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학 칼럼⑦]정현채/서울의대 내과

연재순서

① 질병에 대한 인류 투쟁의 역사
②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 - 사망 원인 1위인 암에 대하여
③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죽음의 여러 모습 (1)
④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죽음의 여러 모습 (2)
⑤ 의료현장에서 경험하는 죽음의 여러 모습 (1)
⑥ 의료현장에서 경험하는 죽음의 여러 모습 (2)
⑦ 의학연구로서의 근사체험 (1)
⑧ 의학연구로서의 근사체험 (2)
⑨ 현대인이 알아야 할 삶의 종말체험 (deathbed vision)
⑩ 인류에게 죽음이 사라지면 축복일까 재앙일까?
⑪ 자살에 관한 담론 (1) (자살을 하면 왜 안 되는가?)
⑫ 자살에 관한 담론 (2) (자살을 하면 왜 안 되는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사람을 치료하는 의술이 발달하면서, 1960년대부터는 방금 심장이 멎고 호흡이 멈춘 사람을 살려내는 심폐소생술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초창기에는 수술용 칼로 가슴을 째고 심장을 꺼내 손으로 마사지하는 방식이었다가, 점차 발전해 현재는 일정한 간격으로 입에는 산소를 불어넣고 두 손으로 흉부를 압박하는 형태의 심폐소생술이 정립되게 되었다. 이 시술을 통해 일부 사람들이 소생하게 되었는데, 이들 중 또 일부가 자신의 심장이 멎어 있는 동안의 경험인 근사체험 혹은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근사체험 혹은 임사체험을 지칭하는 near-death experience라는 용어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 레이먼드 무디 주니어가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일시적인 죽음의 체험이라고도 하고, 최근에는 사실상의 죽음의 체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심장이 멈추고 호흡이 정지하며 동공반사가 없는 사망의 정의에 들어맞기 때문이다. 심폐소생술로 회생한 모든 사람이 다 경험하는 것은 아니고, 10-25%에서 체험하게 된다. 체외이탈을 해서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게 되는 것도 중요한 체험요소 중의 하나이다. 

레이먼드 무디 주니어가 쓴 책 <다시 산다는 것 Life after Life>은 전 세계적으로 1300만 부가 팔렸는데 이 책의 서문을 쓴 사람이 앞서 소개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이다. 서문에서 로스 박사는 두 가지 부류로부터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걱정을 해준다. 한 부류는 성직자들로, 죽음은 종교의 전문 영역인데 자신들의 분야를 감히 넘본다고 싫어할 것이고, 두 번째 부류는 의사와 과학자들인데, 그들은 이 책의 내용이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공격해 올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한다. 의사가 쓴 책에 의사가 추천사를 써 주면서 의사가 공격해 올 것이라고 걱정을 하니 아이러니하다.

로스 박사는 벌레가 들어 있는 고치 형태인데 뒤집으면 날개가 달린 아름다운 나비로 변하는 헝겊인형을 늘 가지고 다니며 임종이 임박한 어린이들을 위로했다고 한다. 고치는 생명이 떠난 죽은 육체를, 그리고 나비는 육체는 사라져도 존재는 사라지지 않은 채 아름답고 순수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갔다는 것을 상징화한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영원불멸의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일 뿐이다.라고 로스 박사가 일관되게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오랜 임상경험 때문이었다. 질병이나 사고로 심장이 멎고 호흡이 멈추어 사망 선고를 받은 뒤 심폐소생술로 회생한 사람의 일부가 경험하는 근사체험이나 임종 직전에 경험하는 삶의 종말 체험을 수없이 목격하고 관찰하면서 얻게 된 결론이었던 것이다. 이런 체험들은 환자의 연령, 성별, 인종, 종교의 유무나 종류와는 관계없이 일어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근사체험은 이제 의학의 한 연구 분야로 발전하고 있다. 190여 년 전에 창간된 <란셋 Lancet>이라는 의학전문 학술지에, 네덜란드의 여러 병원에서 근사체험자들을 대상으로 한 다기관 연구 결과가 2001년에 실렸다. <란셋>은 학술지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Impact Factor가 15.3으로, 전 세계에서 발간되는 107종의 의학학술지 중 3위를 차지한 바 있다. 네덜란드의 연구자들은 10개 병원에서 심장과 호흡이 정지하고 동공반사가 없어 의사로부터 사망 판정을 받은 직후 심폐소생술로 다시 살아난 344명을 조사하여 18%인 62명이 근사체험을 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때 활용하는 열 가지 체험 요소는, 자신이 죽었다는 인식(50%), 긍정적인 감정(56%), 체외이탈 경험(24%), 터널을 통과함(31%), 밝은 빛과의 교신(23%), 색깔을 관찰함(23%), 천상의 풍경을 관찰함(29%),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과 친지와의 만남(32%), 자신의 생을 회고함(13%),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인지함(8%)이다. 

밝은 빛과의 교신은 목소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생각이 즉각적으로 전달되고 이해되는 방식이라고 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재산이나 명예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얼마나 배려하고 사랑했으며 지혜를 쌓아 왔는가라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생을 회고하는 체험에서는, 살아오면서 있었던 중요한 경험들이 주마등처럼(Panoramic Life Review) 펼쳐지며 순간순간을 다시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이때 자신이 가해자였던 경험에서는 피해자가 겪었을 참담한 심정을 그대로 느껴보게 되며, 반대로 자신의 선한 의도나 행동을 다시 경험하는 순간에는 무한한 기쁨과 평안을 맛보게 된다고 한다. 

이 연구에서는 근사체험이 체험자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초래했는가를 알기 위해, 근사체험자 23명과 소생하기는 했지만 근사체험을 하지 않은 15명을, 8년이란 긴 기간에 걸쳐 조사하고 비교하였다. 근사체험 무경험자에 비하여 경험자는 다른 사람에 대해 더 공감과 이해를 하게 되고, 인생의 목적을 더 잘 이해하며, 영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큰 폭으로 감소하고, 사후생에 대한 믿음과 일상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크게 증가했다. 몇 분밖에 안 되는 짧은 순간의 체험이 8년 뒤까지도 큰 영향을 미쳐 체험자들의 삶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한 것이다. 

특히 의료진이나 환자를 간호하는 사람은 이러한 체외이탈이나 근사체험에 대해 알고 있을 필요가 있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체험자를 정신이상으로 몰아 위축시킬 위험이 있고, 체험 후에 일어날 수 있는 삶의 심대한 변화를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사체험을 통해 엿보게 되는 삶의 의미를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현재 겪고 있는 심각한 고통을 견디고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되리라고 믿는다. 또한 신앙의 유무에 관계없이, 임종에 임박해서   갖게 되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역시 크게 덜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