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학 칼럼⑨]정현채/서울의대 내과

연재순서

① 질병에 대한 인류 투쟁의 역사
②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 - 사망 원인 1위인 암에 대하여
③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죽음의 여러 모습 (1)
④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죽음의 여러 모습 (2)
⑤ 의료현장에서 경험하는 죽음의 여러 모습 (1)
⑥ 의료현장에서 경험하는 죽음의 여러 모습 (2)
⑦ 의학연구로서의 근사체험 (1)
⑧ 의학연구로서의 근사체험 (2)
⑨ 현대인이 알아야 할 삶의 종말체험 (deathbed vision)
⑩ 인류에게 죽음이 사라지면 축복일까 재앙일까?
⑪ 자살에 관한 담론 (1) (자살을 하면 왜 안 되는가?)
⑫ 자살에 관한 담론 (2) (자살을 하면 왜 안 되는가?)

삶의 종말체험은 임종자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어떤 공통된 비전(vision)을 보는 현상을 말한다. 대개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지 또는 친구가 임종자를 마중 나오는데, 임종자 본인과 가족들 모두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마지막 선물(Final gift)이라고도 부른다. 
 

과학과 의학 네트워크(Scientific and Medical Network)는 우주 현상에 대해 탐구하는 의사와 과학자들의 모임인데, 여기서 회장을 맡은 바 있고 영국의 정신과 의사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피터 펜윅 박사는,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의 이러한 체험을 수집해 <죽음의 기술>을 출간했다. 삶의 종말체험은 전혀 혼돈스럽지 않으며, 대부분 의식이 활짝 깨어 있을 때 발생하고, 때로는 장기간 무의식 상태로 있던 환자가 죽기 전에 잠깐 동안 맑은 의식을 회복할 때 보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책에 소개된 여러 사례 중 하나는, 아일랜드의 물리학자였던 윌리엄 바렛의 부인이 1920년대에 산부인과 의사로서 경험한 것이다. 한 산모가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으나 과다 출혈로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간병인이 보니 그 산모는 얼굴에 상냥한 미소를 띤 채 허공에 있는 무엇인가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물어보니, 사랑스러운 빛, 경이로운 존재들, 아니 아버지잖아. 오! 내가 온다고 반가워하시네.(다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런데 아버지가 동생과 같이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이 산모의 동생은 3주일 전에 세상을 떠났으나 가족들은 산모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자신의 임종이 다가오자, 오래전에 타계한 아버지와 3주일 전에 세상을 떠났으나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동생의 마중을 받은 것이다.
 

부인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충격을 받은 윌리엄 바렛은 이러한 사례들을 수집해 <죽음의 자리에서 나타나는 비전들(Deathbed visions)>이라는 책을 출간한다.
 

몇 년간 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2011년 10월 5일 세상을 떠난 애플 컴퓨터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가 임종하기 직전의 상황이 그의 전기에 묘사되어 있다. 그는 아이들과 아내 로렌을 차례로 오랫동안 바라본 다음 그들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던졌고 오 와우(Oh, Wow wow), 오 와우, 오 와우하는 감탄사를 남기고 눈을 감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연구된 삶의 종말체험 사례를 토대로 추측해보면,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면서 먼저 죽은 가족이나 친척 혹은 친구의 마중을 받았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오래 동안 호스피스 간호사로서 활동한 최화숙 선생이 자신의 경험들을 기록한 책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안내서>에서도 이러한 체험이 소개되어 있다. 대부분 임종과정이 시작되면 이미 돌아가신 동네 어른이 와 계신다.고 하거나 오래전에 돌아가신 친지가 와 있다.고 하는 등,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임종자들에게는 보이는 어떤 대상이나 존재의 마중을 받는다고 말한다. 또한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이 세상과 곧 가게 될 저 세상 -건강한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을 함께 볼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임종자는 최화숙 선생과 이야기를 하는 도중 갑자기 허공을 응시하면서 누군가와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선생과 이야기를 계속했는데, 그럴 때는 방금 전 이야기가 끊어진 그 부분부터 정확하게 다시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우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열린 시각의 첫걸음이다. 실제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이 세계에서 극히 일부분이다. 자외선과 적외선과 X선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소리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진동수가 50에서 2만 헤르츠 범위 안의 소리만 들을 수 있고, 이 범위를 벗어나는 진동수의 소리는 듣지 못한다.
 

뇌에는 일정 정보를 걸러주는 필터 기능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고 하는데, 다 보고 듣고 하다가는 생존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진화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임종이 임박하면 이런 필터 기능이 약화되면서 보통 때에는 보거나 듣지 못하던 것을 비로소 보거나 듣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런 감각의 여러 차원과 삶의 종말체험에 대해 알고 있다면, 이런 증상을 보이는 임종자를 정신 착란 증세로 단정하고 진정제 주사를 놓으려고 하거나 헛소리를 한다며 나무라는 대신에, 삶의 마지막 과정을 편안하게 돌보게 될 것이다.
 

한편, 임종하면서 멀리 떨어진 가족이나 지인 앞에 잠시 모습을 나타내는 현상도 많이 보고되고 있는데, 필자가 잘 아는 내과 교수가 수 년 전에 직접 경험한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에 단기연수를 나가 있을 때라고 하는데, 밤늦도록 일하는 습관을 가진 그가 새벽 2시경 연구실 문밖에서 인기척이 나서 문을 열었더니, 오랫동안 자신에게 복막투석과 심부전증 치료를 받아온 환자가 서 있었다. 이 환자는 이제 다 나아서 아프지 않다.고 했고, 반가운 마음에 잠깐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더니, 인사만 드리러 왔어요.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그만 가볼게요. 하며 자리를 떴다. 내과 교수는 한 달 후 단기연수를 마치고 귀국한후에 이 환자의 상태가 궁금해 의무기록을 살펴봤는데, 환자는 사망했다고 적혀 있었고, 사망 시각은 미국으로 자신을 찾아왔던 바로 그 시각과 일치했다. 오랫동안 자신을 진료해줬던 의사를 세상을 떠나면서 만나보고 간 것으로 생각된다.
 

또 2014년 한 지방에서 죽음학강의를 하고 나서 들은 사례인데, 청중 한 분이 얼마 전 안타깝게도 오토바이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고 했다. 사고 당일 자정 무렵, 온몸에 붕대를 두른 아들을 비몽사몽간에 봤는데, 조금 있다가 경찰서로부터 아들의 사망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이처럼 세상을 떠나면서,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가족이나 지인에게 건강할 때의 모습 그대로 나타나거나 비전을 통해 상황을 암시해주는 경우가 적잖이 보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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