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충근의 [식물이야기]

오늘에야 맏물 동백꽃을 보았습니다. 예년보다 늦어 웬일인가 했더랬지요. 약속은 없었지만, 필 것은 제때 딱딱 피어야 속상하지 않습니다. 동백나무 꽃을 기다리는 여러 생명, 모두 같은 마음일 겁니다.

동백꽃이 있어야 더 좋은 생명이 많습니다. 꿀벌, 비치, 동박생이가 우선 생각납니다. 떨어진 동백꽃잎만을 먹고 사는 동백균핵버섯도 있습니다.

꿀벌, 비치, 동박생이가 동백꽃에서 먹이를 찾는 건 자연의 일상입니다. 우선 꿀할아버지의 말씀을 옮깁니다. 꿀할아버지는 제가 붙인 칭호인데  벌을 길러 꿀을 채취하는 일을 한평생 하셨습니다. 꿀할아버지께 듣는 꽃과 꿀 그리고 벌 이야기는 교과서보다 높습니다.

“꽃 어신 저슬에 돔박고장은 아주 고마운 거주. 그런데 이상한 건 벌이 돔박꿀을 먹으민 설사난다. 약한 벌은 겨울에 나갈 수 없어 벌통에 고만이 이쭈만 쎈 벌은 나가는데 설사를 찍찍 허면서도 돔박꿀을 물어 오긴 헌다. 돔박고장 뿐인 때니 다른 원인은 어시난 이상한 일이여. 테레비에 보믄 벌이 댕겨사 씨가 생긴댄 허는디 참으로 이상한 일 아니냐? 벌을 오지 못 허게 허는 거 달만 말이여. 동박고장에는 화분은 한디 꿀은 얼마 엇나.”

“벌을 질루다보민 하간 일이 생기는디 한번은 비취가 벌을 막 잡아 먹어부는거라. 벌통 인근에 앉아도라서 통통하게 배 분 놈만 골라잡아 먹어부난 약 하영 올라라. 옛날, 비취들은 짓 놀당 어두구민 대왓에 담아졍 잤주, 비취 말고 다른 생이도 막 하긴 해서. 왕대왓이 비취 소리로 고드갔주마. 가메기도 하곡.”

꿀하르방은 비취라 발음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비치는 우리가 오래전부터 쓰는 말입니다. 우연히 기태완, 꽃 들여다보다를 읽었는데, 비취(翡翠)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여러 사례를 들며 비취를 동박새라 단정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적어도 일부는, 비취를 비치, 즉 직박구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는 비치가 비취(翡翠)어야 앞뒤가 맞습니다.

冬柏花開翡翠啼 동백꽃 피니 동박새 울고
竹林東畔小溪西 대숲 동쪽 작은 개울 서쪽이네
(기태완, 꽃 들여다보다 중에서)

비치와 동백은 너도 좋고 나도 좋고의 관계입니다. 비치는 동백의 단물을 먹고 그 과정에서 동백의 꽃가루를 옮겨 주게 되는 거죠. 꽃가루를 옮겨주기 위해 단물을 먹는 것은 아닙니다. 동박생이와 꿀벌도 마찬가지, 서로 자기 일을 하면서 도움을 주고받습니다.

겨울에 피어 동백(冬柏)이 아니랍니다. 동백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冬柏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뿐이라네요. 백(柏)은 측백나무를 뜻합니다.
(동백꽃에 카페인 성분이 있어 꿀벌을 중독시킨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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