온 의사가 턱을 괴고 바라보고 있다. 뒤에 서 있는 화가 옆에는 탁자에 머리를 파묻고 흐느끼는 아이의 엄마가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만 해도, 현대의학에서 사용되는 산소치료, 항생제, 인공호흡기 같은 것이 없었던 시절이어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의료적으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절망스러운 상황이지만 아픈 아이 옆에서 묵묵히 임종의 자리를 지켜주고 있던 의사를 떠올리며 아마도 화가는 일생의 감동을 느꼈던 모양이다.
 

이러했던 의료는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발생시킨 외상과 질병들을 치료하면서  크게 향상된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6.25 전쟁에서는 유행성 출혈열이 번지면서 많은 군인들이 사망했고, 몸의 노폐물을 걸러내는 콩팥이 갑자기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신부전증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치료법도 이때 큰 진전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이후에 있었던 베트남 전쟁에서는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하여 사망하는 급성호흡부전증에 대한 치료 기술이 크게 발달하게 된다.
 

물에 빠지거나 교통사고로 심장이 멎고 숨을 안 쉬어 갑자기 사망에 이른 사람을 살려내는 응급치료법인 심폐소생술도 그 역사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50여 년 전만 해도, 심장이 멎은 환자 옆에 다행히 외과의사가 있으면 칼로 가슴을 째고 심장을 손으로 꺼내 직접 마사지를 하는 방식이었다. 셔윈 B 뉴랜드라는 은퇴한 미국의 외과의사가 쓴 책에는 이러한 심폐소생술이 잘 묘사되어 있다. 저자가 의대 본과 3학년이었던 1960년대 어느 날, 병원 실습을 하던 중 병실에 입원해 있던 환자가 심장과 호흡이 멎었는데, 공교롭게 주위에 의료진이 아무도 없자 의과대학생이던 저자가 병실에 비치되어 있던 외과용 칼로 환자의 가슴을 절개하고 심장을 꺼내 손으로 마사지를 했으나 살릴 수 없었고 온 병실이 피투성이가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설령 일시적으로 소생했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세균감염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의술은 이처럼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해 온 것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디서 맞이하는가도 크게 달라졌는데,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집이 아닌 병원,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한 변화는 생명연장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병원 의존도가 높아진 것 외에도 죽음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 
 

이 삼 십 년 전만 하더라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죽음을 손자와 손녀가 다 지켜보고, 세상을 떠나는 가족의 마지막 여정을 집에서 가족들이 보살폈다. 즉 죽음이 일상사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집 밖에서 객사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어서, 말기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임종이 임박하면, 인공적으로 호흡을 하게 해주는 고무백 앰부장치를 한 채 퇴원하게 한 후 집에 도착하면 장치를 떼고 임종을 맞게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 과학이 발달하고 유물론이 우세해짐에 따라 죽음을 터부시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의료진도 죽음을 삶의 한 과정이나 마무리와 정리의 단계로 보지 않고, 의료의 패배나 실패로 보는 경향이 짙어지게 되었다. 장례 풍속 역시 빠른 속도로 바뀌어서, 이제는 장례를 집에서 지내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고, 대부분이 병원 영안실이나 전문장례식장을 이용하는 실정이다.
 

사망에 이르게 한 원인이 무엇이었든, 임종에 임박한 사람은 생명력이 다하여 음식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럼에도 기운을 차리게 한다며 억지로 음식을 먹게 할 경우, 흡인성 폐렴이나 부종 등이 생겨 고통만이 늘어날 뿐이다. 임종에 가까워지면, 소변 배출량이 감소하고 호흡이 변화된다. 가래 끓는 소리가 나며, 혈액 순환 장애로 푸른색과 자주색  반점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 떨림, 진전이나 발작, 근육경련이나 정신 착란 등의 여러 증상을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진 것과 같은 혼수상태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 상태에서는 피부에 강한 자극을 줘도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형병원에서는 수 시간 뒤 임종할 것으로 예측되는 환자가 발작 증세를 보일 경우에도 뇌 MRI 같은 정밀 검사를 한다거나 간질을 억제하는 주사약을 투여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병원에서 그런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치료를 해야 할 의무가 병원에는 있고, 또 그러지 않을 경우 살인방조죄로 고소를 당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종이 임박했을 때 나타나는 신체 현상들을 가족들이 사전에 알고 있다면, 회복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검사를 하거나 약을 투여하는 대신 고통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의료적인 조치를 받게 함으로써 편안한 임종을 맞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