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학 칼럼⑧]정현채/서울의대 내과

연재순서

① 질병에 대한 인류 투쟁의 역사
②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 - 사망 원인 1위인 암에 대하여
③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죽음의 여러 모습 (1)
④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죽음의 여러 모습 (2)
⑤ 의료현장에서 경험하는 죽음의 여러 모습 (1)
⑥ 의료현장에서 경험하는 죽음의 여러 모습 (2)
⑦ 의학연구로서의 근사체험 (1)
⑧ 의학연구로서의 근사체험 (2)
⑨ 현대인이 알아야 할 삶의 종말체험 (deathbed vision)
⑩ 인류에게 죽음이 사라지면 축복일까 재앙일까?
⑪ 자살에 관한 담론 (1) (자살을 하면 왜 안 되는가?)
⑫ 자살에 관한 담론 (2) (자살을 하면 왜 안 되는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의 책 <사후생>에 소개된 근사체험의 한 사례를 소개한다. 어떤 원인으로 심장과 호흡이 정지해 사망 판정을 받은 뒤 심폐소생술로 회생한 어린이가 자신이 죽어 있던 동안 경험한 것을 어머니에게 이야기한다. 너무 아름다운 경험을 했기 때문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요. 그곳에는 모든 것을 감싸는 포근함과 놀라운 사랑, 그것을 실어 나르는 빛이 있었어요. 게다가 오빠가 있어서 자상하게 잘 대해줬어요. 그런데 나는 오빠가 없잖아요? 아이의 이 말에 어머니는 울기 시작하면서 진실을 얘기해 준다. 한 번도 얘기를 못해 줘 미안하구나. 사실은 네가 태어나기 3개월 전 죽은 네 오빠가 있었단다. 이 아이는 자신의 오빠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죽어 있던 짧은 순간에 오빠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복막염 수술을 받던 중 근사체험을 한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4살 난 아이 토드의 이야기는 천국을 다녀온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얼마 전 영화화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근사체험에 대한 회의론자들이 얘기하는 환상이나 환각, 꿈 등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데,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이 경험한 근사체험은 그것을 확증시켜 준다. 영국의 BBC 방송에서 제작했고 우리나라 Q채널에서 방영한 적이 있는 근사체험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태어날 때부터 빛이며 그림자며 그 어느 것도 본 적이 없고, 꿈에서도 맛, 소리, 냄새, 촉각은 있으나 시각적인 이미지는 나타나지 않는 한 시각장애인 여성의 체험이 소개되었다. 이 여성은 20세 때 교통사고로 심한 부상을 입고 병원 응급실로 실려와 치료를 받다가 심장이 정지하고 호흡이 멎어 심폐소생술을 받던 중 체외이탈을 하게 된다.
 

기억나는 건 정신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갔을 때 처치하는 과정을 전부 지켜봤던 일이에요. 두려웠어요. 앞이 보인 적이 없어서 보는 것에 익숙지가 않았거든요. 그래서 잔뜩 겁을 먹었죠. 그러다 결혼반지와 머리 모양을 보는 순간 저건 나잖아? 내가 죽은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응급실 의사들이 제 심장이 멈췄다고 외치며 필사적으로 애를 쓰는 동안 몸에서 분리되는 느낌이 들었고, 왜들 저렇게 난리지? 하면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순간 천장을 통해 밖으로 나갔어요. 아무렇지도 않게요. 부딪힐 걱정도 없고 몸이 자유로워서 좋았어요. 갈 곳이 정해져 있었죠. 풍경소리가 들렸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였어요. 낮은 톤에서 높은 톤까지 다양한 소리를 냈죠. 그곳엔 나무와 새, 그리고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의 몸은 놀랍게도 빛나고 있었죠.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에 완전히 압도당했어요. 그 전엔 빛이 어떤 건지 상상도 못 했거든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요. 그 동안 눈이 안 보여서 궁금했던 모든 걸 해소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곳엔 제가 알고 싶었던 것들로 가득했어요.... 몸 안으로 다시 돌아오자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고 몸이 무겁고 굉장히 아팠어요.
 

이 사례는 뇌가 시각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도 의식은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육체인 뇌가 없이 의식만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사례이다. 현대인들에게 뇌가 곧 의식인가?라는 질문을 하면 아마 대부분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심장이 정지하면 뇌로 혈액순환이 일어나지 않아 10-20초 후에는 뇌파가 기록되지 않는다. 즉, 뇌의 활동이 없는 것이다. 과학이나 의학의 입장은 뇌가 의식을 만들어 낸다고 보기 때문에, 뇌의 활동이 없는데 무언가를 보거나 듣거나 하는 체험이나 기억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근사체험은 바로 그처럼 뇌의 활동이 없을 때 하는 체험이다.
 

2012년 11월, 한국여의사회 초청으로 필자가 죽음학 강의를 하고 났는데 여의사 한 분이 자신의 친구가 경험한 흥미로운 사례를 들려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마취과 의사로 근무하면서 경험한 것이라고 했다. 그 의사는 유대인이 세운 큰 병원에서 주로 심장 수술의 마취를 담당했는데,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 의사는 실력이 뛰어나지만 평소 동양인을 비하해서 이 한국인 의사도 늘 무시를 당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바로 이 외과 의사의 심장이 멎는 응급사태가 발생하자 의료진이 달려들어 심폐소생술을 했는데 30분이 지나도 반응이 없자 포기하려고 했다. 그때 이 한국인 의사는 평소에 자신을 늘 무시하긴 했지만 수술 실력이 뛰어난 의사라 포기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이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미국인 의료진은 멀뚱히 보고만 있는 가운데 한국인 의사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도록 심폐소생술을 했고, 30분쯤 지났을 때 멈췄던 심장이 기적적으로 뛰기 시작하며 살아났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은, 심장이 멎어 사망 판정을 받았던 이 외과 의사가 심폐소생술 도중 체외이탈을 하여 소생술 현장의 공중에 붕 떠서 자신의 육체가 소생술을 받고 있는 광경을 모두 지켜보았던 것이다. 내려다보니까 자기 친구들인 미국인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거의 흉내만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신이 늘 무시하던 한국인 의사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심폐소생술을 하더라고 했다. 그래서 회생한 후에는 이 의사가 자신을 살렸다며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고 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논의는, 2차원에 사는 존재가 우리가 사는 3차원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정신세계사 네이버 북카페에 올려진 외국의 한 물리학자가 만든 동영상을 보면, 두 개의 차원, 즉 전후와 좌우만이 존재하는 2차원에 사는 존재들은, 구나 사면체, 육면체와 같은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전후좌우가 전부인 줄 알던 평면적인 존재가 어떤 계기로 인해 위와 아래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은, 우물 안이 전부인 줄 알던 개구리가 우물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장엄한 바다라는 것이 우물 밖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건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모르는 것, 알려지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는데, 만일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을 볼 수 있다면, 새로운 것들과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사람들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이제까지 전혀 몰랐던 다른 차원을 이해하려면, 알려고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재미있지 않은가? 우리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이 우리를 가장 가슴 뛰게 만든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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